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밖에 못하던 훈남 멕시코 청년, 한국 교수 됐다

조회수 2020. 9. 23. 15: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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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 강점 살려 29살에 교수로
‘IT 강국 꼬레아’ 찾아온 멕시코 청년
스타트업 취업했지만, 회사 어려워져 퇴사
‘위기는 기회’ 강점 살려 29살에 교수로

최근 개봉한 디즈니 픽사의 영화 ‘코코’는 올해 개봉작 중 처음으로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겔.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떠났다.

출처: 산체스 씨 제공
한국을 사랑하는 청년 구스타보 산체스(29)

미겔처럼 열정 하나로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온 멕시코 청년이 있다. 구스타보 산체스(29)씨다. 2011년, 그는 ‘컴퓨터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일념으로 IT강국 ‘꼬레아’로 왔다. 막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안녕하세요’란 말밖에 할 줄 몰랐다. 그런 그가 올해 3월부터 계명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조교수로 교단에 선다.


’컴퓨터광’이었던 멕시코 소년


산체스씨는 멕시코 남쪽 치아파스(Chiapas)주(州) 툭스틀라 구티에레스(Tuxtla Gutiérrez)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컴퓨터광’으로 유명했다. 자신은 물론, 주위에서도 그가 대도시 멕시코 시티(Mexico City)나 몬테레이(Monterrey)의 명문대로 진학하리란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친형이 몬테레이에서 공부하다가 사고에 휘말려 사망했고, 부모는 산체스의 유학을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고향에서 대학을 갈 수밖에 없었다.

출처: 산체스씨 제공
그는 멕시코를 벗어나 더 큰 세상을 꿈꿨다.

-컴퓨터 과학이 아닌 메카트로닉스를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광’이었어요. 유튜브로 이런저런 프로그래밍을 배웠죠. 하지만, 멕시코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컴퓨터 기술 수준은 낮은 편입니다. 멕시코에서 컴퓨터 공학을 배워도 전공을 살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카페에서 일하거나 선생님이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때문에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를 택했어요. 메카트로닉스는 기계와 전자, 컴퓨터 과학을 융합한 학문입니다. 저는 로봇에도 관심이 많아서 일단 두루두루 배우려고 했어요.”


-대학에선 무엇을 했나?

“치아파스 공대에서 메카트로닉스를 전공했습니다. 소형 로봇 연구를 많이 했는데요, 저희 팀이 만든 로봇으로 2010년 미국 댈러스(Dallas)에서 열린 ‘VEX Robotics Competition’이라는 대회에 멕시코 대표로 참가해 6위를 차지했어요. 이런저런 성과로 멕시코 정부 연구 교환학생에 뽑혀 미국 조지 워싱턴 대에서 1년간 유학 생활도 했고요. 미국에서 최신 컴퓨터 동향을 접하고 나니 ‘큰물’에서 놀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어요.


IT 강국 ‘꼬레아’에서 스타트업 도전하다


산체스씨는 2011년 대한민국 정부 초청장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처음에 ‘안녕하세요’ 밖에 할 줄 몰랐다.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1년 3개월간 한국어를 배웠다. 어느새 모국어인 스페인어 만큼이나 한국말이 익숙해졌다. 연세대 컴퓨터과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한국의 한 스타트업에 취업했다.

출처: 산체스씨 제공
2011년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뽑혀 연세대 컴퓨터과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한국으로 오게 된 이유는?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멕시코에 들어온 삼성, LG 제품들을 보면서 ‘IT 대한민국’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요. 그래서 한국 정부 장학생에 지원했어요. 그런데 덜컥 뽑힌 거죠. K-POP를 즐겨 들으며 ‘언젠가는 한국에 가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화됐죠.”


-대학원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나?

“연세대에서 컴퓨터과학 석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학부 전공이 컴퓨터 과학이 아니라 학부 수업과 대학원 수업 둘 다 들었어요. 전공 공부하랴, 연구실 일하랴 밤샌 날도 많아요. 물론 가장 힘들었던 건 언어였죠. 열심히 공부해 한국어 능력시험 4급을 받았지만, 교수님과 랩미팅(연구회의)을 할 때 한국어를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겨우 알아듣기까지 1년이 걸렸습니다. 그나마 영어 잘하는 박사 선배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더 걸렸을 겁니다.”


-졸업 후 대기업에 가지 않고 스타트업 택한 이유는?

“한국 친구들이 취직을 고려할 때 대기업만 가려고 하는 게 충격이었어요. 멕시코에선 대기업에 가도 연봉이 특별히 높은 건 아니라 자영업을 많이 해요. 멕시코 사람들은 대체로 느긋하고 느린데, 한국의 대기업은 ‘빨리빨리 문화’가 있는 것도 제겐 부담이었습니다.”


29세에 교수 임용된 비결은?


산체스씨는 초소형 스마트폰 센서를 만드는 스타트업 ‘스탠딩에그’에서 4년가량 일했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초소형 전자기기 시스템(MEMS, 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기술을 보유한 회사였다. 산체스씨는 즐겁게 회사에 다녔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퇴사했다. 위기였지만, 그는 주어진 기회를 잘살려 계명대 컴퓨터공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우선은 2년짜리 계약이다. 하지만 그는 박사 학위를 따고, 능력을 입증해 테뉴어(정년보장)를 받아 한국에서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출처: jobsN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산체스씨

-갑자기 교수로 진로를 바꾼 이유는?

“회사가 어려워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왔죠.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때, 대학원 졸업생 모임에 갔어요. 한 선배가 ‘계명대학교에서 외국인 교수를 구하고 있으니 지원해보라’고 했어요.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하고 싶은 연구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겠더라고요.”


-29살에 교수 임용은 한국인도 쉽지 않은데 당신의 강점은?

“요즘 대학교에서는 전공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계명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과의 교수를 찾고 있었는데 영어와 한국어를 둘 다 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어요. 대학원 때 컴퓨터 패턴 인식 관련 논문, 스타트업에서 했던 스마트폰 센서 연구, 그리고 한국어와 영어 실력 때문에 직장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정교수가 되기 위해 박사 학위 과정도 병행하고요. 한국의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와, 근면함에 반했어요. 이젠 타코와 퀘사디아보다 냉면과 불고기가 더 맛있거든요. 학교에선 학생들과 함께 장애인을 위한 소프트웨어나 인공지능(AI)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장채린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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