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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년 다닌 남자, 유학까지 다녀와 사시 본 이유

조회수 2020. 9. 25. 20: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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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법률 인공지능 경진대회 우승 '인텔리콘 메타 연구소' 임영익 대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사법시험을 봤다는 변호사가 있다. 사시와 인공지능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이 사람은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5월 미국의 대형 로펌 베이커&호스테틀러가 채용한 신입 변호사가 화제였습니다. 900여명 변호사가 일하는 이 로펌에 변호사가 한명 더 생긴게 대수인가 싶지만, 신입 변호사가 로스(Ross)라면 얘기가 다르죠" 로스는 IBM의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법률 서비스 분야의 ‘알파고’인 셈이다. 로스는 1초에 책 100만권 분량의 빅데이터를 분석, 자체 학습하고 80조번 연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는 로스처럼 법률에 인공지능과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리걸테크(Legal Tech)’ 관련 기업이 1000개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리걸테크 기업이 있다. 지난 6월 세계 법률 인공지능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인텔리콘 메타 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인텔리콘 메타 연구소에서 개발한 지능형 법률 추론 엔진 ‘아이리스(i-LIS) 7’은 일본, 유럽의 최고 수준의 팀을 제쳤다. 2016년에 이어 2연패였다. 임영익(47) 인텔리콘 메타 연구소 대표는 “리컬테크의 발전은 법률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소비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가 바로 인공지능 변호사를 만들기 위해 사시를 본 변호사다.


생명과학, 수학, 뇌과학 공부하고 사법시험 통과


서울대 생명과학과 출신인 임 대표는 학부를 졸업하는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주전공인 생명과학 외에 수학, 물리학, 전자공학 등의 수업도 챙겨 듣느라 졸업에 필수인 전공 학점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처: 임 대표 제공
임영익 인텔리콘 메타 연구소 대표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학부 때 꿈이 ‘생명방정식’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생명과학 연구에 수학과 물리학을 더하면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방정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메타 연구소’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그동안 공부한 것들을 이리저리 연결해 보며 사업아이템을 고민했다. 와중에 한 선배가 개발 중이던 지능형 수학교육시스템 사업에 참여했다. 학생이 약한 부분을 진단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시스템이었다.


“시스템 자체는 개발에 성공했지만, 시스템을 채울 콘텐츠가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 사업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알았습니다.”


그는 인공지능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퍼듀대에서 뇌과학을 공부했다. 뇌과학은 수학·물리학·화학 등 기초과학과 의학·공학·인지과학 등을 융합해 뇌의 작동 메커니즘을 밝히는 학문이다. 이를 응용해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도 뇌과학의 일부다.


“미국 유학 중에 딥러닝(deep learning) 이론이 나왔습니다. 어딜 가나 딥러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새로운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데 열광했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공지능을 통해 세상이 급격히 변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관련 비즈니스를 하기로 결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한국으로 들어와서 어떤 분야의 인공지능을 개발할까 고민하다가 법률 분야를 선택했다. “의료나 교육 분야는 세계 어디서나 보편적이죠. 하지만 법은 나라별로 체계가 조금씩 다릅니다. 법률 서비스만 놓고 보면 구글이나 IBM과도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먼저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법학을 모르고서 법률 AI를 만드는 게 영 마뜩잖았다. 2009년 임 대표는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시절인 2010년부터 아이리스를 개발하기 시작, 2015년 국내 최초의 지능 법률시스템 '아이리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관련 판례부터 법령까지 찾아준다


아이리스는 알고리즘 개선을 거듭하며 현재 아이리스-7까지 나왔다. 아이리스 알고리즘이 탑재된 ‘유렉스(U-LEX)’는 검색창에 법률적으로 궁금한 점을 입력하면 그간 법원이 비슷한 사건에 대해서 내린 판결문을 보여주고, 이 상황에 적용 가능한 법령도 보여준다.

아이리스 알고리즘이 탑재된 유렉스

예를 들어 '음주 운전 중에 사람을 치고 뺑소니했다면?'이라고 치면, 알고리즘이 그 상황에 맞는 판례를 찾아주고, 도로교통법,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등 관련 법령을 보여주는 식이다.


“보통 사람이 쓰는 일반적인 언어, 즉, 자연어를 처리할 수 있어 있어서 보통 사람도 궁금한 점을 입력하면 관련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찾아가기 전에 미리 알아보고 갈 수 있는 거죠. 물론 법조인에게는 기초 조사를 대신해 줄 수 있는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서비스를 더 개선해야 하지만, 알고리즘이 더 정교해지면 법조인들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유렉스는 법조인 등을 대상으로 베타서비스 중이다.


모두에게 공개된 서비스도 있다. 2016년부터 공개한 법률 Q&A 챗봇(chat bot) ‘로-보(LAW-BO)’다. 로-보는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과 관련해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다. '공무원이 고향 친구와 10만원짜리 식사를 했다면?'이라고 질문하면, 국민권익위원회의 사례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아 알려주고, 관련 언론보도 등을 보여준다. “현재는 청탁금지법에 관한 질문만 할 수 있지만, 조만간 교통사고, 임대차, 근로관계, 이혼, 상속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률로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부정청탁금지법과 관련해 질문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로-보

인공지능 기반 리걸 테크 분야는 매우 광범위해서 법률 인공지능 원천기술을 확보하면 쉽게 다른 리걸 테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게 임 대표의 얘기다. "시스템을 고도화시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지능 정보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 우선 목표입니다. 국내 시장에서 성공하면, 해외에 수출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우리와 법률이 유사해서 진출하기 쉽죠."


법률 AI가 진화하면 변호사는 직업을 잃을까. 임 대표는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변호사는 이른바 ‘스토리텔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의뢰인이 말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정리하는 거죠. 기술이 발달하면 이것도 가능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까운 미래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리걸테크가 변호사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전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리걸테크를 제대로 활용하는 변호사는 시간이나 비용을 줄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죠.”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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