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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으로 작업하면서 술 마시는 공간은 왜 없을까'..연대생이 만든 술집

조회수 2020. 9. 21. 17: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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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 명물거리의 '로실링'

학부생의 하루는 길다. 오후까지 수업을 듣고 그 날 필기를 정리해야 한다. 과제와 다음 주에 있을 퀴즈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학생이 비교적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수많은 할 일들을 어떻게, 언제 할지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을 뿐 그 자체가 널널하고 한가로운 것은 아니다. 술 한 잔이 사치가 되는 날들이 반복될 때, 우리는 많은 경우 피로를 느낀다. 

출처: 김우현씨 제공
서울 신촌 명물거리의 '로실링'

연세대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김우현(28)씨의 지난 일상도 그랬다. 문과생으로서 취업 문턱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공대쪽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정보산업공학을 복수전공했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배우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수학 공부에 매달렸다. “제가 술을 좋아하는데, 술 한잔이 사치가 되는 하루하루가 반복되면서 피로를 느꼈어요. 그러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거죠. ‘왜 노트북으로 작업하면서 술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없지?’ 그리고 그 공간을 제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6년 10월, 김씨는 그 생각을 현실로 옮기기로 했다. 서울 신촌 명물거리 한 편에 ‘일상에 허락된 술 한 잔’이란 모토를 내세운 술집 ‘로실링(low_ceiling)’은 그렇게 탄생했다


알바로 모은 1200만원을 명물거리 한 켠에 쏟아 붓다


“대학생활 내내 온갖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병행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어요. 남들 다 다니는 여행도 안 다녔습니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 순간에 돈에 대한 아쉬움 없이 곧바로 도전하기 위해서였죠. 공교롭게도 그게 로실링이였습니다.”

출처: 김우현씨 제공
로실링 대표이자 연세대 재학생인 김우현씨

김씨가 창업을 결심했을 때 손에 쥔 돈은 1500만원 남짓. 가진 돈이 적었기에 발품을 많이 팔았다. 가게 자리를 알아보는 것부터 인테리어, 홍보, 현재 영업까지 모두 직접 뛰면서 금액을 줄였다.


“아는 디자이너 형의 도움을 받아서 시공 기간을 무려 100일로 잡고 시작했어요. 형이 다 해준 것은 아니고, 이렇게 저렇게 방법을 알려줘서 직접 자재도 구하고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써가면서 공사를 마쳤어요. 아버지께 공구 쓰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죠. 혼자 공사했기 때문에 모든 작업들이 계획보다 두 세 배씩 길어지며 끝이 났어요. 건물주께서 '아직도 공사하느냐'면서 안쓰럽다고 1달 월세도 빼 주시기도 했죠. 돈을 아끼긴 했지만, 들어간 품을 생각하면 돈을 더 들이는 게 낫지 않았나 싶어요.” 

출처: 김우현씨 제공
김씨의 생각이 반영돼 있는 로실링 내부(좌), 독특한 모양의 콘센트(우)

실제로 김씨의 가게에는 구석구석 그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마치 날것의 부품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돌려서 뚜껑을 열고 가게 테이블의 조명을 켤 수 있는 장치가 등장한다.


낮엔 대학생, 밤엔 사장님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기도 하지만 그는 아직 대학생 신분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17학년 2학기는 김씨에게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고 한다. 학업과 가게 운영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체력이 달렸다. 시간을 쪼개 써도 모자라 과제가 누락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소규모 수업에서 조는 일이 반복되자 불쾌하실까봐 교수님들께 사정을 설명하고 어쩔 수 없이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가게를 운영한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수업 마치고 ‘장 보러 가느냐’ ‘이제 출근하는거냐’고 물어봐 주시기도 했어요. 같이 수업 듣는 학우들한테는 가게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여기 앉아있다가 수업 친구들을 마주치면 ‘알바 하느냐’고 저한테 물어 보기도 하더라고요.”

출처: 김우현씨 제공
넓직한 테이블에 스탠드까지 놓여있어 '한 잔'하면서 노트북으로 작업하기엔 안성맞춤

대학 재학 중 가게 운영이 힘든 점도 있지만, 친구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저희 가게 메뉴의 특징들은 큰 그릇을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양이 좀 적게 보일 수는 있지만, 일부러 노트북과 안주를 한 테이블에 놓고 편하게 작업하시라고 작은 그릇을 사용해요. 저희 대표 술도 노즐을 깨끗이 청소하고 청량감을 극대화한 생맥주예요.”


그래서 로실링에는 ‘부어라, 마셔라’ 하며 음주가무를 즐기는 손님들은 별로 없다.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를 나누거나,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손님들이 주를 이룬다. 대부분의 술집들이 ‘불금’부터 이어지는 주말까지 손님이 가장 많은 반면 로실링은 그렇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주말보다 일상을 시작하는 월요일에 손님이 더 많아요. 일상을 이어가는 중에 찾을 수 있는 술집을 모토로 하는 제 생각을 잘 알아주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한 일이죠.”


신촌에 부족한 문화공간으로 남았으면…


11학번으로 연세대에 입학해 지금까지 신촌에서 그가 보낸 시간만도 햇수로 8년. 그만큼이나 신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김씨는 가게를 열기 전부터 신촌이 문화공간이 부족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실링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로실링에는 손님들이 모여 술과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행사 ‘시네마 참극’이 진행중이며, 밤늦게 음악을 감상하는 ‘음악 감상회’ 등의 문화행사도 기획하고 있다.


김씨는 학업과 가게 운영을 병행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휴학 중이다. 다만 졸업 이후에도 로실링 운영은 계속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다른 가게를 열게 된다면 로실링과 전혀 다른 종류의 가게를 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불안정한 학부생의 미래, 김씨의 도전은 많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제공한다. 일상에 허락된 술 한잔을 꿈꿨던 김씨의 철학이 또 다른 장소에서 펼쳐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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