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없고 근무시간 독서도 OK, 한국의 알짜회사

조회수 2020. 9. 25. 20: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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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없고 휴가비도 주는 펌프회사 '하지공업', 2018년부턴 주 4일제 도입
매출 적어도 직원 '워라밸' 챙겨주는 중기
"독서량 늘렸더니 직원 간 소통 문제 확 줄어"
2018년부터 주4일제 단계적 시행

정년 없는 회사. 근무시간에도 독서하라고 권하는 회사. 정시 퇴근이 당연한 회사. 토요일에 단체 행사를 열면 월요일에 대체휴가를 주는 회사. 연차 쓰면 휴가비도 주는 회사.


한국에서 이런 회사를 찾으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이 많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외국계 기업에서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평범’한 중소기업이 있다.그것도 제조업체다. 수중 펌프 전문 업체 ‘하지공업’이 주인공이다. 2017년 12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여가친화기업'으로 선정돼 문체부 장관상을 받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근로자가 일과 여가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중소기업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은 곳을 여가친화기업으로 선정한다.


“직원 본인이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 무슨 일을 얼마나 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하나하나 간섭하고 지시한다고 효율성이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안태상(54) 하지공업 대표는 가이드라인만 명확하면 직원들이 알아서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안태상 하지공업 대표.

매출 적어도 직원 '워라벨' 챙겨주는 중기


하지공업은 연 매출 5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이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를 개발·생산한다. 국내 펌프회사는 모두 150여 곳. 외국계 회사와 대기업 5~6곳을 제외하면 매출 30억원 이상인 기업은 30여개다. 매출이 50억원 이상이면 작지 않은 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하지공업은 국내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나 서남아시아지역으로 펌프를 공급해 매출을 올린다. 직원 수 20명, 평균 근속연수는 14년에 달한다.


-정년이 없다는 게 사실입니까

“내규상 정년은 있습니다. 61세죠. 하지만 직원이 스스로 나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특별히 내보내지는 않습니다.”


2016년 하지공업에 15년 넘게 근무했다는 A씨는 70세에 회사를 나왔다. 정년 이후 연봉은 줄었지만, 9년을 더 일한 것이다. 그는 건강 문제로 더 이상 일하기 어렵다며 스스로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현재 하지공업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직원은 66세다.


-이렇게 경영해도 회사가 유지될 수 있습니까

“모든 기업에 똑같은 기준을 들이댈 수는 없겠지만, 저희는 가능하더군요. 제품을 대량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기술력 있는 엔지니어가 경험이 부족한 직원을 가르치면서 함께 신제품을 개발합니다.”


20여명이 하루에 생산하는 수중펌프는 약 1.5대. 연평균 500여대를 만든다. 인력이 많이 필요 없어서 채용인원도 적다. 결원이 생기거나 새로 인력이 필요할때만 채용한다. 2016년엔 고졸사원 2명, 2017년엔 대졸사원 1명을 뽑았다. 

출처: 하지공업 제공
하지공업 수중 펌프가 들어간 반포대교 음악분수 모습.

"독서량 늘렸더니 직원간 소통 문제 확 줄어"


-주로 어떤 제품을 만듭니까.


“우물용 수중펌프부터 음악 분수대에 들어가는 펌프, 석유비축기지에 필요한 펌프도 만듭니다.”


올림픽공원, 반포대교에 설치된 음악분수대 펌프도 하지공업이 개발했다. 음악분수대는 노랫소리에 맞춰 물줄기의 방향이나 세기가 다르게 분사되는 분수다. 기능성 펌프는 수명이 짧다. 수십개의 센서 신호에 따라 펌프가 수없이 작동하다 멈추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펌프에 물때나 기름이 끼어도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생산이 까다롭다. 형장 맞춤형 장비 하나를 개발하는데 약 1년이 걸린다고 했다.


-이런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독서를 권장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제조업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실적으로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은 영업사원들이 밖에서 할 수 있는 말이 많더군요. 공유하는 책이 많아지니 직원들끼리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예전엔 사내 소통 문제로 제가 술자리를 만들어 중재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젠 그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게 쌓여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는 2011년, 회사 임직원 20명이 책 4만 2195 페이지를 읽어내는 독서마라톤을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3개월 동안 모든 직원이 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6~7권씩 읽었다. 목표에는 못 미쳤지만 “이렇게라도 책을 읽어봤다”며 뿌듯해하는 직원들이 있었다고 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어도 불편해하는 직원도 있을 텐데요


“‘일’이 아니라면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전 직원과 그 가족들이 함께하는 가족친화 프로그램도 있지만 토요일에 워크숍을 하면 월요일에는 대체휴가를 줍니다. 사정상 참여하지 못하는 직원도 있어요. 그래도 불이익은 없습니다."

출처: 하지공업
하지공업 근로자가 수중 펌프를 만드는 모습(왼쪽), 워크샵에서 근로자 가족들이 도자기 체험 하는 모습(오른쪽).

2018년부터 주4일제 단계적 시행


그는 술마시는 회식자리를 줄이고 야구장 가기, 뮤지컬관람 같은 문화회식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6월에는 전 직원 가족들과 김유정문학관을 다녀왔다. “쉴 때 쉬고 컨디션을 조절해야 직원들의 능률이 오른다고 봅니다." 하지공업에선 휴가 3일 전에만 이야기 하면 누구나 연차를 사용할 수 있다. 5일 이상 정기 휴가를 갈때는 66만원의 휴가비도 준다.


-휴가비를 주는 이유가 있습니까


“예전에 2인 기준 휴가비가 60만원 정도 든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쉬는 날이 있어도 휴가비를 걱정하면 제대로 쉴 수 없잖아요. 그 정도는 회사에서 지원하는 게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입사원부터 안 대표까지 휴가 때 모두 66만원을 회사에서 지원받는다. 그렇다고 회사 돈을 펑펑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10원짜리 하나까지 제가 직접 결재합니다.”


-매출을 늘릴 계획은 없나요


“매출도 늘리고 회사 규모도 키워야죠. 하지만 성급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성장해야 존속할 수 있는 회사가 있지만, 내실을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초반 안 대표는 무리하게 펌프 납품 계약을 따냈다가 조건을 맞추지 못해 1년 동안 거래가 중단되는 위기를 겪었다. 그 뒤 검사 단계를 강화하고 무리하게 사업하는 건 지양한다고 했다. “기술을 개발하고 우리만의 경쟁력을 쌓아가야죠. 직원들 임금도 올려줄 계획입니다. 직원 소득이 늘지 않으면서 기업만 성장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고졸 신입사원의 초봉은 200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대졸 초봉은 2400만원 정도다.


-목표가 있다면


“내년에는 한 달에 한 번 주 4일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2019년에는 한 달에 두 번, 2021년에는 완전한 주 4일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는 업무 특성상 집중해서 일하는 게 하지공업에 맞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도입할 수 있는 제도라고 했다. “물론 성장이나 이익에도 신경을 쓸 겁니다. 하지만 직원들과 함께 오래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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