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사고 칠 기회'주려고 자리 비우는 특별한 사장님

조회수 2020. 9. 21. 17: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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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난민들의 정착을 돕는 '쓰지 않은 커피'
문준석 ‘내일의 커피’ 대표

“아프리카 커피의 매력은 무궁무진합니다. 구수하고 달큼한 맛 혹은 딸기, 라즈베리같이 새콤달콤한 과일 맛이 나기도 하고, 다양한 꽃 향이 어우러지지요. ‘커피는 쓰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면 커피의 또 다른 매력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듯 편견을 걷어내고 보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다재다능한지 알 수 있습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과 낙산공원 사이, 호젓한 골목길에 ‘내일의 커피’란 이름의 카페가 있다. 복작이는 거리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들어서니 아프리카 출신 바리스타가 아프리카 원두로 만든 커피를 내려준다. 풍부한 맛과 향의 아프리카 커피가 오감을 자극한다.

최상의 아프리카 원두를 약하게 볶아낸 후 본연의 맛과 향이 최대한 살아나도록 추출한 드립커피라고 한다.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재배한 원두로 만든 커피를 ‘달큰한 드립’, ‘향이 가득한 드립’, ‘쌉쌀한 드립’으로 나누어 내놓고 있었다.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다양하고 질 좋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름난 이 카페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아프리카 난민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문을 연 카페이기 때문이다. 문준석 대표는 2014년 이 카페를 열기 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2009년부터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봉사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는 저 역시 ‘전쟁이나 가난, 정치나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멀고 먼 낯선 땅까지 온 사람들이니 얼마나 힘들고 막막할까?’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의 밝고 건강한 에너지, 긍정적이고 활기찬 태도에 감명을 받았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 만났지만, 그 친구들이 오히려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힘내. 잘될 거야’라면서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현재를 즐길 줄 알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참 각박하게 살고 있구나’ 반성했습니다. 2017년 4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2만 5510명이지만,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3.9%인 694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합니다. 경황없이 탈출하느라 아무것도 챙겨 오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공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다 결국 출국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공장 생활밖에 경험하지 못하고 떠납니다. 공장의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아프리카 출신은 소외당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까만 피부의 아프리카 사람들을 낯설어하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사실 아프리카 난민 중에는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도 많습니다. 독재정치에 항거하거나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서 온 사람들이죠.”


아프리카 난민을 바리스타로 채용해 직업 교육과 한국어 교육

‘아프리카 친구들의 참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아프리카 바리스타가 만든 아프리카 커피’를 내놓는 카페를 떠올렸다. 그 아이디어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고,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대회 ‘위키 서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후 소셜펀딩을 받아 2014년 10월 카페 문을 열었다. 원래 커피를 좋아하는 문준석 대표는 자신부터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후 아프리카 난민을 직원으로 뽑아 교육했다.


“아프리카는 커피의 원산지이자 수출국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아프리카 현지에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커피를 생산해서 수출만 하지 소비하고 즐기는 문화는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한국에 왔을 때 줄지어서 커피를 사 먹는 사람들을 보고 어리둥절했다고 합니다. 저희 직원들도 처음에는 커피 맛을 잘 모르다가 차츰 전문가가 됩니다.”


문 대표는 ‘내일의 커피’를 아프리카 난민을 위한 학교처럼 운영한다고 말한다.


“우리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 바리스타 훈련과 서비스 교육을 받고, 한국어 공부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 교육은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주세요. 그렇게 2년 동안 교육한 후 졸업시킵니다. 이제까지 우리 카페를 거쳐 간 아프리카 난민은 6명입니다. 출국한 사람도 있지만, 다른 카페나 식당에서 일하게 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한국에 아무 연고도 없고 한국어도 하지 못해 취업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카페를 디딤돌 삼아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차츰 카페가 알려지면서 우리 직원이 졸업하는 대로 채용하겠다고 기다리는 곳들도 생겨나고 있어요.”


난민의 자립을 위해 시작한 카페이지만, 카페 어디에도 난민을 연상시키는 문구는 없다.


“카페를 시작하면서 ‘난민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면 색안경을 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커피 맛이 좋아서 찾아오다 난민에 대한 관심도 생기는 카페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희 카페에서는 유독 손님들이 바리스타와 대화를 많이 나눕니다. 웃으면서 반기는 아프리카 출신 바리스타에게 손님들이 ‘어디에서 왔어요?’라고 물으면서 대화가 시작되지요. 서로 벽을 허물고 이야기하면서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저희 카페에서 일했던 직원이 얼마 전 결혼을 했는데 카페 손님이 10명이나 찾아와 축하해주었어요.”


그는 직원에게 ‘사고 칠 기회’를 주기 위해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에는 일부러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한국어가 서툴러서 말실수하거나 주문을 잘못 받아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문제가 생겨야 그때그때 대처하면서 배우는 게 있습니다. 그럴 기회를 주는 거죠”라고 말하는 문 대표를 보면서 아프리카 친구들로부터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를 배운 게 아닌가 싶었다. 가치관도 문화도 관습도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과 일하면서 어려운 일도 많지 않았을까 짐작되지만 그는 “좌충우돌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즐겁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독일은 난민의 정착을 돕기 위해 주거, 생활비 지원, 의료혜택, 언어 교육과 직업 교육 등 다방면으로 지원합니다. 우리나라도 2012년 난민법을 제정했지만,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는 난민이 많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을 개인 차원에서라도 도와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카페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바리스타와 동일한 월급에 4대 보험 혜택도 주어서 주거와 생활, 의료문제를 해결하게 하고, 한국어 교육과 직업 교육도 하죠.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이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의 커피’는 언제 어디에서나 아프리카 스페셜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드립백 제품과 아프리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카드, 텀블러, 머그잔 등을 온라인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머그잔에는 ‘쓰지 않을 거야. 인생도 커피도’란 문구가 쓰여 있다. 아프리카 난민들이 쓰고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문 대표의 마음이 담긴 듯하다.


글 jobsN 안희찬 객원기자, 사진 김선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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