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된 작가, W. G. 제발트

조회수 2017. 3. 15. 19: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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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매혹하는 작가들의 제발디언 선언

W. G. 제발트는 1988년 산문시집 <자연을 따라. 기초시>를 발표한 이후 2001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십삼 년 남짓한 세월 동안 네 편의 장편소설과 세 편의 시집, 그리고 산문, 비평, 논문 등을 펴냈다.


2008년 그가 한국에 소개된 이후 여러 작가들이 제발트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열렬한 제발디언임을 밝힌 소설가 배수아의 '제발디언 선언'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감각적인 것이었다.

나는 제발트를 읽었다, 그 이후에도 하루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변한 것은 단 한 가지, 제발트 이전과 제발트 이후가 있을 뿐._배수아
출처: http://www.newyorker.com
W. G. Sebald

제발트의 소설 <토성의 고리> 책 뒤표지에 실린, 전문이 300자가 조금 넘는 이 추천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제발트와 만났을 것이고, 그중 몇몇은 스스로를 제발디언으로 명명했으리라.

제발트를 아예 읽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제발트를 한 권만 읽고 끝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_배수아

"현재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독일 작가"라는 소개가 늘 따라다니는 제발트이지만, 사실 그는 미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이는 탁월한 예술적 감식안을 가졌던 수전 손택의 영향이 컸는데 손택은 '문학의 위대함이 지금도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제발트의 소설에서 찾길 권했다.

출처: https://kr.pinterest.com/Royce64/my-susan-sontag
Susan Sontag
문학의 위대함이란 지금도 가능할까? 문학적 야심이 사라져 가고 열의는 없으면서 입심만 좋으며 무자비하게 냉혹한 인물이 소설의 일반적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문학에 대한 고귀한 기획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영어권 독자들에게 이것에 대해 답해주는 몇 안 되는 작가들 중 한 명이 제발트이다._수전 손택

일단 시작하면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제발트를 읽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밀도 높은 문장들 사이에서 종종 길을 잃고, 이곳저곳 헤매기 쉽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의 글에서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소설가 배수아의 말처럼 '제발트를 읽는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제발트의 작품에서 마주치는 것들 - 폐허와 쇠락,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불안을 유발'하는 동시에 '문학을 유발'한다.

제발트를 읽으면 무엇이든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일까?

출처: http://www.tenover6.com
Patti Smith

'한 번도 안전지대에 머문 적 없는' 사람, 펑크록의 퀸이자 초현실주의 시인 패티 스미스는 에세이 <M 트레인>을 통해 자신이 사랑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중 제발트에 대한 부분은 경외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은 책은 얼마나 강력한 마약인가. 그 마약을 흡입한다는 건 제발트의 퍼레이드에 편승한다는 뜻이다. 그가 쓴 글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 이 욕망을 잠재우는 길은 나 자신이 무슨 글이든 쓰는 수밖에 없다._패티 스미스
<자연을 따라. 기초시>
패티 스미스로부터 이토록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제발트가 마흔넷의 나이에 세상에 처음 내놓은 문학작품 <자연을 따라. 기초시>는 29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우리 곁에 도착했다.

16세기 화가와 18세기 과학자, 그리고 20세기의 작가 자신을 시처럼, 그리고 산문처럼 펼쳐내는 이 책은 제발트의 작품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 책을 번역한 소설가 배수아는 역자 후기를 통해 또 한 번 우리를 제발트에게 데려다 놓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미 늙었고,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에는 주름이 졌다. 독자는 늙어가고, 작가는 죽는다. 독자는 죽고, 작가는 잊힌다. 문학은 누구의 영혼일까._배수아

아래, 제발트의 작품들을 발표일 순으로 정리해 본다.

더불어 올해 안에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캄포 산토>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이로써 우리에게 도착할 그의 문학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울적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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