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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이름으로

조회수 2018. 6. 17. 18: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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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이름으로


보스턴테리어 카이와 닥스훈트 라이에게는 가장 믿었던 사람일 것이다. 사람 말을 못 할 뿐이지 어쩌면 그를 ‘아빠’라고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가족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자신들을 낯선 곳에 버리는 것을 반복하기 전까지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예기치 못한 생이별​


A씨에게 연락이 온 건 지난 3월이었다. 그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는 어린 두 자녀 그리고 반려견들이 함께 지낼 곳을 찾고 있었다. 새로운 주거지를 찾는 이유는 가정폭력이었다. 남편은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 그의 폭력은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그리고 개들에게까지 향했다. 남편은 개들을 위협하거나 우발적으로 유기하기도 했다.

그런 나날이 이어진 끝에, 그녀는 자녀들과 반려견들의 안전을 위해서 이 상황을 끝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남편을 경찰에 신고했고, 임시거처로 이동했다. 하지만 남편은 가족들을 바로 찾아내 행패를 부리며 위협했다. 더 안전한 곳이 절실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그 순간 속에서 카이와 라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짖거나 낑낑거리는 것 밖에는....


뉴스나 신문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기사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우리가 미처 몰랐을 뿐, 일가족을 모두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불행의 저 편에는 말 못하는 동물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A씨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녀는 두 아이, 두 반려견과 함께 입소할 수 있는 쉼터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전국의 그 어떤 쉼터도 반려동물과의 동반 입소는 불가능했다. 쉼터의 수도 많지 않을뿐더러 아이를 데려가는 조건도 있는 등 쉼터 상황 자체가 열악하니 반려동물과의 동반 입소가 불가능한 것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려견을 입양이 보장되지 않는 유기동물센터로 보내 안락사를 기다리게 하거나 길거리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지인들에게 반려견을 입양 보내고자 노력했고, 일부 반려견은 입양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카이와 라이에게는 소식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연락을 해 본 것이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였다.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가정폭력 뿐만 아니다. 독거노인이 노쇠하여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반려동물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이 외에도 예기치 못하게 가족이 사라지는 상황은 많다. 그런데 이 거부할 수 없는 가족의 해체를 동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에게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이제는 너를 보살필 수 없다고, 이제는 알아서 잘 살아야 하니 잘 해보라고 말할 수가 없는데.... 

우리는 그녀가 겪은 일이 ‘가정폭력 피해가정 내 반려동물보호 장치’에 대한 제도적 한계와 이어지는 것이라 판단했다. 통계자료만 없다 뿐이지 가정폭력으로 참 많은 동물들이 생사를 알 길 없는 보호소로 들어가거나 버려졌을 것이고, 누군가 공론화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오갈 데 없는 동물들이 보호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CREDIT

글 사진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김나연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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