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실화냐? 알고 보면 더 좋은 영화 <덩케르크>

조회수 2017. 7. 23. 14: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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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다이나모' 작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중이던 1940년 6월 3일 월요일, 영국의 데일리스케치 신문에는 세계사에 길이 남을 철수 작전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출처: IMDb
화제의 영화, <덩케르크>는 '다이나모 작전'을 다룬 영화로 그날을 다시 기록하고 있다.
출처: 조선비즈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_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 <덩케르크> 감독)
출처: 네이버영화
역사상 가장 긴박했던 2주, 그것은 거대한 드라마였고 인간의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40만여 명의 군대가 전멸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선박과 인간이 어떻게 기적적으로 탈출했을까?
독일군 항공기를 향해 대공사격을 하는 영국 원정군
[1940년 5월 22일]

“저항해도 소용없다. 너희는 이미 포위됐다.”

연합군에게는 운명의 날이었다. 북쪽 연합군을 포위하고 괴멸시키는 것이 목표였던 독일군은 칼레, 불로뉴, 덩케르크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1940년 5월 24일 오전]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히틀러의 진격중지 명령이었다.

“진격을 중지하라! 이제부터 독일 공군이 연합군을 처단한다.”
독일군의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
[1940년 5월 25일]

마지막 일격만 남은 상황이었기에 독일군 지휘부는 경악과 충격에 빠져든다.
히틀러가 왜 이런 명령을 내렸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독일군은 공중에서 지속적인 폭격에 맹렬한 기관총과 중포 공격까지 가세하였다.
덩케르크 상공을 비행하는 영국 공군의 허드슨 폭격기
수면 부족에, 식수, 식량, 탄약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요새와 부두를 향한 적군의 포격이 재개되었고, 급강하 폭격기들이 교대로 쉬지 않고 출격했다. 영국군 진지는 도살장으로 바뀌었고 무시무시한 화마가 도시 전역을 휩쓸었다.

지옥의 문이 열린 것이다.
파괴된 칼레 시내
불로뉴는 이미 22일에 함락되었고 칼레는 26일 오후 독일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남은 연합군 병력은 유일하게 연합군이 점령 중인 덩케르크로 퇴각하고 있었다. 독일군의 진격 추세라면 연합군은 덩케르크에서 몰살당할 확률이 높았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사용된 세 항로
전멸을 위협하는 독일군에 밀려 후퇴한 영국 원정군에게는 바다 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는 한편 덩케르크의 남쪽과 북쪽에 퇴각로를 만들면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해변에 줄 서서 승선을 기다리고 있는 영국 병사들
[1940년 5월 26일]

덩케르크 철수 작전 시작.
운이 좋으면 2만 5000명 정도가 아니라 그 10배, 아니 12배의 병사들을 구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출처: 네이버영화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투입된 유람선을 비롯한 소형 선박들
그때 유례가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어선, 화물선, 석탄선, 모터보트, 요트, 여객선, 외륜선 등 1000척에 육박하는 선박들이 구출 작전에 급조되었다.
출처: mirror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갑작스레 불붙은 열의는 감동적이었다. 곤경에 처해 있는 영국 병사들을 선박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자신의 배를 징발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증기선의 선주와 승무원들은 예외 없이 자발적으로 징발에 응했다. 선주도 선원도 해협 저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침몰과 죽음, 그리고 끝없는 위험에 대해서 말이다.
폭격을 피해 덩케르크에서 철수하는 영국군
“여러분은 지옥으로 가는 겁니다. 폭탄과 기관총 공격을 받게 될 겁니다.”

기술자들은 누구 하나 망설이지 않고 연장을 내려놓고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선박들을 향해 행진해 갔다. 그리고 20분 뒤에 그들은 덩케르크의 지옥으로 출항했다.
독일군 슈투카의 폭격 속에서 연합군 병사들을 구조하는 영국 선박들(덩케르크, 1940)
덩케르크는 불타고 있었고 항만 주변의 수역은 요동치고 있었다. 비좁은 부두에서 25만 명이, 그리고 인근 해변에서 10만여 명이 승선할 거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기 중인 구축함을 향해 헤엄쳐오는 병사들
생각해보라. 덩케르크 작전과 같은 해군 본연의 임무가 주로 민간인에 의해 수행되었다니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도 상당수가 소형 선박을 타고 자진해서 작전에 참가한 사람들에 의해서 말이다.
구조되는 영국군
독일군의 강력한 폭격에도 무수한 외륜선, 예인선, 그리고 소형 선박들이 부두로부터 군대를 실어 왔고, 그보다 더 가벼운 배들은 거센 물살을 가르고 모래언덕에 있는 많은 병사들을 2.5킬로미터 떨어진 선박들로 쉬지 않고 실어 날랐다.
소형선박을 이용해 탈출하는 병사들
영국이 항해의 나라가 아니었더라면 덩케르크 철수 작전 (다이나모 작전)은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덩케르크 해변에 버려진 철모들을 확인하는 독일군
[1940년 6월 4일]

해안에 남아 있는 선박은 거의 없었다. 세계 전쟁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은 그렇게 끝났다.
지치고 고된 몸으로 영국에 돌아간 병사들, 그들을 실은 열차가 역에 설때마다 지역민들은 병사들에게 줄 음식을 가져와 격려했다.

역사상 덩케르크 이야기보다 

더 용감한 바다의 서사는 없다. 


이 이야기는 너무도 보편적이라서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모두를 감동시킨 장엄함, 자유에 영감을 준 이 거대한 드라마는 전 시대에 걸쳐 회자될 것이다.

영국 선박에 구조된 프랑스군
영국 어부가 연합군 병사들을 구조하고 있다.
구조되는 영국군
덩케르크 철수 작전으로 도버에 도착한 영국군
  • 글,이미지 출처 

덩케르크 철수 작전 직후인 1940년 출간작.

77년만에 전해진 역사의 기록!

다이나모 작전을 증언한 가장 생생한 보고서!

『덩케르크』

세계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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