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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귀 들리지 않는 저는 래퍼·싱어송라이터 입니다"

조회수 2020. 9. 25. 20: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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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꿈을 품은 분이라면, 일단 해보길"
한 쪽 귀 청력 없는 가수 김규완씨
장애 이겨내고 싱어송라이터·래퍼로 활동
"가슴에 꿈을 품은 분이라면, 일단 해보길"

래퍼 김규완(34·예명 KK)씨는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음악을 스테레오로 들을 수 없으니, 곡을 만들며 믹싱(Mixing·녹음된 음악과 소리를 적절히 배치·조율하며 밸런스를 잡는 과정)이나 마스터링(Mastering·음량을 확보하고 음색을 조절하는 절차)을 할 때 스피커는 왼쪽으로 몰아두고 계기판을 보며 좌우 밸런싱을 한다. 라이브 공연 때도 왼쪽 귀를 가리거나 스피커 반대편으로 돌리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자세나 동작 하나하나를 섬세히 잡아야 한다. 음향 설비가 나쁜 무대에선 아예 MR(배경음) 음정과 박자를 세세히 외워 감으로 노래를 불러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음악을 계속한다. 불편이야 있지만 열정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믿는다. 오히려 장애 때문에 음악을 주저하는 사람에게 일단 도전해보길 권할 정도다.

출처: 김규완씨 제공

왼쪽은 들리지 않아도


청력은 6살 즈음에 잃었다. 중이염이 심해져 큰 수술만도 네댓 번을 받았지만, 결국 고막을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저처럼 고름이 계속 나오면 인공고막조차 쓸 수가 없다 합니다. 귀 점막을 자극해 중이염을 악화시킬 수 있거든요. 어쩔 수 없이 고막을 떼어 내고 속을 아예 막아버렸죠.”


하지만 음악을 하는 데 장애가 있을 거라 생각한 적은 딱히 없었다 한다. “살면서 귀가 안 들리는 걸 별로 의식하지 않았거든요. 누군가 저를 불러도 소리가 오는 방향을 바로 알아채기 어렵다거나, 사람들과 모여앉을 때 오른쪽 구석자리는 가급적 피하는 정도 외엔 굳이 신경 쓸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장애를 크게 걱정하지 않고 별 고민이나 결심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계에 발을 들였다고 한다. “평범한 대학생과 다를 바 없었어요. 전자공학과에 진학해 1학년 때 힙합 동아리에 들어갔죠. 장애가 있어서 어렵진 않을까, 남들보다 뒤처지진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어요. 취미로 할 동아리 활동에 그렇게까지 고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요. 아무튼 지내다 보니 전공보다 음악이 좋아졌고, 랩하러 학교 다니다 학사경고 받고 장기 휴학하다 제적당하고, 그랬던 거죠.”


학교를 나선 뒤엔 1년간 학원에서 작곡·편곡·화성학 등을 배웠고, 이후 음반 기획사에 들어가 곡을 썼다. 배치기 3집 수록곡 ‘Skill Race’를 작곡해 프로로 데뷔하고, 모든 수록곡을 직접 프로듀싱·작곡·작사한 첫 싱글 ‘스탠드 바이(Stand by)’를 발표한 때도 이 시절이었다. “이 즈음부터 ‘힙합계 베토벤’ 별명을 얻었어요. 공대 간 녀석이 갑자기 음악을 한다니까 고등학교 동창들이 ‘네가 뭐 베토벤이라도 되냐’며 놀렸는데, 기획사에 무심코 그 이야기를 했더니 싱글 데뷔 때 홍보 멘트로 사용하더군요. 정작 전 꽤나 민망하지만요. 완전 청력 상실도 아닌 데다, 베토벤 같은 분께 갖다 대기엔 제 수준이 너무 초라해서 말이죠. 아무튼 지난 8년간 청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통 싱어송라이터·래퍼와 별다를 바 없이 잘 활동해 왔습니다.”

출처: 김규완씨 제공

일단 도전하라


김씨는 가슴에 꿈을 품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그 꿈을 향해 도전해 보길 권했다. 설령 몸에 장애가 있거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말이다. “일찍이 음악은 안 될 거라 제 스스로 단정지었다면, 지금처럼 노래를 직업으로 삼을 순 없었겠죠. 하지만 그런 편견 없이 일단 해 보니 어떻게든 되긴 되더군요. 비단 저뿐이 아니더라도, 두 다리 없이도 스노보드 선수를 하는 에이미 퍼디 같은 분도 있고, 색약(色弱)이면서도 우리나라 톱클래스 만화가가 되신 이현세 선생님 같은 분도 계시니까요. 해도 안 되는 건 그때 가서 접어도 괜찮으니, 일단 해 보세요.”

출처: 조선DB
양 다리 의족을 착용한 스노보더 에이미 퍼디.

물론 김씨 또한 꿈을 접을 생각이 없다 한다. 그는 2년 전부터 소속사를 나와 독립 레이블 ‘BROFIT RECORDS’을 세워 활동 중이다.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음악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 때문에 이제까지 해온 작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건 독립 후 처음으로 낸 정규 앨범 ‘DREAMS’에요. 남 눈치 보지 않고 제가 듣고 싶은 노래, 제가 하고 싶은 노래를 한껏 만든 거라서요. 앞으로도 이처럼 저 아니면 내놓을 수 없는, 제 개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음악을 쭉 프로듀싱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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