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앵커가 인용한 시 '땅끝이 땅의 시작이다'

조회수 2016. 11. 12. 22: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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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손석희 앵커가 인용하며 희망을 이야기한 이문재 시인의 시를 오늘 다시 읽어봅니다.

그래, 바다가 보이느냐. 

땅의 끝이 가까워졌느냐, 길이 좁아지느냐, 땅이 다소곳해지더냐, 크게 숨을 들이마셨느냐.

땅끝에 홀로 우뚝 섰느냐, 근육은 팽팽한 것이냐, 정신은 훤칠한 것이냐.

그리하여, 바다의 끝이 보이느냐, 경계가 선명하게 보이느냐.

그렇다면, 돌아보지 말거라. 거기가 땅끝이라면 끝내, 돌아서지 말아라, 끝끝내 바다와 맞서거라, 마주하거라.


바다, 눈 둘 데 없는 저녁 바다, 거기, 섬 같은, 불빛 같은, 인광 같은, 부표 같은, 잊을 수 없는 이름 같은, 물새 소리 같은, 흐린 냄새 같은 한 점이 보이느냐.

보인다면, 거기에 젖은 눈, 시린 눈, 시력과 시야를 꽂아두거라, 꽂아두고 있거라.

거기 한 점 소실점에서 눈물이 솟느냐, 눈물은 마르느냐.


그래, 거기가 땅끝이라면

그리하여, 시린 눈, 젖은 눈이 다 말라서, 한 점 소실점이 화악, 온통 바다로, 어둠으로 변하더냐.

은하수가 우당탕탕 쏟아지더냐, 대륙붕의 아랫배가 불끈 일어서더냐, 바다의 끝과 처음 만나는 땅의 끝이 예리하게 떨리더냐, 거기에서 너의 끝이 바다의 맨 끝과 흔쾌히 손을 잡더냐.

왈칵, 눈물이 솟구치더냐, 쏟아지더냐. 온몸이 뜨겁고, 온몸이 환해지더냐.

너는 이윽고 돌아서는 것인데, 이윽고 땅의 끝에서 돌아서는 것인데


그래, 거기가 땅의 맨 처음, 땅의 시작이다.

땅끝은 바다의 끝이다. 땅끝은 물끝이다.


땅끝은 땅의 시작이다.

땅끝이 땅의 시작이다.


_이문재, '땅끝이 땅의 시작이다' 부분

<지금 여기가 맨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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