통합 검색어 입력폼

친구가 우리 엄마를 보고 말했다. "너네 할머니 오셨어."

조회수 2017. 7. 20. 08: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복도를 막 나서려는데 같은 반 친구인 수영이가 말했다. "니네 할머니 오셨어. 정문에서 기다리고 계셔."

중학교 2학년 무덥고 습했던 어느 여름이었다. 


그날 아침도 보충수업 때문에 바삐 대문을 나서는 길이었다. 마당 한쪽에서 어머니가 낡은 우산을 손질하고 계셨다. 나는 '엄마, 쓰지도 못하는 우산은 그만 버리시고 새것 하나 사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께선 '멀쩡한 것 두고 새것은 무슨…'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바쁜 마음에 어머니의 말씀을 다 듣지도 않고 곧장 학교로 줄행랑을 쳤다.  

찌는 듯한 더위는 선생님과 학생들을 모두 권태롭게 만들었고 땀은 등줄기를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러기를 3시간, 더 이상의 수업은 무리일 것 같으셨던지 선생님께서는 휴식시간을 주셨다. 휴식이라는 말과 함께 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책상에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더위도 잊은 채 말이다.


잠시 후, 흐린 하늘에서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자던 애들까지도 모두가 천둥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퍼붓는 빗줄기를 봐서 금방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지루한 보충수업이 계속되는 동안 빗줄기와 번개는 사정없이 교실 창문을 두드렸다.


드디어 보충수업이 끝났고, 집에 가려는 애들로 복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산을 안 가져온 학생이 태반이라 어머니가 우산을 가져오기를 기다리는 애들로 복도는 더욱 혼잡했다. 조금 뒤, 우산을 가져온 부모님들과 아이들은 하나둘 썰물이 지듯이 나가고 어느새 복도는 텅 비었다. 어머니가 받쳐 든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치며 운동장을 걸어가는 애들을 보니 내 마음엔 부러움이 가득했다.


빗줄기는 더 굵어져 갔고 기다림에도 한계가 왔다.

'비를 맞으며 가는 수밖에….'

복도를 막 나서려는데 같은 반 친구인 수영이가 말했다.


"니네 할머니 오셨어. 정문에서 기다리고 계셔."

순간 내 얼굴은 화끈해졌다. 어머니가 오신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늦게 낳으셔서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연세가 훨씬 많으셨다. 난 그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내 친구들에게조차 그 사실을 숨겨왔었다. 


지체할 필요 없이 뒷문으로 나가 비를 맞으며 집으로 내달렸다. 굵은 빗줄기 따위가 내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부끄러운 마음이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었고 그 장소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그렇게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싸늘한 식탁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대강 젖은 몸을 닦고 어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렸다. 창밖의 빗줄기는 가늘어져 가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1시간이 지난 뒤에도 오시지를 않았다.


못난 행동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럽고, 원망스럽고, 후회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곧장 학교로 다시 뛰어갔다. 한적한 정문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어머니가 아침의 그 낡은 우산을 받쳐 들고 서 계셨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눈물이 북받쳐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 눈물을 훔치며 다가서는 내게 어머니는 '야아! 니 왜 인제 나오노. 난 벌써 집에 간 줄 알았지. 우리 수캉아지, 배 많이 고프지. 얼른 집에 가자. 니 좋아하는 칼국수 해줄게.' 라며 내 등을 쓰다듬으셨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임종성 님의 사연입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