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별명 많은 야구선수..최근 새로 생긴 별명은?

조회수 2020. 9. 21. 18: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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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도 별명만큼 많았다
2017 나눔국민대상 수상한 김태균
‘항상 감사하라’는 부모 가르침 영향
사회에 좋은 영향 주는 선수 될 것

그는 야구 선수 중 가장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팬들이 즉흥적으로 별명을 붙인다. 씁쓸한 표정을 지어 ‘김씁쓸’, 넘어지는 모습에 ‘김꽈당’, 스트레칭을 잘해 ‘김유연’ 등으로 부르는 식이다. 앞으로 별명왕 김태균(35·한화이글스)에게 새 별명이 생길 듯하다.


2017년 10월 보건복지부는 김태균 프로야구 선수를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2005년 만 23세부터 크고 작은 나눔 활동을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대전 중증장애어린이재활병원 캠페인 홍보대사,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의 연탄배달, 태안반도 기름정화봉사활동, 세월호 피해 지원 성금 등 그의 선행은 꾸준했다. 

출처: jobsN
한화 이글스파크 경기장에서 만난 김태균 선수

2017년 11월 현재까지 그가 기부한 금액은 현금으로 총 1억500만원이다. 2012년 야구 선수 최초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사회복지 공동 모금회에 개인 돈 1억원 이상을 기부한 이들의 모임)에 명단을 올렸다. 운동선수로는 홍명보 전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이어 두 번째다. ‘김나눔’란 별명이 붙을 듯한데 소감이 어떻냐고 묻자 “칭찬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23세 때 처음 선행을 베푼 계기는 아버지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었다. 야구광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천안남산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그를 적극 지원했다. 강원도 산골에 사는 친구에게 ‘귀 달린 장어’를 공수해 몸보신시킬 정도였다.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는데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뒷바라지를 해주셨죠.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건 부모님 덕분이라 생각해요.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집안의 반대로 야구를 그만두는 동료들을 많이 봐왔거든요.”

출처: 조선DB

그는 17년째 최정상을 지키고 있는 선수다. 2001년 만 18세의 나이에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연소 4번 타자로 배트를 잡았다. 데뷔 해애 0.335의 타율, 20 홈런이라는 성적으로 신인왕을 수상하는 등의 전설을 썼다. 2017 한국 프로야구 시즌에서는 타율 0.340, OPS 0.958, 17홈런, '86 경기 연속 출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초심을 잃지 않고 정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늘 겸손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아버지께서 늘 하신 말씀이 있어요. 성적이 좋을 때건, 슬럼프 때건 ‘뛸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는 조언이었죠. 2005년 처음 기부를 시작한 것도 아버지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불교신자세요. 모든 종교가 그렇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행사 있을 때마다 가서 기부도 하고 좋은 일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베풀게 됐죠.”


부모님 가르침 말고도 그에게 나눔 활동에 영향을 미친 건 ‘신용’, ‘의리’라는 한화 이글스의 사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는 믿음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간다. 2008년 태안 기름유출 사태 때 팬클럽 ‘시리우스’에 제안해 약 30명의 팬을 모아 팀 후배 류현진 선수와 함께 기름을 닦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전 사회복지 공동 모금회에 5000만원을 기부하자 후배 이용규, 정근우 선수가 뒤를 이었다. 매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구단 행사인 ‘지역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배달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구단 행사니까 멋모르고 간 거죠. 이젠 팀 전통으로 자리 잡았어요. 팀 사기를 올리는 활동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도 많아요. 배달 가면 어르신들께서 혼자 계시는 거 보면 먹먹하거든요. 저희 보면서 환하게 웃어주시고 손잡아 주시면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 좋아하시지’ 싶어요.”

출처: 조선DB
2009년 한화이글스 구단 행사인 연탄배달하는 사진(왼) 2015년 불치병을 앓고 있는 배재국 학생을 응원하는 모습(오)

대전 지역에 대한 애정도 그가 선행을 베푸는 이유 중 하나다. 2014년 3월 대전지회 무주택 저소득 가정을 위해 2000만원 상당의 집기비품을 지원했다. 2016년 천안 박물관 명예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사용했던 모자, 장갑, 공 등을 후원했다. 2017년 시즌에는 대전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을 위해 ‘홈런’을 쳤다. 출장 경기마다 홈런 개수에 비례하는 일정 금액을 누적해 시즌 종료 후 기금을 냈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아요. 고향이 충남 천안이고 대전이 연고지인 한화 이글스에서만 17년 선수 생활을 해왔어요. 지역 발전에 도움 될 수 있는 일들에 자연히 관심이 생겼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여기 계속 있었으니 몇 년째에요. 대전 어르신들은 아이 부르듯 ‘태균이’ 그래요.”


특히 아이들과 소외계층을 후원하기도 하는 까닭은 대한민국의 한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다. 2010년 10월 아내의 제안에 따라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어린이재단 한사랑마을을 찾기도 했다. 아이들을 안아주고 이름을 부르며 진심을 다해 봉사했다. 2014년 3월에는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급식 행사에 밥차 트레일러를 기부했다. 딸 ‘김효린’양의 이름으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명단에 올릴 계획도 밝혔다. 

출처: 조선DB
2010년 부인과 함께 경기도에 위치한 어린이재단을 찾은 김태균 선수

“아내도 저와 비슷해요. 생색내고 나서는 거 싫어해서 아이 이름으로 기부하자고 의견을 모았죠. 운동한다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관심하기보다는 사회에 관심을 갖고 기여할 수 있는 선수이고 싶어요.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뉴스 보고 있으면 구시렁구시렁 댔죠. ‘재밌는 거 많은데 왜 이렇게 뉴스밖에 안 보나’하구요. 아빠가 돼보니 알겠어요. 아이들 관련 기사 보면 마음이 철렁합니다.”


그는 현재 개인 훈련과 컨디션 회복에 집중하며 연말을 마무리하고 있다. 12월 2일에 예정된 구단 연탄배달 행사도 중요 스케줄 중 하나다. 한용덕 감독의 취임, 장종훈, 송진우 코치의 합류 등 한화 이글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김태균이 4번 타자라는 사실은 그대로다. 그는 앞으로도 묵묵히 한화 이글스의 중심을 지켜나갈 예정이다.


“뭔가를 바라고 해온 일도 아니었는데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하면서도 쑥스러워요. 앞으로 더 좋은 일 많이 하라는 뜻 같아요. 후배들에게 좋은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선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글 jobsN 김지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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