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서울대 의학박사 3대가 이어하는 선행

조회수 2020. 9. 21. 17: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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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병원 박영관 회장과 박진식 이사장
세종병원 박영관 회장과 박진식 이사장

3대가 가업을 잇는 경우가 드문데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서울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집안이 있다. 1대 박봉현 선생(작고)은 대구의전(현 경북대의대)을 나와 부산에서 혜원산부인과를 운영하며 서울대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의 박영관 회장과 박진식 이사장은 서울대 의대 동문으로 아버지는 흉부외과, 아들은 심장내과 전문의다.


3대 의학박사 집안의 교육 비결과 세종병원 운영 노하우가 담긴 박영관 회장의 자서전 《심장병 없는 세상을 꿈꾸다》를 읽으면 ‘바른 생활맨 매뉴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녀 교육을 잘하고 싶은 이들이나 굳은 의지로 꿈을 실현하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세종병원은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무료 수술로 잘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에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가 2만여 명에 이르렀다. 실력 있는 의사가 적은 데다 수술비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89년에 2만여 명의 어린이가 완치되었고 그 가운데 3분의 1인 7000여 명이 세종병원에서 수술받았다. 의료보험이 실시된 데다 의술이 발달한 덕분이다. 본인부담금 300만 원을 낼 수 없는 아이들을 수술해 주기 위해 박영관 회장은 여러 단체와 독지가들을 찾아다니며 성금을 모금했다.


박 회장은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을 병원 입원실에서 묵게 하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 주는 걸 보며 자랐다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의대교수로 재직하다가 1982년 경기도 부천에 세종병원을 개원한 이유를 박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1975년 봄, 수술비가 없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내 병원을 열어 아이들을 도와주리라 결심했습니다. 선천성 심장병은 6세 전후에 수술을 받으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적기를 놓치면 폐동맥 고혈압으로 20세 전후에 사망하게 됩니다.”


심장병 어린이 무료 수술 계속해


보건복지부 지정 국내 유일의 심장전문병원인 세종병원은 우수한 인력과 최첨단 장비, 5개 과의 협동진료,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익힌 선진 수술기법으로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개원 5개월 만에 일부 대학병원만 가능했던 심장판막 수술을 민간병원 최초로 성공해 파란을 일으켰다. 1시간 동안 심장을 멎게 해놓고 수술한 뒤 다시 심장을 뛰게 하는, 당시로서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세종병원은 심장 및 대혈관 기형 68가지 중 3개를 제외한 65가지의 심장기형을 갖추고 있다. 박영관 회장은 부검 심장을 얻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유형의 환자가 발생하면 사망할 수도 있어요. 치료법을 개발하려면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슬픔에 빠진 보호자에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죠. 때로 뺨을 맞기도 했는데 환자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가 의미 있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며 눈물로 기증해주셔서 심장수술의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세종병원은 인공심장 개발, 심장이식 수술 등 힘든 연구와 치료를 계속하면서 명문 병원으로 도약했다.

2008년 아들 박진식 이사장이 10년 6개월간 재직했던 서울대병원을 떠나 세종병원으로 오면서 제2의 도약을 이루었다. 직원들의 뜻을 모아 비전을 새롭게 수립한 박 이사장은 병원 규모에 비해 과한 액수인 40억 원을 들여 병원 정보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국제의료기관인증 JCI도 획득하면서 병원을 재편했다.


“선진국 병원은 심장내과 의사 10명에 흉부외과 의사 2~3명 비율인데 세종병원은 흉부외과 6명에 심장내과가 8명이었어요. 지금은 흉부외과 전문의 11명, 심장내과 전문의 31명, 소아심장전문의 8명입니다.”


이들은 1000여 건의 심장수술과 6000여 건의 심장혈관 촬영검사를 소화하고 있다. 2009년에는 뇌혈관센터를 개설했다. 심장과 뇌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확대한 것이다. 2017년 3월 인천에 메디플렉스 세종병원도 개원했다. 박진식 이사장은 해외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무료수술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제가 세종병원으로 올 때 아버지께서 외국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을 도와주는 사업을 계속 이어가면 좋겠고 어른 심장병은 네가 더 잘 아니 예방사업을 잘 해주기 바란다고 하셨어요.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돕기 사업은 세종병원의 값진 유산입니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 1400명이 넘는 외국 아이들을 치료해주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겁니다.”


박 이사장은 의료기술이 낙후된 중국과 동남아, 아프리카 지역 의사들에게 수술기법을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의사들이 우리 병원에 와서 수술을 참관하기도 하고 매년 개최하는 ‘쓰리데이 세미나’에서 기증받은 심장을 직접 보며 국내외 의사들이 심장수술 노하우를 익힙니다. 중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 나라 병원에 직접 가서 수술기법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공개하고 지원하는 겁니다.”


박진식 이사장은 병원을 경영하면서 아버지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태해지고 싶은 마음과 이만하면 됐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아버지를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요. 세종병원 같은 전문병원은 앞으로도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고집 센 전문가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고 거기에 맞는 시스템을 지원해 오신 일은 상상이 안 가요.”


최단기간 심장수술 2만 예를 달성한 세종병원은 무수히 많은 국내 1위 기록을 갖고 있으며 소아심장 분야와 관상동맥 판막 수술은 아시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심장병 사관학교


그동안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병원 경영과 수술 집도로 밤낮없이 달리던 박영관 회장은 1987년에 뇌졸중을 앓기도 했다. 조기에 대처하여 후유증이 거의 없는 상태다. 휘몰아치듯 일하다 주춤하는 동안 우울증도 겪었다. 2006년에 노조 파업에 외부 세력이 개입하면서 홍역을 치렀지만 일체의 타협 없이 이겨냈다.


열심히 달려온 세종병원의 별칭은 ‘심장병 사관학교’다. 세종병원 출신 의사와 간호사들이 유명 대학병원을 비롯한 전국 병원으로 뻗어 나갔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처음에는 좀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해외연수까지 보내 실력을 쌓게 만든 의사들이 다른 병원으로 갈 때 배신감이 들었죠.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병원 출신들이 나가서 기여하는 건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진식 이사장은 세종병원 출신 심장전문의들의 모임인 ‘세심회’에서 여러 칭찬을 들으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세종병원은 도움을 요청하는 중소 병원들에 심장전문의를 파견하여 수술기법을 알려주고 자립할 때까지 도와주고 있다. 심장병 없는 세상을 꿈꾸며 ‘아시아 최고의 심뇌혈관센터’라는 목표를 향해 의학박사 부자는 열심히 달리고 있다.


글 jobsN 이근미 조선뉴스프레스 객원기자, 사진 세종병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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