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지산에 겨자 얹고, 간장 호수 만든 남성의 정체

조회수 2020. 9. 25. 20: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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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 자퇴하고 디자이너된 이 남자, 술잔에 달을 담다
김종환 테일(TALE) 대표
공대 자퇴 후 미대 진학해 디자이너로 변신
"조형미와 실용성 겸비한 작품 만들고 싶어"

김종환(35)씨는 처음엔 한 지방대 토목공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불과 2주 만에 자퇴서를 냈다. 점수 맞춰 냈던 원서라, 대학도 전공도 내키지 않아서였다 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군대를 갔다.


전역할 때 즈음 다시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엔 평생 해도 지겹지 않을 분야를 전공으로 택하겠다 결심해, 1년간 입시미술을 배워 홍익대 조치원캠퍼스 프로덕트디자인학과로 진학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찾은 적성이었지만, 방황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두각을 보였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달잔’, ‘마운틴 글라스’, ‘후지산 간장종지’ 등 산뜻한 디자인 아이템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디자이너가 됐다.

김종환 디자이너

방황과 비상(飛上)


디자인 분야에 뛰어들자마자 특출난 재능을 보였던 건 아니었다. 김씨는 군대 다녀오기 전까진 미술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때문에 미대 입학 후 첫 2년간은 어려움이 많았다. “동기나 선후배는 미술을 최소 2~3년 했으니까요. 고작 8개월 배운 제가 따라잡긴 버거웠죠. 일단은 부모님께 죄송스러워서라도 꾸역꾸역 했지만요.” 그럼에도 좌절은 계속돼 2학년 때엔 전공 포기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기본 중 기본인 스케치조차 안되니, 뭘 하건 결과물이 영 좋질 못했어요. 견디다 못해 다 접고 다시 시작하려 호주 워킹 홀리데이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친구 김지윤(36)씨와 함께 디자인했던 삽수레(Taker)가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인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콘셉트 부문 대상(Best of Best)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예상 못했던 희소식이었죠. 아무튼 디자인에 재능이 아주 없진 않나 보구나 싶어 유학을 접었어요.”

출처: 인터넷 캡처
가장 오른쪽이 김씨가 친구와 고안한 삽수레. 뒤쪽 발판을 밟으면 흙이 쉽게 떠지고, 푼 흙은 따로 옮겨담을 필요 없이 바로 수레를 끌어 버릴 수 있다.

1년 휴학계를 낸 김에, 디자인 공부도 할 겸 한동안 공모전 도전에만 매진했다 한다. 이때 고안했던 물건이 김씨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달잔’이다. “당시 학생 여럿이 KT&G 상상마당에서 전시회를 했는데요. 주제 ‘월화수목금토일’ 중 ‘월’을 맡았어요. 그때 달이 차고 기우는 게 잔이 차고 기우는 것고 비슷하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를 다듬어 달을 닮은 술잔을 만들어 봤죠.” 졸업 후 1년 뒤인 2010년에 디자인 기업 ‘테일(tale-design.com)’을 세웠고, 이 달잔을 첫 상품으로 내놓았다. “첫 상품 치곤 굉장히 잘 팔렸어요. 마침 그 즈음부터 불던 막걸리 열풍을 타고요. 지금까지 통틀어 5만개 정도는 팔렸을걸요.”

출처: 김종환씨 제공
김씨가 고안한 달잔, 바닥에 굴곡이 있어, 술을 마신 정도에 따라 고인 술의 모양이 저무는 달처럼 변한다.

다음으로 구상한 작품은 서양을 타깃으로 한 ‘마운틴 글라스’ 술잔이었다. 알프스산맥의 일부인 마터호른 봉우리를 모티브 삼았다 한다. “이건 KT&G 상상마당 지원으로 만들었어요. 스위스나 미국에서 잘 팔려서, 2~3년 전부턴 매년 1만개씩은 나가고 있어요. 매출액으로 치면 이게 달잔보다 나을 정도죠."

출처: 김종환씨 제공
마운틴 글라스. 술을 부으면 호수에 잠긴 산 모양이 된다.

나무 겉껍질과 결을 살린 노트 ‘서페이스 북’도 그가 디자인한 상품이다. 표지엔 나무껍질의 굴곡과 질감을 고스란히 입혔고, 글을 적는 종이엔 목재 특유의 무늬를 그대로 옮겼다. “종이와 나무를 직관적으로 이을 만한 디자인을 궁리하다 이 노트를 만들었어요. 제가 만든 상품 중 가장 성공한 축에 들어요. 2012년에 또 한번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상을 안겨준데다, 프랑스, 스위스, 미국, 일본 등에서 연 10만권씩은 팔려나가고 있으니까요.”

출처: 김종환씨 제공
나무 느낌을 살려 만든 공책 '서페이스 북'.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후지산 간장종지’를 기획해 내놓기도 했다. “실제 후지산을 8만 분의 1 크기로 줄였어요. 분화구에 겨자를 얹을 수 있고, 종지에 간장을 따르면 호수가 되죠. 역시나 일본 쪽에서 호응이 좋더군요.”

출처: 김종환씨 제공
후지산을 본떠 만든 간장종지.

고난과 극복


물론 굴곡 없이 성장만을 한 건 아니다. “2014년 즈음에 미국 쪽 바이어가 ‘상품 수입 콘셉트를 바꾸겠다’며 거래를 끊었어요. 직원 세명이 떠나고, 저 혼자 남았어요. 디자인 외주를 받고, 디자인 컨설팅을 하며 그 시기를 버텼죠.”


어려운 시기였지만 새 제품 디자인을 멈추진 않았다 한다. “이때 물에 개어 쓰는 접착제를 연구해 붙였다 떼기 쉬운 ‘리픽스’를 만들었고, 모니터 밑에 장착 가능한 홀더나 필수 문구를 통 하나에 모은 ‘메모큐브’ 등도 개발했어요.” 최근엔 활발히 외부 컨설팅을 한 덕에 상황이 나아져, 다시 직원을 고용할 정도가 됐다 한다. “이렇게 한 번 위기를 겪고 나니, 제 감성을 앞세운 디자인보다는 많이 팔릴 만한 실용 디자인 쪽에 눈이 가더군요. 그래서 이 시기에 기존 업체 ‘테일’과는 별개로 기능성 제품에 초점을 맞춘 ‘리픽스(refix.co.kr)’ 브랜드를 새로 내놓았습니다. 꿈도 좋지만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원은 있어야죠.”

출처: 김종환씨 제공
펜홀더(왼쪽)와 메모큐브.

아직은 배울 때


현재 김씨가 직원 한 명과 더불어 내는 연 매출은 4억~5억원 정도다. 그는 이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외주 컨설팅 부문을 점차 줄여나갈 예정이라 한다. “솔직히 직접 제품 고안하고 만들어 파는 것보다 컨설팅이 수익 효율은 좋아요. 하지만 결국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먼 길 돌아 미술계로 온 거니까요. 컨설팅에 매달리다 보면 저만의 디자인을 구상할 시간도, 뽑아낸 제품을 영업할 여유도 부족해요. 매출이 줄더라도 컨설팅에 쏟는 시간을 깎아나가려 합니다.”


대신 다른 업체와 손잡고 일하는 ‘협업’을 보다 많이 시도할 계획이다. “이번에 메모큐브 등 사무용품을 만들며 다른 업체와 함께 일해봤는데, 제가 약했던 부문인 ‘실용성’ 쪽에서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사실 제 예전 작품인 달잔이나 마운틴 글라스처럼 제가 만든 제품은 조형미 쪽에 치우친 면이 있었는데, 이번에 외부 업체 비평을 받아 가며 일하니 그 단점이 많이 개선됐어요.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또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시작이 늦은 만큼, 더 열심히 배워나가야 할 모양입니다.”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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