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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 세우고도 "내 기록 아니다" 말하고 다녔던 그녀

13년 동안 국대 자리 지키는 '평영 간판' 백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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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N 작성일자2018.01.13. | 20,165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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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때 수영 시작·중2 때 국가대표로 발탁
또래 선수들 은퇴했지만 13년 동안 자리 지켜
“명예로운 선수로 남고 싶다”

전업 운동선수는 직업 수명이 짧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가 전성기다. 수영선수도 마찬가지다. 물론 세상 일이 대부분 그렇듯, 이 방면에도 예외는 있다. 올해로 수영 국가대표 13년차를 맞은 백수연(27·광주시체육회) 선수가 바로 그런 예다.


어느덧 한국 나이로 2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제2의 전성기다. 2017년 전국체전 평영 100m, 200m, 혼계영 400m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평영 100m에선 1분07초70로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한국 역대 기록을 통틀어 1분7초 대 진입은 처음으로, 2014년 김혜진 선수가 갖고 있던 기록(1분08초14)을 0.44초 앞당겼다.

백수연 선수. 그는 집이 있는 경기 안산과 잠실 종합운동장을 오가며 훈련하고 있다.

출처 : jobsN

중2때 국대 발탁 “물속에선 오롯이 내 세상”


경기 안산에서 태어나 5세 때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을 즐기는 부모님을 따라갔다 남다른 재능을 발견했다. 초1 때부터 동호인이 참가하는 마스터스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초6 때부터 소년체전에 출전했다. 대회마다 금메달을 쓸었다.


2005년 중2 때 국가대표로 발탁돼,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평영 100m 동메달을 따며 두각을 보였다. 지금까지 세계선수권대회에 6번, 올림픽에 2번 출전했다. 같이 활동했던 또래 선수인 정다래, 정슬기씨는 이미 은퇴했다. 하지만 백 선수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부분 운동선수가 어릴 때 두각을 나타내 선수 길을 걷긴 합니다만, 본인이 싫었다면 지속하기 힘듭니다. 수영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물속에서 온전히 내게만 집중할 수 있어요. 다른 종목은 감독·코치님이 하는 말, 응원소리가 들리지만 수영은 아무것도 안 들려요. 물소리만 들리죠. 저는 평영 선수라 경쟁 선수도 보이지 않아요. 경기 때는 스스로가 아니면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느낌, 오롯이 내 세상에 있는 것 같아 좋아요.”


그는 처음 나간 국제 대회(몬트리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평영 100m 한국 타이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평영 100m(1분10초22)에서 동메달을 따 주목을 받았다.


실력 유지는 물론, 어릴 적부터 행동거지도 조심했다. 인성 논란은 남의 일이었다. 그는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부터 참고 견디고 담아서 썩히는 감정이 많았다”고 했다. 선수촌과 수영장에서만 있다 보니 학교 친구들과는 데면데면했다. 시험기간에 학교에 갔더니 책상과 의자가 없어진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공부를 했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은 하지만 진로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는다.

출처 : TAGONA 제공

-고등학교 때 슬럼프가 왔다구요.

“고2 때쯤이었던 거 같아요. 성적이 뚝뚝 떨어지는 슬럼프가 아니라 ‘한끝이 모자란다’는 느낌이었어요. 똑같이 훈련하지만 뭔가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훈련이 잘 되면 물이 손에 착 감긴다는 느낌이 있는데 그렇질 못했죠.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슬럼프였더라구요."

수영선수는 고교 졸업 후 대부분 실업팀에 들어간다. 백 선수도 관습에 따라 2009년 경기체고 졸업 후 강원도청 실업팀에 들어갔다.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평영 200m 준결승에 진출했고, 전국체전에서는 평영 100m, 200m 1위를 차지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회 때는 기량이 정점에 이르렀다. 하루에 2번이나 개인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여자 평영 200m 준결승에서 9위(2분24초67)로 아깝게 결승에 가질 못했다. 8위를 한 선수보다 0.21초가 부족했다.


-아무래도 런던 올림픽 때를 떠올리면 아쉬울 거 같아요. 대중은 메달 딴 선수만 기억하니까.

“경기 때는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만큼 최선을 다해서 후회는 없었는데, 돌이켜볼수록 여운이 진하게 남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까지 아쉬움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죠.”


-노력한 만큼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어요. 운동선수에게 ‘마인드 컨트롤’, ‘멘탈 관리’가 중요한 이유인데요. 어떻게 관리하세요?

“모든 선수들이 “‘훈련해도 왜 안될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루하루 훈련이 힘들죠. ‘맞게 하고 있는 걸까’ 우울할 때도 있구요. 하지만 타협하면 안 돼요. 생각을 떨쳐내야 합니다. 칭찬을 들어도 그걸 곱씹지 않고 빨리 잊어버려요.”

(왼쪽부터) 2017 전국체전 경기 모습과 100m, 200m, 혼계영 3관왕 한 모습.

출처 : TAGONA 제공

2017년 한국신기록, 믿을 수 없었다


양궁 같은 메달 효자 종목에는 기업 후원이 척척 붙지만 기초종목은 그렇지 않다. 그나마 수영연맹이 지원을 해야 하지만, 2016년 대한체육회가 수영연맹을 관리단체로 지정한 다음 선수들은 기대를 접어야 했다. 관리단체에는 국고보조금이 끊기기 때문이다.


백 선수도 선수촌을 나와 실업팀에서 받는 수당으로 훈련비, 식비, 용품을 충당해야 했다. 2017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에는 물리 치료 트레이너도 없이 출전했다. 경기 전후 근육을 풀어야 할 때면 다른 팀 트레이너에게 부탁했다. 전체 13위로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환경이나 제도를 탓할 수도 있을 텐데요.

“개의치 않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생각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안 돼요. 제 할 일이 있으니까요. 어쨌거나 제가 부족해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제 소속사(TAGONA)가 있으니 더 나은 환경에서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2017년 전국체전에서는 한국신기록을 세웠어요.

“기대도, 예상도 못했어요. 한동안 ‘내가 어떻게 한지 모르겠다’. ‘내 기록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죠.”


명예롭게 은퇴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13년간 국가대표를 한 소감은 어떤가요.

“저는 다행히 큰 부상이 없었어요. 몸이 따라주니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최고참은 아닙니다. 같은 클럽팀에 남유선 언니와 함께 훈련하고 있어요. 저랑 6살 차이인데, 후배들과 똑같이 열심히 하세요. 언니를 보며 자극받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박)태환 오빠도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쉽지 않은 일임을 알아서 대단하다 생각해요.”


-은퇴 후를 어떻게 그리나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어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아니지만 ‘대단한 선수였다’라고 회자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이후엔 국제심판을 생각하고 있어요. 무언가를 다시 처음부터 할 생각을 하니 두렵기도 합니다.”


-8월 열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도전할 예정이라 들었습니다.

“지금은 훈련량이 많지는 않고, 몸이 물속 감각을 깨달을 수 있도록 ‘워밍업’을 하는 기간입니다. 전국체전 끝나고 일주일 정도 쉬었어요. 잠깐이긴 하지만 휴식기간 후 센 강도로 운동을 하면 부상당할 위험이 있어요. 오전에는 집앞 스포츠 센터에서 근력운동을 하고, 오후에 잠실 종합운동장으로 이동해 2시간 정도 훈련합니다. 늦어도 5~6월에는 아시안게임 선발전이 열리니까 차츰 훈련 강도를 높일 겁니다.”


-각오는요.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임하고 싶어요. ‘성적을 내야겠다’는 그다음이에요. 늦어도 5~6월에 있을 선발전을 위해 자신감 있게 훈련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성적이 쫓아오는 것 같아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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