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묵 향기 나는 그 시절 이야기

조회수 2017. 5. 10. 16: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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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일을 하셔서 난 한 동네에 있는 외갓집에서 자랐다. _본문 中

오후가 되면 저녁 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간다.


단속반을 피해 잠시 시장이 형성되는 곳인데 나갈 때마다 만나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보이소? 메밀묵 사이소. 내가 직접 끓였는데 한번 만져 보소. 요놈이 얼매나 단단하고 깨끗한지.”

그분을 뵐 때마다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부모님이 일을 하셔서 난 한 동네에 있는 외갓집에서 자랐다. 이 즈음 오후 나절이면 외할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할아버지께 드릴 메밀묵을 쑤곤 하셨다.


맷돌에 메밀을 갈아 자루에 넣고 짜면 하얀 액체가 나온다. 그걸 무쇠솥에 넣고 장작불을 지핀 뒤 긴 나무 주걱으로 부지런히 저으셨다. 할머니는 제 키만큼 큰 주걱을 저어 보겠다고 떼를 쓰며 졸라 대는 내 작은 손에 주걱을 들려 주셨다.


할머니 흉내를 내다 연기에 눈이 매워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훌쩍이다 보면, 메밀묵이 걸쭉하게 어우러졌다. 묵이 완성되면 할머니는 맨 먼저 할아버지 몫을 정성스럽게 담으셨고 그 다음 “우리 손녀 꺼” 하며 내 몫을 담으셨다.


그리고는 네모지게 묵을 썰고, 막걸리를 주전자에 담아 내 손을 잡고 할아버지가 김매고 계신 까치골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할아버지가 계신 곳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아 할아버지에게 술을 따르셨다.


할아버지는 뽀얀 막걸리를 쭉 들이키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메밀묵을 한 젓가락 집어 후루룩 삼키셨다. 할머니는 매콤한 간장에 묵을 찍어 내게 먹여 주셨다.


냉큼 받아 먹은 내가 맵다고 난리법석을 떨면 논가 옹달샘 물을 두 손으로 떠 먹여 주시고는 귀엽다고 볼에 얼굴을 비비셨다. 요즘도 시장 좌판에 올려진 묵을 볼 때마다 할머니 생각에 가슴이 젖는다. 


*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노경애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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