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3일은 강추위, 4일은 미세먼지.. '삼한사미'에 괴로운 알바생

조회수 2020. 9. 23. 15:22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삼한사온은 옛말, 이제는 삼한사미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서울은 훨씬 북쪽에 있는 러시아 모스크바보다도 때때로 낮은 기온을 기록하며 ’서베리아‘(서울 + 시베리아)라는 말도 생겨났다. 생업의 현장에서 발벗고 뛰는 ‘알바생’들에겐 최악의 날씨다.


그런데, 올 겨울엔 춥다는 것 외에도 알바생들을 괴롭히는 존재가 있다. 바로 미세먼지다. ’서베리아‘에 이어 ’삼한사미‘라는 말도 등장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겨울은 사흘은 춥고 나흘은 따뜻한 ‘삼한사온’의 특성을 보였는데, 이제 사흘은 춥고, 사흘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 돼버렸다. 필자가 알바 현장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추위는 물론, 미세먼지와 싸우고 있었다.


칼바람에 덜덜 떠는 알바생들

 지난 2월 2일, 이날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8도였다. 기온 자체는 평년 기온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오갔다. 오전 9시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성북구에 위치한 H여자중학교 정문 앞에서 패딩과 목도리, 장갑으로 무장한 교복매장 판촉아르바이트생이 추위에 떨고 있다.


  “양말은 그나마 두 개 신고 나와서 괜찮은데 장갑 하나만 낀게 너무 후회돼요.” 이 날은 성북구 지역 초등학생들이 중학교 배정을 받고 교복 공동구매 신청을 위해 배정받은 학교에 방문하는 날이었다. 이날 만난 J씨(21)는 교문 앞에서 교복 브랜드의 카탈로그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J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찬바람을 맞으며 근무했다. “학생이라도 많이 와서 바쁘면 덜 추울 것 같은데 점심때가 지나서도 신입생은 두 명 밖에 못 봤어요.” J씨 앞에 놓인 카탈로그 한 박스가 무색하게도 교문 앞은 썰렁했다.


  “이 한 박스를 그대로 매장에 가져다주기도 눈치 보이고 최저시급 받으면서 추위에 떨자니...원래 다음 주에도 근무하기로 하긴 했는데 또 나갈지는 고민이이네요.” J씨는 학생들이 너무 춥다보니 예정대로 학교에 들르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2월 3일, 서을 동대문 시장의 한 매장 앞에서 만난 나레이터 모델 K(26)씨. 그는 한 화장품회사가기획한 설맞이 할인행사를 지원하고 있었다. “겨울엔 행사가 없어 나레이터 모델 수요가 많이 줄어드는데요, 일거리가 생겨서 좋긴 하지만, 너무 춥네요.” ‘롱패딩’을 걸치고는 있지만, 그 안에는 짧은 치마와 스타킹이 전부였다. 멘트 중간중간 핫팩으로 손을 녹여보지만 이미 빨갛게 얼어버린 손을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너무 추우면 입이 얼어서 말도 제대로 안나와요. 또 마이크는 얼마나 차가운지...” 매서운 날씨에도 밖에서 일하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취업준비 하면서 짧게 일하고 많이 벌려고 하니 이만한 일이 없더라”고 했다. 나레이터 모델 알바는 대표적인 ‘고소득 알바’로 꼽힌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알바천국이 2017년 1월부터 5월까지 올라온 채용공고를 분석해 내놓은 시급 높은 아르바이트 TOP10에서 2위를 기록했다. 당시 기준, 평균 시급은 1만228원이었다.


날 풀리면 미세먼지에 곤혹


  인천 연수구의 E카페에서 일하는 한소진(24)씨는 한파보다 힘든 것이 미세먼지라고 말한다. 그는 미세먼지 경보 이어진 지난 1월 일주일에 4일을 카페에서 일했다. “평소 기관지가 약해 미세먼지가 걱정이긴 했지만, 실내에서 일하는 카페 알바였고 쉬는 날엔 집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출처: 사진 : 한 씨 제공
제조바 옆에 출입문이 바로 붙어있어 미세먼지가 있는 날이면 곤혹스럽다는 한 씨

  하지만 한씨는 병원에 다니며 기관지 치료를 받아야했다. “매장 문이 조금 뻑뻑한데 손님들이 정말 문을 잘 안 닫고 다니세요. 조금만 당기면 잘 닫히는데… 바쁜 와중에 문까지 신경쓰기는 어렵거든요.” 그가 일하는 카페는 출입문 바로 옆에 음료를 제조하는 바가 있는 구조였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문이 열려있어요. 밖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닐 수 있어 괜찮은데 매장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까 일하면서 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먹는 것 같아요.”

  한씨 이외에도 20~30대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는 젊은 알바생들이 미세먼지 때문에 겪는 힘겨움을 호소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단기로 야외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했는데 나가야 할지 걱정’이라는 글이 올라오자 “그 시급이 목숨값이다.” “병원신세 질 바에는 집에서 쉬어라.”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한 익명게시판에 “미세먼지 때문에 후두염이 생겨 미니 공기 청정기를 사무실에 두고 싶은데 알바가 ‘유난떤다’는 소릴 들을 까봐 눈치보여서 구매를 주저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오자, 수많은 알바생들의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앞으로 또 몇 차례의 한파가 예견되어 있다. 미세먼지 역시 기류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우리나라를 덮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알바생들에게 작은 힘이 될 수 있는 ‘핫팩’과 ‘마스크’를 지원해주는 사장님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그들을 위해 소소하지만 ‘문 잘 닫고 다니기’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