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고, 뭔가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만족감을 얻기 위해 큰돈을 스스럼없이 지불하게 됩니다. 돈도 돈이지만 당장의 기쁨 하나로 힘든 시간을 버텨내는 거죠.
# 인간관계에서 계산적이게 될 때
더 어릴 때는 그냥 친하면 만나서 놀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지냈었죠. 어떻든 만나서 즐거우면 그걸로 됐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가끔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나가서 어떤 걸 얻을 수 있을까', '앞으로 저 사람에게 어떤 이익을 취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가 있네요.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스스럼없이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었는데 말이죠.
# 점점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
시간이야, 예나 지금이나 빨리 가는 건 마찬가지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이 문제지요. 특히 학생이라는 딱지를 떼고 일을 하게 되면서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한 달의 마감에 쫓기며 살다 보면 한 달은 물론 두세 달도 금방이고, 늘 사무실에 있다 보니 계절의 변화에도 둔감해지더라고요.
반대로 공부를 떠나 혼자 해야 할 일이 많아질 때도 있더라고요. 이를테면 돈에 관련된 문제, 이사 준비할 때, 아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다 챙겨줬지만, 이제는 이 많은 걸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숨만 쉬며 사는 데도 많은 힘이 들더라고요. 하루하루를 무사히 버텨내는 데에 누군가의 도움 대신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많이 부딪치게 될 때를 많이 느낍니다.
# 부모님에게 도움받기 싫을 때
스스로 해결할 일이 많아지다 보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들의 도움은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왠지 부모님에게는 내 어려움을 알리고 싶지도, 도움받고 싶지도 않죠.
이건 부모님을 등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도움 없이도 혼자 헤쳐나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을 수도 있죠. 혹은 더 이상 그들의 삶을 나라는 존재가 방해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 괜찮다는 말이 습관적으로 나올 때
조금 더 어릴 때는 내 감정 상태를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었습니다. 특히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렇죠. 상대방이 나의 좋지 않은 기분을 알아줬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한두 살씩 들수록 내 기분은 숨기고,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내 기분 하나로 그 자리, 분위기를 망치는 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고, 결국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됐습니다. 실은 전혀 괜찮지 않은데 말이죠.
#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들 때
앞에서 '인간관계에 계산적이게 될 때'를 말씀드렸었죠. 이렇게 계산적으로 변하다 보면, 다음 단계는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로 가게 됩니다. 혹은 이제껏 알고 지낸 지인들이 자신의 어려움에 바쁘다며 등을 돌릴 때 그렇거나요.
물론 후자의 경우는 자신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경우 외에도 사람들 앞에서 '괜찮다'라고 하는 등의 자신을 버리는 행위를 하다 보면 허무함이 찾아올 때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