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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의 선데이서울, 김태리의 마이마이 탄생시킨 이 사람

조회수 2020. 9. 25. 22: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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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미술감독
영화 ‘1987’ 미술감독
장면, 소품 하나에도 장인정신

흥행작 ‘1987’엔 숨은 공신이 있다. 미술감독 한아름(41)씨다. 영화 속에 섬세하게 구현된 80년대 서울 길거리와 소품들은 모두 한 감독 손끝에서 나왔다. 작품 하나 마칠 때마다 이 하나씩 빠진다 할 정도로 열정을 다해 일하는 그의 작품인만큼, 퀄리티에 빈틈이 없다.

출처: 한 감독 제공
촬영중인 모습

영화는 ‘보는’ 예술


첫 전공은 순수회화였다. 그러나 이내 한예종 무대미술과로 진로를 바꿨다. 공간을 다루는 일에 흥미를 느껴서다. 다행히 이 방면에도 재능이 있어, 무대미술 분야의 세계적인 박람회인 ‘유럽 PQ’에서 TOP 10에 들었다 한다.


연극 무대미술을 하다 영화판에 뛰어든 세월이 12년째다. ‘해어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불한당’ 등, 미술 감독 타이틀을 달고 만든 영화가 어느덧 8편째다. “미술감독은 상상을 시각으로 구현해야 합니다. 고증을 꼼꼼히 하거나, 아예 없는 세계를 창조해야 하죠.”


시나리오 분석을 가장 먼저 한다. “캐릭터의 감정, 영화 분위기를 세트 디자인, 소품 설정에 반영해 표현합니다. 때론 감독과 상의하다 역으로 시나리오를 고치는 때도 있죠.”

출처: 한 감독 제공
'해어화' 세트장

사실 과거 충무로에선 미술감독 일은 시나리오 따라 필요한 물건을 설치해 두는 정도뿐이란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그정도 업무로 만족하기엔 크리에이터로서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한다. 예술혼을 발휘해 같은 장르 영화도 매번 다르게 만들었고, 시대물도 고증뿐 아니라 영화 특유의 분위기와 주제의식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꾸몄다.


“해어화에서는 소율(한효주)이 바라보는 40년대 경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녀의 감정을 최대한 장면에 반영해 냈습니다. 불한당은 ‘캐주얼 느와르’라는 감독 설명을 듣고 기존의 무겁고 잿빛톤이었던 느낌 대신 톡톡 튀는 씬을 살려 넣었어요. 그게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이 됐죠.”


’1987’은 꼭 해야 했던 작품


필모그래피를 쌓는 동안 ‘항상 뭔가 새로운 걸 하는 미술감독’이란 평을 들었다. “1987에는 주관적 시각을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실제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 영화를 봐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완벽히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자료를 다 뒤져 87년 명동 거리를 똑같이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 사상 최초로 명동성당 안에 들어가 촬영을 하기도 했죠. 남영동 509호 취조실에 있던 것과 같은 회색 마블링 욕조와 타일은 이젠 국내에선 구할 수 없어 일본에서 가져왔습니다.”

출처: '1987' 스틸컷
(왼쪽부터) 남영동 509호 취조실, 대공수사 처장실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정성을 다했다. 영화 속 ‘한병용(유해진)’이 들고다니던 잡지 'TV가이드'와 '선데이서울'은 그 당시 종이 무게까지 그램 단위로 정확히 맞춰 만들 정도였다. “‘연희(김태리)’의 마이마이는 80년대 상품을 아직 갖고 있던 사람을 수소문해 구입했습니다. 연희네 슈퍼에 있는 과자도 제조회사에 당시 패키지 디자인 샘플을 요청해 똑같이 만들었고, 몇 분 안나오는 장면이지만 최대한 현실적으로 만들고자 진짜 과자도 채워넣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디테일에 신경쓴 이유는 작품 완성도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진심을 담아내고 싶어서였다 한다. “저는 물건 하나에도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1987에 나오는 소품은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성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죠. 특히 평소에도 이런 작품은 꼭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참여할 기회가 온 것인지라 한층 더 정성을 쏟았습니다.”

출처: '1987' 스틸컷
(왼쪽부터) TV가이드, 연희가 선물받았던 마이마이와 당시 음료수병

창작은 고통이자 행복


영화는 기본적으로 협업이다. 미술 감독 또한 여러 팀 사이 업무 조율을 맡아야 한다. “감독과 회의하고 디자인 컨셉을 결정하면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합니다. 의상팀, 소품팀, 분장팀, CG팀, 세트제작팀 등과 함께 일을 진행해요. 하루에 전화를 100통씩 받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웬만한 직장인 몇 배를 벌지만, 그에게도 힘든 막내 스태프 시절이 있었다. “철야를 밥먹듯 하며 일하는 거에 비하면 보수도 적고 힘든 시기가 있었죠. 그래도 언젠간 미술감독으로 제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기 신념을 가져야 꿈을 이룰 때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 기술적 면에선, 꼭 미술을 전공할 필요는 없지만 미술팀에서 필요한 기본 툴은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출처: '1987' 스틸컷
연희네슈퍼 앞 촬영 모습

그는 창작을 잘 하려면 많이 보고 느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감성이 중요한 일이니까요. 뻔한 장면도 남다르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헤어진 여자’를 표현할때 쓸쓸히 길을 걸어가는 모습 대신 찻잔을 먼저 보여주고 그 찻잔 속에 비치는 얼굴로 표현하면 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겁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일은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계속 하고 싶은 행복한 일이라 한다. “영화 한 편을 위해 오랜 기간 밤낮없이 일해야 하지만 작품이 완성되면 뿌듯함은 비할 데가 없죠. 무엇보다 제가 가진 상상력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글 jobsN 김민정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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