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MIT' 박사출신 유명가수이자 5년차 농부입니다

조회수 2020. 9. 21. 18: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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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가수 루시드폴 감귤 농사 뛰어든 이유는?
가수 루시드 폴 귤 농사 5년째
농사란, 감사함 배우는 것

‘저 사람은 하고 싶은 건 다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2년만에 새 앨범으로 찾아온 가수 루시드 폴. 시적인 가사와 섬세한 어쿠스틱 사운드로 유명하다. 2008년 ‘유럽의 MIT’라 부르는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 대학원에서 생명공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4권의 책을 쓴 번역가 겸 작가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감귤을 키우는 농부다. 새벽 2시 심야 홈쇼핑 방송에서 귤 탈을 쓰고 직접 귤을 팔기도 했다.


조용한 듯하면서 새로운 일을 자꾸만 한다. 그 일들은 서로 다른 듯 하지만 조금씩 닿아있다. 인터뷰 내내 말투는 나긋하지만 도전의 결실에 대한 즐거움이 담겨있었다.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 그때마다 도전했다는 루시드 폴에게도 고민은 있다.

출처: 'CJ 오쇼핑' 루시드폴 출연방송 캡처
홈쇼핑 출연한 루시드 폴

-공학 박사와 가수, 모두 잘하는 만능 플레이어다.

“공부는 필요에 의해서, 음악은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흥미를 가진 분야를 택해 공부했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다보니 박사가 된 거예요. 그후엔 음악이 하고 싶어 작곡을 하고 기타를 잡은 겁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1998년 데뷔 후 이번 앨범(‘모든 삶은, 작고 크다’·2017년 10월 30일 발매)까지 8개의 앨범을 냈습니다. 돌아보면 찬찬히 쌓아온 셈이예요.”


2014년 11월 결혼과 동시에 제주도에 터를 잡았을때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소속사에선 가수로서의 새로운 컨셉이 필요하다고 했다. 음악과 관계없는 걸로 어떻게 자신을 알릴지 고민했다. 예능프로에 출연해 웃길 자신도 없었다. ‘먹고 살 길’의 또다른 방법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농사를 짓기로 했다.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받은만큼 자연생태계와 먹거리에 관심이 있었다. 농사는 경험도, 지식도 없었지만 일단 도전했다. 

출처: 'CJ 오쇼핑' 루시드폴 출연방송 캡처
(왼)귤 따는 모습 (오)수확한 귤

-농사가 쉽지 않았을텐데

“장난으로 할거면 하지 말라는 말도 듣고, 진짜 농사를 직접 하는 게 맞냐는 의심도 받았습니다. 연예인이니까 대충 할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래서 조합원 가입도 거절 당했어요. 농업경영자등록, 농지원부(농지의 소유나 실태를 파악하여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작성하는 장부)를 받기도 힘들었어요. 재해보험 가입, 농기계 대여 등 혜택을 받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인데도요.


이웃 농사일을 돕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불려다니기 바쁠 정도로 일거리가 많았어요. 키위, 마늘, 양파, 쪽파 같은 작물을 다뤘습니다. 양배추 나르고, 마늘쫑 따는 일도요. 바람 많이 부는 날엔 비닐하우스 수선도 했습니다. 남들 하는 거부터 해보면서 경험을 쌓자는 생각이었어요. 1년 후 밭을 얻었습니다. 평당 1000원으로 임대차 계약서 쓰고 연세로 빌렸죠. 집 근처 과수원을 마련해 귤을 키운지는 5년째예요.”


정성을 다해 키운 귤은 무농약 친환경 인증도 받았다. 2015년 12월 11일 그의 얼굴이 홈쇼핑에 등장했다. 이른바 ‘귤이 빛나는 밤에’. “홈쇼핑에서 팔아봐”, 같은 소속사 가수 유희열의 장난같은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출처: 'CJ 오쇼핑' 루시드폴 출연방송 캡처
유희열이 보조출연, 페퍼톤스가 주문전화를 받았다.

CJ오쇼핑에서 무농약으로 키운 귤과 7집 한정판 앨범 패키지를 판매했다. 패키지는 귤 1kg+7집 앨범+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엽서+본인이 직접 쓴 책으로 구성되어 가격은 2만9900원. 게스트는 유희열, 정재형이었다. 김동률과 전화 연결하고, 이적의 영상편지 응원까지 등장했다.


새벽 2시라는 야심한 시각에다, ‘상담원은 퇴근 중’, ‘음악이 취향에 안 맞아도 귤은 맛있습니다’, ‘그냥 사세요’, ‘귤만 먹고 반품 불가’라는 멘트에 CJ몰 앱으로만 파는 방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한 상품 1000개는 방송 개시 9분만에 매진됐다.


-홈쇼핑 출연으로 얻은 건

“‘완판남’으로 화제였지만 귤을 많이 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농산물이니까 유통과 저장 문제가 중요한데, 혼자 하는 농사라 많은 물량을 조달할 수 없거든요. 방송 출연을 한 건 음악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예요. 점점 음악 프로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이예요. 그런데 홈쇼핑은 1시간을 주더군요. 노래도 세 곡이나 불렀어요.”

출처: 소속사 '안테나' 제공
가사도 원고지에 손글씨로 남긴다.

-농사로 인한 삶의 변화가 있다면

“귤나무는 귤을 매달고 40kg의 무게를 일년간 견딥니다. 제가 잘해서 귤을 수확하는 게 아니라, 귤나무가 다하는 거예요. 감사함을 느끼죠. 농사를 지을수록 겸손해집니다. 먹거리에 대해서도 진지해졌어요. 예전엔 술과 야식이 습관이었어요. 농사를 지으니까 내 몸 안에 들어가는 음식 하나에도 관심이 더 많이 생겼습니다. 바쁜 직장인들도 대충 한 끼 때우는 날이 많잖아요. 조금만 신경을 쓰면 좋겠어요. 먹거리는 삶의 근간이거든요.”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농업인 교육을 꼭 받으세요. 각 지역 농업기술원 등에서 예비농업인이나 귀농자를 대상으로 농사의 기초와 관련 법규, 작물 정보 를 알려줍니다. 온·오프라인으로 할 수 있어요. 매해 1~2월에 많이 모집합니다. 1시간도 빠지면 안 될 정도로 엄격하지만 그래야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꼭 귀농을 하지 않더라도 농부일 수 있어요. 시골 대규모 밭에서 농사를 지어야만 농부는 아니예요. 옥상에서 방울토마토를 기르거나, 텃밭에서 상추를 키우는 것도 농부입니다. ‘농부의 마음가짐’을 가지는게 중요한거죠. 생명을 아끼고 작은 거라도 내 힘과 노력으로 키워내는 정성이요.”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진 게 조금 더 있을 순 있지만, 재력과 여유가 특별히 많아서 하는 건 아니예요.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들을 해온 겁니다. 꿈꾸기를 멈추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해보는 거죠. 많은 일들이 상상만큼 어렵지 않아요.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보는 게 중요해요. 앞으로는 엔지니어 공부를 더 할 계획입니다. 다음 앨범 믹싱 작업(음반 제작 시 전체적인 사운드의 조화를 다루는 것)을 더 잘하고 싶어요.”


글 jobsN 김민정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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