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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속 고양이, 시리고 따스한 겨울

조회수 2018. 3. 16.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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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WEATHER

피고 지는 계절 속에서 길 언저리를 오가는 고양이들이 존재한다. 계절마다 길 위의 삶은 어떤 모습을 지닐까. 첫 시작은 하얀 눈과 서슬 퍼런 바람이 공존하는 계절, 겨울이다. 성남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만난 묘생.

폐가 즐비한 동네, 숨은 고양이 찾기

재개발 지역으로 확정된 성남의 한 지역구를 찾았다. 줄곧 매스컴을 통해 소개됐던 그 지역은 지금 주인 없는 빈집이 즐비하다. 길가에선 삐죽한 스프링이 천을 뚫고 나온 침대 매트리스를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골목 사이사이에는 한때 한 가정의 한 공간을 차지했던 가구와 물품들이 널려있었다. 폐가가 되어버린 건물마다 무단출입 금지를 경고하는 노랗고도 벌건 스티커는 왠지 모를 위협감마저 들게 했다.

동네를 탐색하다 곳곳에서 길고양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외진 곳 조차 길고양이를 걱정하는 이들의 투명한 손길이 닿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길고양이를 보고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돌아다닌 동네에서 유독 담에 꽂혀있는 깨진 병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서글픈 사실이다.

불안한 눈빛, 무거운 발걸음 그리고 햄

그러던 차, 우연히 고양이를 만날 수 있었다. 고양이는 소리를 죽이며 길가를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정착했다. 경계하는 눈초리는 여전했지만 그곳을 벗어나진 않았다. 녀석이 멈춘 그곳에는 버려진 햄 조각이 있었다. 고양이는 흙과 먼지로 뒤덮인 햄 조각을 조금씩 먹었다. 온몸을 움츠린 채 야금야금 먹는 그곳에는 위험지대를 알리는 빨간 테이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어 자동차가 지나가자 고양이는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갈피없이 도망가던 고양이는 잠시 멈추어 뒤돌아보았다. 녀석의 시선을 따라 간 곳에는 햄이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가본 그곳에는 햄 조각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고양이는 건물과 건물 틈 사이,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투명한 손길이 만든 고양이들의 간이 휴게소

그 많던 길고양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지역구민들이 즐겨 찾는 공공기관 근처에서 낯선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고양이 사료와 한때 액체였을 얼음이 놓여있었다. 그곳은 큰 돌에 고정되어 고양이들의 간이 휴게소처럼 보였다. 검은 비닐봉지 두 개에 나뉜 사료는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의 식사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질 정도로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잠시 그곳에 기다려 간이 휴게소에 들르는 고양이를 만나보기로 했다. 하지만 강력한 추위가 움직임을 둔감하게 만들어버렸는지 단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건물을 가로질러 어느 공원 초입에 다가갔다. 그리고 초록 펜스 너머로 당황스럽고도 놀라운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의 쉬어가는 공간, 무료 급식소


하얀 눈으로 덮인 공원, 바람이 불면 가루눈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에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다. 녀석들은 구부린 자세로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공원 바닥에는 지나간 계절이 떨어뜨린 낙엽과 다가온 계절이 쌓은 눈이 뒤섞여 있었다. 걸을 때마다 낙엽과 눈이 뒤섞여 밟혔다. 그 소리에 고양이들이 일제히 이곳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두 눈을 감았다 떴다. 몇 번을 반복했다. 그 모습이 낯설었는지, 낯선 이가 낯선 행동을 해서 불편했는지 고양이들은 잠시 식사를 멈추고 경계태세를 취했다.

더는 접근하지 않고 적정 거리를 유지해 고양이들은 지켜보기로 했다. 한동안 지켜본 아이들은 펜스 너머로 오가는 자동차를 두려워했다. 나무 기둥 뒤로 몸을 숨기는 아이와 움직이는 자동차를 고개를 돌려가며 끝까지 응시하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두려움을 안고 결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식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금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공원 초입에는 지방 정부에서 주관한 고양이를 위한 급식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공원 내 몇 기둥의 나무에는 돌로 고정된 식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는 사료 더미가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투명한 플라스틱과 나무, 천으로 만든 미니 보금자리도 있었다. 누군가의 관심과 손길을 알고 길고양이들은 이곳에 집합해있던 것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허기진 고양이 두 마리가 급식소를 찾았다. 한 마리가 식사하면 다른 고양이들은 주위를 돌아보며 경비를 섰다. 나무 기둥에 숨어 줄곧 경계태세를 풀지 못하는 녀석도 있었다.


평소 고양이와 고양이를 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찾는지는 급식소의 길바닥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공원에 녀석들의 급식소 바닥에는 눈이 아닌 갈색 잣나무 잎이 깔려있었다.

인적이 많은 곳에는 추위보다 온기를 더 느낄 수 있듯, 고양이 급식소에는 허한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추위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마음만은 시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공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나눠 쓰기로 한 사람과 기꺼이 한 평 만큼의 공간에서 숨을 돌리는 길고양이들. 공존은 가까이에 있었다.​ 

CREDIT

에디터 박고운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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