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전공한 '악바리' 그녀가 교도소에서 하는 일

조회수 2020. 9. 25. 20: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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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교도소에서 '자생식물 복원사업'을 벌이는 이유

들에 핀 야생식물의 씨앗에도 주인이 있다. 동물과 식물, 미생물 등 생물유전자원의 주권을 인정하는 ‘나고야의정서’가 올해 8월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다른 나라의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씨앗, 즉 식물종자도 생물자원에 해당한다. 전 세계 의약품의 약 60%는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특히 식물 종자가 가진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자원으로서 이를 지키기 위한 각국의 노력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나라 고유 종자를 찾아 본격적으로 우리 것임을 입증하고 보존하여 자원화를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과연 우리는 코앞에 다가온 ‘종자 전쟁’에 잘 대비하고 있을까. 

2009년 국내 야생 식물종을 채집하기 시작해 7년여 동안 2300여 종 1만 5000여 점의 종자를 채취·보존해 대량 증식시켜 보급하는 곳이 있다.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의 국가야생식물종자은행이다. 종자은행 농업연구관 김수영(45) 박사를 만났다.


국내 자생하는 유일한 무궁화속 식물인 멸종위기 야생생물 ‘황근(노랑무궁화)’을 제주도에 대량 증식하고, 1960년대 처음으로 경기도 수원의 칠보산에서 발견됐다가 멸종된 ‘칠보치마’의 복원, 전주에서 자취를 감춘 ‘전주물꼬리풀’의 101년 만의 자생지 귀향 등이 국가야생식물종자은행이 7년에 걸쳐 이룬 업적이다. 멸종위기종을 찾아내고, 대량 증식해 자원화하는 모든 과정의 중심에 김수영 박사가 있었다.


“정말 악바리처럼 일했어요.”


2009년부터 종자은행의 기틀을 닦고 2300여 종의 종자 1만 5000여 점을 채취해 보존하고 대량으로 증식해 대중에 보급했다. 악바리처럼 이 악물고 하지 않으면 이루기 힘든 일이었다. 그가 자원관에서 처음 맡은 일은 유전자원은행이다. 척추동물, 곤충, 식물, 해조류, 버섯 등 국내 모든 생물종에서 DNA 추출이 가능한 원재료를 다양하게 모아 놓은 곳이다. 즉, DNA 은행이다. 유전자원은행에서 일을 시작해 1년이 지났을 때 ‘종자은행’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할 책임자로 그가 지명됐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지금까지 이 분야의 일을 했지만, 식물 종자는 그에게도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자원관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종자를 발아한 이후 뿌리 세포를 이용해 염색체 연구 등 세포유전학 분야의 일만 해왔다.


“종자은행은 식물, 그 가운데 씨앗을 모으고 건강하게 보존하는 곳입니다. 국내 식물 종이 약 4500종이에요. 들판에 핀 민들레만 해도 종류가 다양하죠. 종자를 따러 가려 해도 식물을 알아야 어디서 어느 시기에 따는지 알 텐데 그걸 몰랐어요. 전문가의 힘을 빌려서 어느 분야에 어떤 전문가와 연계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며 업무를 이끌어 갔습니다.” 

종자를 채취하러 가는 길은 험난했다. 희귀 종자를 구하러 가는 길은 대부분이 야산이거나 산림이 우거진 야생의 들판이었다. 그곳에서 뱀이나 이름 모를 독성 식물을 만나기도 했다. 한번은 ‘백선’이라는 식물을 따러 갔는데, 꽃가루가 묻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얼굴이 갈색으로 변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와 동행한 연구원들도 온몸에 상처와 멍을 늘 달고 살아야 했다. 우리나라의 소중한 식물종을 찾아내 자원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위해서는 감내해야 하는 여정이었다.


“국가야생식물종자은행의 출범 단계에 연구사로 투입돼서 지금까지 이끌어 왔어요. 처음에는 사업예산이 없어서 다른 과제의 사업예산을 빌려와 3000만 원을 가지고 시작했죠.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있어야 해요. 외부 연구자가 60여 명인데 출장여비도 줘야 하고, 종자를 따러 가려 해도 필요한 장비나 인건비가 들어가니까요. 힘든 점이 많았죠.”


각고의 노력 끝에 국립생물자원관의 국가야생식물종자은행은 식물자원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2014년 10월 개소했다. 2020년까지 종자 2만 점 확보를 목표로 국내 야생식물 종자의 권역별 다양성 확보, 종합적 연구 및 증식까지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김수영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멸종위기의 야생식물 종자를 따와서 대량으로 키워 복원시켰다. 제주도의 황근, 수원의 칠보치마, 전주의 전주물꼬리풀 등을 대량 증식해 복원하고 대중에 보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2년부터는 법무부와 손잡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 ‘자생식물 복원 파트너십 사업’을 벌이고 있다. 교도소와 소년원은 식물을 기르고 관리하기에 이점이 많고, 종자를 파종해 식물로 키우는 인력을 확보할 수 있어 대량증식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교화를 도모한다는 점에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수용자들은 원예활동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경험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또한 재소자이지만 국가사업에 이바지한다는 만족감도 있었다.


최근에는 지자체와의 협력이 이루어지면서 종자 번식과 야생식물 대중화에도 속력이 붙고 있다. 앞으로 5년 동안 4000개씩 2만 개체의 황근을 키워내기 위해 제주도와 협약도 맺었다. 모두 김수영 박사와 종자은행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만든 성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3월에는 대한민국 공무원상도 받았다. 과학자의 외길을 걸어온 그의 꿈이 이제 막 열매 맺고 있다.


종자은행에서 김수영 박사는 종자의 보존은 물론 우리 고유종을 대중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고유종을 확보하고, 고유종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게 자원전쟁 대비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야생동식물 모두에 해당한다.


“멸종위기종을 살려내는 복원사업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식물자원이 가진 효능과 성분 등 잠재적 가치를 알아내는 일도 중요해요. 종자를 이용한 야생식물 자원화는 실제 우리 건강과 직결된 먹거리 사업이기도 하고요. 중국처럼 유전자원을 많이 가진 자원 부국은 자연스럽게 생물 강국으로 올라설 거예요. 특히 제약이나 화장품에 사용되는 소재는 동물보다 식물이 많아요. 식물은 소재로 이용하기 쉽고 대량 증식에 적합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바이오산업계를 위해서라도 식물 종자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꾸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글·사진 jobsN 서경리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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