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동안 항복하지 않은 패잔병

조회수 2017. 7. 4. 10: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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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MAXIM 박건
1945년 8월 15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 된 이후 일본은 2차 대전의 종막을 알리는 항복선언을 공표하였다. 그러나 모두에게 전쟁이 끝난 것이 아녔다.
오늘의 주인공 오노다 히로
1922년 와카야마 현 카이소 군의 마을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난 오노다 히로는 1942년 징병검사를 받고 이등병으로 입대를 하게된다. 그는 과거 무역회사에서 일할 당시 습득한 영어와 중국어 실력을 살려 육군학교에 입학한다. 졸업 후에 견습사관을 거쳐 소위 계급으로 임관하게 된다.
이후 1944년 12월, 오노다는 필리핀 마닐라 근처 작은 섬인 루방 섬에 지휘관으로 파견된다.
이때 사단장이었던 요코야마 시즈오가 오노다에게 직접 내린 명령은 "옥쇄는 일절 허락하지 않는다. 3년이건 5년이건 버텨라. 반드시 지원을 가겠다. 그동안 병사가 한 명이라도 살아있으면, 야자수 열매라도 따 먹으면서 버텨라. 다시 말하지만, 옥쇄는 용서하지 않는다." 이였다.
#여기서 옥쇄란
玉碎. 직역하면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깨끗이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할복)
1945년 초 필리핀 탈환전의 목적으로 연합군이 루방섬에 상륙하면서 오노다 휘화 군대가 반쯤 괴멸된다. 오노다는 남은 패잔병들을 데리고 후일을 기약하며 루방섬의 깊은 정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던 중 1945년 8월, 일본이 결국 패전하게 된다. 미군은 이 사실을 삐라를 통해 산속에 남아있던 일본군 패잔병들에게 알리고, 실제로 많은 수의 패잔병들은 그 삐라를 보고 투항한다.
그러나 오노다와 그 휘하의 일부 병사들은 이것을 미국의 기만전술이라고 생각하며 투항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전쟁을 계속하게 된다.
1972년 부족한 식량을 얻기 위해 민간 농가를 약탈하다 오노 곁에서 함께 싸우던 마지막 전우 고즈카 일병이 필리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다.
루방섬에 혼자 남겨진 오노다는 이후에도 친인척을 포함해많은 인사가 오노다를 설득하려고 왔지만, 모두 기만전술이라고 생각하며 고독하게 자신만의 전쟁을 지켜나간다.

"모든 일본 병사들은 죽음을 위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정보장교로서, 나는 게릴라전을 지휘해야 하므로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해야만 했다"
-오노다 히로-
1974년 일본의 탐험가 스즈키 노리오는 '남방군도'에 구 일본군 패잔병이 아직도 홀로 항쟁 중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흥미를 느낀 스즈키는 수소문한 끝에 오노다를 만나게 된다. 침착한 언행으로 스즈키는 끝내 오노다에게 패전 사실을 설득시킨다.
하지만 오노다는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직속 상관의 항복 명령 없이는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다라는 조건을 걸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오노다를 조속히 귀국 시기키 위해, 전쟁 당시 오노다의 직속 상관 중 한 명을 어렵게 찾아내 오노다에게 투항명령서를 전달한다. 이로써 오노다의 29년간 이어진 집념의 항쟁기는 막을 내린다.
1974년 투항 당시 필리핀 대통령에게 투항하는 오노다의 사진.
일본에 귀국한 직후, 오노다는 패전 컴플렉스에 사로잡혀있던 일본인들에게 '살아있는 일본 정신', '진정한 사무라이' 등으로 칭송을 받으며 영웅 대접을 받게 된다.
그러나 오노다는 30년 동안 정글에서 살아온 탓에, 현대화된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며 브라질로 떠나 목장을 경영한다. 오노다는 말년에 일본에 들어와 각종 보수 인사들과 교류를 가지다 2014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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