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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아침 '앗 따가워' 짜증났던 평범한 직장인, 일냈다

조회수 2020. 9. 21. 17: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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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기 깎는 청년' 3의 좌충우돌 창업기

그동안 면도기에는 대안이 없었다. 글로벌 기업 2곳과 한국 기업 1곳이 시장 95%를 차지한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면도날을 살 때마다 '저 작은 칼날에 6000원이나 써야 하냐'고 말한다. 거대 면도기 기업이 세워 놓은 높은 진입장벽 앞에 철 없는 청년 셋이 섰다. 판교 스타트업캠퍼스 한 켠에서 돈 키호테 셋은 오늘도 풍차를 향해 내달린다.


면도하다 수염 뽑히는 거 짜증나 창업


김동욱(29)대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면도 뒤 피부가 붉게 변하고 뾰루지 같은 게 계속 나서 늘 짜증이 났다. 잡지를 보면 면도날을 보름마다 바꾸라고 한다. 면도날 가격은 부담스러웠다. 평범한 짜증이 출발점이었다. 경영학과를 졸업해 기획 회사에서 일하던 김동욱 대표는 면도기 시장을 혼자 분석하기 시작했다. 철부지 동생 김윤호(27)씨에게 이사란 직함을 주고 꼬드겼다. 이내 순진하고 까다로운 전영표(29)이사도 김 대표의 꾐에 빠져 버렸다. 2016년 셋은 그렇게 모였다. 

출처: jobsN
와이즐리 공동창업자 김동욱, 김윤호, 전영표씨.

회사를 차리기 1년여 전부터 김동욱 대표는 좋은 면도날 생산 공장을 찾아 헤맸다. 전세계 공장을 뒤지며 샘플을 받고 날마다 면도를 해댔다. 부드럽게 밀리고 절삭력이 좋은 면도날을 생산하는 공장은 많지 않았다.


"직접 부딪치면 생각보다 모두 우호적"


일반인은 절대 알 수 없는 게 바로 공장의 논리다. 우리는 늘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장은 녹록치 않다. 돈을 줘도 아무에게나 물건을 주지 않는다. 지금 잘 돌아가는 공장 입장에서 새 제안 때문에 생산 일정을 다시 짜고 수출 절차를 밟는 건 품이 든다. 물건을 산다고 해도 퉁명스러운 전자우편만 이따금씩 돌아왔다.


셋은 이메일을 대신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화로 만남을 요청했다. 직접 찾아가 나름대로 짜놓은 계획과 원대한 포부를 설명했다. 그러다 공장의 심리가 무언지를 알았다. "무조건 찾아 가서 얼굴을 익히고 웃고 떠들다 보면 정이 들어 도와줄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지금도 셋은 이 원칙을 지킨다. 공장 임원들은 "우리가 이렇게 많이 팔 것"이라고 부풀려 말해도 지금 당장 믿지 않는다. 다만 늘 셋이 같이 가서 술 한 잔 하며 부대끼다 보면 소주가 방어쓸개즙술로 바뀌는 기적이 결국 일어난다. 셋은 아직도 국내 공장을 갈 때는 함께 간다. 부모님 차 가운데 연비가 가장 좋은 차를 골라 탄다.


뒤집어 세우려고 수백번 각도 재설계


셋은 수많은 연구 끝에 면도를 할 때 상처가 나는 원인을 알았다. 면도날이 수염과 계속 마찰하다 보면 날 끝은 무뎌진다. 면도날 끝이 고르지 못하면 날은 수염을 잡아챈다. 날카롭지 않은 낫으로 잡초를 베다 보면 어느새 낫으로 풀을 잡아 뜯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절삭력이 낮아지면 면도날은 수염을 잡아 뜯게 되고 피부는 상할 수밖에 없다. 

출처: 와이즐리 제공
와이즐리 면도기. 눕혀도 안정적으로 둘 수 있어 면도날이 녹스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한다.

"어떻게 하면 절삭력을 오래 유지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나온 게 '플랫 백' 면도기다. 대부분 면도기를 엎어서 보관한다. 면도기를 엎어 보관하면 면도 뒤 잔여수분은 칼 끝으로 모인다. 칼끝이 잔여수분과 만나 녹슬기 시작한다.


면도기를 눕힐 수 있게 만들었다. 시중에 나온 모든 면도기를 눕혀봤다. 제대로 누울 줄 아는 면도기가 없었다. 면도기 손잡이가 대부분 원형이나 굴곡진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누울 줄 아는 면도기를 직접 만들었다. 평평한 고무 손잡이를 만들고 적절한 무게감을 주려 수백 번 내부 구조를 바꿔 나갔다.


그렇게 '끝판왕 면도기'가 나왔다. 좋은 면도날이 좋은 보관법을 만나자 절삭력은 오래 최상의 상태를 유지했다. 게다가 시중 면도날의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까지 함께 하는 그 곳, 면도기 시장의 달콤한 지점(Sweet Spot)은 거기 있었다. 면도기가 6000원, 면도날이 2400원이다. 면도날 2개에 면도기 1개를 합한 '스타터 세트'는 8900원이다.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판매한다. 

출처: 와이즐리 제공
출장이 많은 소비자를 겨냥한 휴대용 면도날 케이스.

와이즐리는 휴대용 면도날 케이스도 제공한다. 출장 등 면도기를 휴대해야 하는 직장인을 배려했다. 면도기는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다. 가방에 넣으면 가방 안쪽에 닿아 면도날과 가방 안감이 상한다.


불편하기 때문에 시작했다. 셋은 한 입 모아 말한다. "새로운 브랜드가 시장에 잘 녹아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멋스런 모델과 자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끊임 없이 노력하고 고쳐 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시장은 응답할 겁니다. 그게 우리 브랜드가 지켜 나가야 할 유일한 원칙입니다."


아직까지는 사업 시작단계다. 김 대표는 "올해 1월 말 제품을 론칭해 아직 출시 초기 단계"라고 하면서도 "그래도 출시 4주 만에 6개월 예상 판매량을 모두 팔았다"고 말했다.


글 jobsN 최훈민 객원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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