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너희를 잊지 않을게

조회수 2017. 4. 13. 13: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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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있으시죠?』 김제동이 전하는 안부인사

우리가 너희를 잊지 않을게

제가 가장 감동적이라고 생각하는 성경 말씀이 있어요.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 말이 뭐가 그렇게 감동적이냐고요?


아닙니다. 잊히지 않아야 살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안산에서 한 아이가 학교 가는 길에, 학교 반대 방향으로 뛰었습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학교에 같이 가던 아이의 집 방향으 로 뛴 겁니다. 그 집 앞에서 이름을 불러도 친구가 나오지 않을 때, 친구가 나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아픔. 


우리가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가 계속 친구의 집으로 뛰어갈 때 “정신 차려라”라고 얘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와 함께 친구의 집으로 뛰어가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전에 사고로 아들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아버님이 그러시더 라고요. 


“아들이 간 지 꽤 오래됐는데도 가슴이 너무 아프고 아픈 가슴 을 툭툭 치면 아직도 걔가 여기서 나올 것 같습니다.”

양친을 잃은 사람을 이르는 단어도 있고, 남편을 잃은 사람을  이르는 단어도 있고, 부인을 잃은 사람을 이르는 단어도 있지만, 자식 앞세운 사람을 일컫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 말이 없는 이유는 아마 그 슬픔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절절한 심정을 이해받고 위로받지 못할 때 느끼는 고통을 제가 다 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요. 다 안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니까요.

그냥 우는 것이 아니고 막 애가 끊어질 듯이 웁니다. 

그러면 송아지를 팔았던 삼촌이나 동네 아저씨가 그다음 날 아 침에 담배 하나 피워 물고 더 정성껏 소죽을 끓였고, 

영문도 몰랐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 소 앞에 가서 지푸라기를 내밀었고, 왠지 모를 죄책감을 함께 느끼며, 소의 눈을 오래 바라보고 어루만졌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이웃도, 어떤 사람도 “저 소 새끼 왜 우냐”고 타박하지 않 았습니다. 


하다못해 소에게도, 짐승에게도 그랬습니다. 적어도 그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어요.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유가족의 슬픔이 멈추는 날, 그때까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해라”라는 얘기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한은 정해져 있습니다. 

유가족의 슬픔이 끝날 때까지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모아주는 것이고, 함께 아파하고, 절대로 그분들에게서 멀어지지 않겠다는 걸 기도와 서명으로써 표시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그분들과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며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말 힘들면 그때는 반드시 누군가가 와서 나를 도우리라 는 믿음, 저는 그것을 심리적 복지라고 말하는데요. 슬플 때 혼자 있지 않다, 내가 힘들 때 혼자 있지 않다, 내가 그런 사람이면 내 옆에도 반드시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 게 저는 진짜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천만 개의 바람이 되어주세요.

김제동 낭독영상 Full 영상 보기

■ 본 영상은 도서 『그럴 때 있으시죠?』의 일부를 낭독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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