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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개발자, 퇴사후 6개 레스토랑의 오너가 되다 < 2편>

조회수 2018. 5. 8. 12: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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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인터뷰 30번째

<1편에 이어>




▶ 회사를 나오게 된 계기가 ‘무엇으로부터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으로 향하기 위해’서 였던 거 같다.

그건 내가 삼성이 첫 회사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삼성전자라는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 그 안에 있을 때는 몰랐고 나와 보니 확실히 알았다. 사회적 시선도 그렇지만 연봉도 매우 훌륭한 회사다. 직장인 상위 5% 안에 들 거다.


삼성을 나와서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면서 후회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 회사를 나가면 후회할 거야’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기에 싫어서 떠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지향하는 형태를 띠게 된 것 같다. 적지 않은 회사를 옮겨보니 ‘여기가 싫어서 나간다.’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맞다. 지금 삼성전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 분명 장점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 단점만을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단점만 볼 거다. 하지만 그 장점을 안에 있을 때는 거의 느끼는 경우가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회사원일 때 본인을 한 마디로 말해본다면?

본 헤이터 (Born Hater)다. 나는 비 합리적이고 비 상식적인걸 못 참는다. 다른 사람이 그냥 관습적이기 때문에 아무 고민도 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것, 그냥 ‘이 집단이 이렇기 때문에 너도 이래야 해, 원래 그런 거야’라는 것을 싫어했다.



▶ 회사를 완전히 떠났다. 후회되는 점은 없나?

글쎄. 굳이 말하자면 임원이 못된 것은 아쉽다. 대기업에서 임원 정도 되면 하고자 하는 방향대로 일을 할 수 있다. 결국은 나의 아이디어나 일의 가치에 대해서 남이 알아주고 그것을 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모두 원한다.


삼성전자나 IBM에서 상품 기획자로 제대로 아이디어를 냈다면 내가 만든 것을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했을 것이다. 또 아쉬운 점은 많이 배우고 함께 목표를 함께 일했던 팀원들이 아쉽다. 삼성전자에 있을 때 열명 정도의 팀이 팀워크가 너무 좋았다. 좋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의 기쁨을 알 수도 있었다. 혼자 외식업 사장으로 외롭게 일하는 지금은 그때의 느낌이 조금 그립기도 하다.




▶ 개발자로서의 삶과 브랜드 마케터로서의 삶. 다소 상반된 일인데 어떤 일이 더 맘에 드나?

브랜딩을 하는 일이 더 맘에 든다. 죽을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브랜드와 관련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 외식업을 하면서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개발자의 일도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고 결과를 만들어 날 때 희열이 있다. 개발 일이 너무 싫다기보다 브랜드 마케터의 일이 더 좋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개발자로서 일한 경험에서 무얼 배웠나? 그냥 없어질 경험은 아니지 않나?

회사를 나오고 나니 개발자로 일했던 것은 좋은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학 4년 동안의 학습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운 것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푸는 학습을 하는 거였다. 컴퓨터는 내가 하면 100년 걸릴 일을 10초면 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가 알아먹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뿐인 것이다. 컴퓨터가 모든 일을 다 하는 세상이다. 심지어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컴퓨터가 하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영어를 하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컴퓨터라는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프로세스를 만들고 적절한 언어로 말해주는 것이 개발자의 일이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다시 순서를 따라가면서 문제를 찾아내고 디버깅을 한다. 이렇게 문제를 구조화하고 프로세스대로 사고하고 생각하는 훈련이 개발자가 가질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다. 그런 논리적인 생각 프로세스는 컴퓨터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개발 일은 문제가 생겼을 때 호미로 잠깐 막는다고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다시 다른 곳에서 오류가 생긴다. 그렇기에 반드시 문제의 명확한 원인을 찾고 그 근원적인 원인을 해결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문제가 풀린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습성도 갖게 된 것도 배운 점이다.



▶ 결국 외식업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어떤 계기였나?

결혼 후 첫째를 낳은 후 나는 우아한 형제들은 다니고 있을 때 아내가 먼저 2015년에 윤경 양 식당을 열었다. 사실 아내는 무용을 전공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며 저녁에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 원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투잡으로 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아내는 외식업을 하고 나는 회사를 다니는 거였다. 투 트랙 전략이었다. 첫 식당이 운이 좋게도 시작하자마자 잘 되었다. 그리고 아내가 둘째를 갖게 되고 내가 회사를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사실 아내가 먼저 시작했고 그다음에 내가 뛰어든 것이다. 아내가 사업가적 기질이 뛰어나다.




▶ 식당 브랜드를 소개해 달라.

돈가스 전문인 윤경 양식당, 수제 버거를 파는 Gony’s, 떡볶이와 부대찌개를 삼삼 하우스, 피자 전문점 소마이 피자 이렇게 4개 브랜드의 6개 매장을 하고 있다. ‘윤경 양식당’은 아내의 이름인 ‘윤경’을 딴것이다. ‘윤 식당’을 패러디한 것은 아니다. Gony’s는 내 이름을 딴것이다. 삼삼 하우스는 첫째 아들의 태명을 딴것이다. 소마이 피자는 딸의 이름인 ‘솜’ (SOMY)를 따서 지었다. 어찌 보면 가족 브랜드다. ^^




▶ 외식업을 시작한 지 3년째인데 매장이 6개다. 매장을 많이 늘린 이유는?

솔직히 하루라도 빨리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었다. 생각한 것을 실행으로 옮기고 싶었다. 또 당시에는 자신이 있었다. 이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2개까지 늘렸을 때 너무 잘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만심이 약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잠실과 제주점도 있다. 살짝 벅찬 부분도 있다.




▶ 다루는 메뉴가 다양하다. 선택의 기준이 있었나?

돈가스는 만들기 어렵지 않고 자신이 있어서 시작했다. 예전 건대에서 시작한 가게가 망한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해서 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홀에서 이렇게 보니 한쪽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분이 앉아 계셨고, 다른 쪽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젊은 여성분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걸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스타일에는 남녀노소가 있지만 음식장사에는 남녀노소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년 전만 해도 패션 브랜드도 아주 명확한 타깃, 콘셉트 등이 있었다. 강한 특징 있는 브랜드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유니클로처럼 고객의 Age가 넓어야 선택받을 확률도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다만 입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이삼십 대 여성분들이니 그분들에게 맞는 인테이리어를 콘셉트로 했다. 십 년 전에도 팔았고 십 년 후에도 좋아하고 팔 수 있는 음식을 하려고 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을 남다르게 팔아보자는 것이 모토가 되었다.




▶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돈을 잘 버나?

어떻게 매출을 얘기해야 하나? ^^ 투자한 금액이 아직 빛으로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회사 다닐 때 보다 5배는 버는 것 같다. 영업이익이 곧 모두 수익이라고 치면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은 빚을 갚아나가고 재 투자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우와 많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매장이 6개다 그 정도는 벌어야 하는 게 맞다.


외식업을 창업하고 처음 생각한 것은 5년을 연습게임으로 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연습게임 기간 동안 손해는 볼 수 없었다. 아이가 둘이다. 그리고 5년 후에 점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5년간 열심히 그 원동력을 찾아보자고 했다. 메뉴를 정하고 장소를 찾은 것이 아니라, 매장을 먼저 구한 후에 ‘여기에서 뭐할까?’를 생각했다. 모두 권리금이 없는 곳에서 시작했다. 2층이 구해지면 여기서 뭐하지? 이면 도로 골목 안에서는 뭘 해야 할까? 이렇게 고민했다.



▶ 성수동에서만 매장이 4개다. 성수동을 선택한 이유는?

홈 그라운드 이기 때문이다. 지금 성수동에 살고 있고 초, 중, 고를 여기에서 나왔다. 잘 아는 곳이었다.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오피스도 들어오고 있어서 주중도 괜찮고 서울숲도 있어서 주말 장사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주중, 주말 상권 모두 다 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은 것 같다. 괜찮은 선택이라고 본다.



▶ 계속 성장하는 힘은 뭐라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긴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재지 않는다는 말이다. 말하면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이다. 여태껏 그런 인생을 살았다. 일단 시작하면 무슨 식이든 해 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그리고 남들도 다 하는데 내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큰 대상이긴 하지만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내가 되지 못할 이유도 굳이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한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신중한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100%를 추구하지만 80%만 되고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 자영업 하는 분들은 '사람'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본인의 경우는 어떤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올바른 태도 (Attitude)의 중요성이다. 일에 대한 태도와 사람에 대한 태도를 제대로 갖추길 바란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일의 소중함, 남이 아닌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생각, 일을 대하는 자세, 이 일이 천직은 아니더라도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자영업 하면서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나도 일반적인 자영업자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이 엄청나게 오고 싶은 곳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너무 태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10명을 면접 보기로 하면 5명이 온다. 그중 3명을 뽑아서 일을 하다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면 2명은 나간다. 일하는 중에 핸드폰을 보지 말라는 얘기였다. 내가 일하러 왔지 너에게 잔소리 들으러 온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며 떠났다.



▶ 예전에 자영업자 인터뷰에 비슷한 얘기를 분이 있었다. 거기에 악플이 달렸다. ‘네가 최저 임금만 겨우 주고 부려 먹으니까 그런 거지’, ‘너는 그런 태도로 일해서 회사 뛰쳐나왔냐?’ 뭐 그런 악플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고용인으로 있을 때와 고용자로 있을 때의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나?


직장인과 사장 사이에는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내가 사장이 되어 보니 완전히 알지 못했던 세상이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월급을 많이 주면 그만큼 효율이 나고 효과가 난다고 믿는 것에는 리스크가 있다.


그래서 회사도 퍼포먼스를 먼저 보여주면 그에 맞게 인센티브도 주고 하는 것 같다. 서비스업, 자영업은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사람들이 작은 규모로 운영하는 곳이 맞다. 영업이익을 못 내는 즉, 사장이 한 달에 직원 월급 보다도 못 가져가는 분들도 많다. 그렇기에 먼저 직원들에게 선 투자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 같다. 나도 월급을 더 주기도 하고 주 5일 근무하면서 모든 휴일을 다 챙겨주고 더 쉬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부분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직장인 시절에 누리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정말로. 직장인이 누리는 무형의 것들은 야생으로 나와서야 보일 것이다.



▶ 치킨집 수렴의 법칙이 있다. (문과생-백수, 사업, 작가-치킨집 / 공대생-과로-치킨집>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다행히 난 과로로 인해서 회사를 퇴사하고 치킨집을 하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을 좀 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그냥 기름 넣고 닭만 튀기셔서 배달은 아웃소싱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매출이 엄청 잘 나오는 상위 매장을 보여줄 것이다. 세상에 쉬우면서 돈 많이 버는 일은 없다. 내가 그 매출이 잘 나오는 매장이 아닐 확률이 대부분이다. 그걸 말하지 않는 것이 사회고 그걸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 외식업은 고단한 일이다. 특히 가족의 이해와 도움 없이는 더더욱 그렇다. 본인은 어땠나?

좋은 질문이다. 나는 아내가 먼저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 우리의 길은 우리 부부가 직접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노력하는 사람을 만난 건 정말 내 인생의 행복인 것 같다. 아내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하다. 결혼을 안 한 분이 있다면 반드시 같은 곳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좋겠다. 성향은 조금 달라도 된다. 그 다른 성향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 나는 직원에게 살갑게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고 이런 거 잘 못하는데 아내는 그 부분을 정말 잘 한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아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까지 못했을 것이다.




▶ 하루 일과는 어떤가?

오전에 일어나서 아이 둘을 밥을 먹이고 어린이 집에 보낸다. 그리고 오전에 아내와 함께 성수동 매장 중에 하나로 출근해서 점심시간 넘어서까지 일을 한다. 그리고 사무 볼일이나 세금 결제 등 업무 처리를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이를 데리고 오고 저녁을 먹고 일과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한지는 오래되지는 않았다. 누가 보면 조금 여유롭다고 할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정말 달랐다. 당시 회사를 다니던 나는 점심시간에 매장에 나와서 서빙을 했다. 밥을 못 먹었다. 그리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서 일하다가 퇴근하고 다시 가게로 와서 일하고 청소 마감까지 다 하고 12시가 넘어서 들어갔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는 당연히 오전 준비부터 밤 마무리까지 모두 다 했었다. 그렇게 거의 3년 동안 기본 하루 12 시간 이상을 일했었다.




▶ 매장이 6개면 직원은 몇몇 정도인가?

매니저부터 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면 한 30명 정도쯤 될 것 같다.




▶ 30명 월급을 주는 사람이면 중소기업 사장님이나 마찬가지다. 월급 150만 원이라고 그냥 퉁쳐도 4,500만 원이다. 그냥 잘되는 곳 두 개만 운영하면서 골머리 아프지 않게 살고 싶지는 않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아까 말한 5년의 연습 과정이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금의 방식도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 거다. 그리고 나면 나중에 더 잘할 수 있을 거다. 린(Lean)하게 작고 소소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더 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에서 더 잘 만들어 나가고 싶다.




▶ 몸이 두 개로 분리된다면 각각의 몸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하나는 지금처럼 일을 할 것이고, 한 명은 새로운 것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채우면 좋겠다. 그럼 확실히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 수제버거의 달인으로 TV에도 소개되었다. 대단하다.

아, 그건 방송작가의 친구분이 우리 Gony’s에서 버거를 먹고 너무 맛있어서 친구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2016년에 수제버거의 달인으로 방송되었다. 얼마 전 생방송 투데이란 곳에서도 연락이 와서 출연하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운이 좋았다. 사실 외식업뿐 아니라 무엇을 하더라고 눈에 띄는, 고객이 느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윤경 양 식당은 플레이팅이 정말 예술적이다. 따라 하는 곳까지 있다. 무난하게 해서는 차별점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자신만의 날카로운 모난 부분을 갈고닦아야 한다.




▶ 전공자도 아닌데 레시피는 어떻게 만들었나?

우선 모든 책, 인터넷 사이트의 레시피로 음식을 모두 만들어 봤다.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메뉴를 만들 때는 일본이 돈가스는 세계에서 제일 잘하니까 일본의 ‘쿡패드’라는 가장 큰 레시피 사이트를 유료 결제를 해서 하나하나 모두 확인했다. 나는 어떤 음식을 할 때 그 음식을 최고로 잘 하는 셰프의 레시피를 찾아서 그대로 만들었다. 그다음은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다. 그 레시피는 레시피를 공개한 사람 중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의 것이기에 비싼 식재료를 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맛의 끝을 잡아서 기준을 정하고 오퍼레이션을 쉽게 만드는 법을 찾았던 것 같다.




▶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있나?

상품기획을 하는 일이라면 돌아가고 싶다. 아이디어를 내고 시작을 해서 판매까지 하는 모든 프로세스를 다 해보는 일이라면 회사로 돌아가서 해보고 싶다. 요즘은 외식업체에서 브랜드를 론칭하는 일에 많이 끌린다. 내가 시장을 분석하고 고민해서 만들어낸 요리, 상품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소비하는 것에 엄청나게 희열을 느낀다. 그런 일이라면 회사에서 하고 싶다.




▶ 동료나 친구들이 “장사는 잘되냐? 나도 프랜차이즈 하나 내줘, 회사 그만두고 이거 해야겠다.” 이런 질문은 없나?

다행히 만나는 친구는 개발자 이거나 다양한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어서 아직까지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 요즘 가장 중점을 두고 하는 일은 무엇인가?

비즈니스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큰 관점으로 보니 외식업으로 크게 성공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선은 임금, 임대료는 올라간다. 또 직장인들이 집으로 일찍 들어가는 트렌드도 생기고 있다. 직장인 근로시간 단축과 워 라벨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서 야근이 줄고 있고 회식도 1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방향은 잡혔고 이제 액셀만 밟으면 더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똑같이 팔면 마진은 줄어들고 이익도 줄어든다. 외식업은 부침도 크고, 트렌드도 제법 빠르다. 이런 사회의 큰 흐름 속에서 나는 이미 외식업계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맞추어 나갈까를 가장 고민하고 있다.


사실 오픈하고 얼마 전까지는 계속해서 배우고 학습하고 부딪히고 또 배우던 시간이었다. 그 대상은 대박집을 배우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이런 변화 속에서 다른 게임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해온 일은 같은 게임을 같은 방법으로 했던 것이다. 이미 수십 년이 넘게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이길 수가 없다. 그들은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 대답은 ‘외식업계에 강력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올해 열심히 차별점을 찾고 변화하려고 한다.





▶ 현재의 삶에 점수를 매겨본다면?

한 80점은 될 것 같다. 하고 싶은 사업하고 있고 아이도 있고 아내도 있고 건강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고, 나쁠 이유가 딱히 없다. 생각해 보니 90점은 넘을 것 같다. 이 점수가 낮으면 이 인터뷰를 하면 안 될 것 같다. ^^




지금의 선택이 잘 한 것이다 라고 느끼는 순간은?

고민할 필요 없다. 아이들과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때다. 보통 자영업 하면 모두가 얽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조금 시간 외 된다. 직장인 일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낸다. 그게 가장 좋다.





취업이 너무 힘들다. 취업을 원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한 번에 모든 일이 풀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면 좌절하지 말고 조금 돌아가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목표하는 회사가 있다면 당장 거기를 갈 수 없다면, 관련된 중소기업에 먼저 취업을 하고 실력을 쌓으며 기회를 보면 된다. 물론 당연히 그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을 원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런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예전에 “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연애를 못하는 사람은 정말 이유가 보였다. 여자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그림을 그려서 주고, 조개껍데기로 목걸이를 만들어 준다. 이건 정말 아니었다. 항상 자기 위주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경쟁자들도 모두 하는 똑같이 제너럴 한 스펙만 쌓은 후 ‘스펙이 이렇게 높은데 왜 날 안 알아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이 원하는 것을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많은 모임 등에 나가면서 관련 분야 사람을 만나면 그냥 솔직하게 물어보라. “어떤 사람을 선호하냐? 어떤 기술이 있어야 하냐? 가장 중점적으로 필요한 역량이 뭐냐? 어느 회사 출신의 어느 능력이 있는 경력사원이 많이 오나?”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자신만의 원칙 혹은 스스로 묻는 질문이 있나?

이 일을 하면 가족이 행복할까?라는 거다. 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게 있어도 아내의 동의가 없다면 하지 않는다. 가족의 행복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돈 많이 버는 것도 그 끝에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끝이 있었다. 또 하나는 최고로 가장 탁월한 사람, 회사라는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무언가를 이뤄낸 탁월한 사람, 조직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라는 질문으로 스스로 갇힌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5년 후 어떤 모습으로 있고 싶은가?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가 단순히 고객들에게만 가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특히 어린이들에의 식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는 가족이 평안했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고 나니까 세상의 모든 행복이 리셋되는 느낌이었다. 이보다 더 큰 희열과 행복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완전히 없던 존재이자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존재다. 나에게 희망이자 힘이다. 가족이 평안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남 눈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행복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길 바란다. 그런 기준을 가지고는 행복할 수가 없다. 그리고 관심이 있다면 재발 부디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가보길 바란다.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벗어나거나 향해 가거나’ 가 그것이다. 그는 지금에서 도망가기보다는 원하는 것으로 향하는 선택을 해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부터 관심 있었던 자신의 호기심과 관심사를 지속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확정시켜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계속 배웠고 알게 된 것을 표현했다. 행동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새로운 사람들은 그의 생각과 경험을 확장시켜 주었다. 외식업 사장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 업태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미래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가 그랬다. 5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발전시켜 나갈지 기대가 된다. 이 인터뷰가 나가고 나서 다시 한번 성수동의 그의 식당에 한 번 가봐야겠다.
직장생활연구소 kickthecompany.com 회사를 떠난 사람들 인터뷰 by 손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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