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삼키던 '서류광탈' 취준생, 아이유의 '분홍신' 만들다

조회수 2020. 9. 21. 18: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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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로 운명 바꾼 사람, 신데렐라보다는 저죠
디자인에 재능 없다 포기했던 취준생
아이유 '분홍신’ 만든 김효진 디자이너
2018년 새 구두 사업 도전 계획

‘불합격’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그녀는 눈물을 삼켰다. 일자리를 구하러 떠난 미국 유학이었다. 최선을 다해 두드렸지만 취업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운명을 바꾼 건 ‘구두 한 켤레’. 우연히 만들게 된 구두는 그녀를 구두 디자이너의 세계로 이끌었다.

출처: jobsN
블랙마틴싯봉 쇼룸에서 진행한 김효진 디자이너 인터뷰

한국 구두 브랜드 최초 미국에 진출한 ‘지니킴(Jinny Kim)’의 김효진(39) 디자이너. 국내에선 아이유 분홍신을 만든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멋진 구두는 멋진 인생으로 안내한다”라고 믿는 그녀의 원래 전공은 의상학이다. 2001년 성균관대 의상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그땐 디자이너가 될 생각은 없었다.


“디자인에 특별한 재능이 없다 생각했습니다. 뭘 하고 싶은지 몰랐죠. 일반 기업에 100통 넘는 이력서를 썼지만 서류부터 불합격이었습니다. 패션 관련 분야를 경험해보고 싶단 생각에 패션잡지 어시스턴트로 시작했어요. ‘가방이라도 들게 해달라’며 패션지 사이트에 적힌 기자 이메일로 메일을 보냈죠. 마침 공석이 나 다음날 바로 출근했습니다.”


패션잡지 어시스턴트는 패션 화보 촬영을 돕는다. 주 업무는 촬영에 필요한 의상, 액세서리 등을 운반하는 일이다. 밤낮주말 없이 매장과 촬영장을 오가며 받았던 월급은 30만원. 6개월 일하다 아는 패션 기자 소개로 패션 홍보 대행사에 입사한다. 

출처: jobsN
(왼) 2010년 패션지 <피플>에 실린 지니킴 구두·(오) 김효진 디자이너가 2018년에 새롭게 출시하는 구두

“홍보대행사에서는 1년 6개월 일했습니다. 일할수록 실적 압박이 커졌어요. 스트레스가 극에 치닫자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뉴욕에 공부하러 간다는 대학 동기를 따라 유학길에 오릅니다.”


스물여섯. 유학을 떠날 때도 그녀는 디자이너가 될 생각이 없었다. 학비가 비교적 저렴한 패션스쿨 FIT(뉴욕주립패션공과대학교·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유통과 관련한 ‘패션 머천다이징’을 전공했다.


“졸업 후 패션 MD(상품기획자·Merchandiser) 분야 취업을 알아봤어요. 계속된 거절에 매일 눈물로 지새우던 때였죠. 절망에 빠져있던 중 룸메이트가 만든 구두를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구두도 옷처럼 디자인할 수 있단 사실을 몰랐거든요. 저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곧바로 학교에 졸업생도 수강할 수 있는 액세서리 제작 수업을 신청했다. 지역 문화센터를 찾아 구두 제작 강좌를 들었다. 구두 디자인을 시작한 뒤로는 사람들의 발밖에 안 보였다. 자신의 구두를 뜯어보는 것도 모자라 친구들의 헌 구두를 해부해 패턴 기술과 재단 상태, 못 위치 등을 살폈다. 하루빨리 구두를 직접 만들고 싶었다.

출처: jobsN
김효진 디자이너가 스케치한 구두 디자인

“정식으로 구두 디자인을 배워본적이 없으니 기술이라도 탄탄히 익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구두 공장 취직을 알아봤지만 미국엔 마땅한 곳이 없었어요. 재료상을 돌다 구두 부자재들이 모두 한국에서 왔다는 거예요. 그토록 찾던 구두 공장이 바로 한국에 있었어요.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2005년 뉴욕 유학을 마친 그녀가 한국에 자리 잡은 곳은 성수동 허름한 구두 공장이었다. 스물여덟. 막내 디자이너로 월 80만원을 받았다.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구두는 동대문 매장에 진열됐다. 높은 힐에 과감한 스타일의 구두를 본 동료들은 “여기가 백화점인 줄 아냐”라며 핀잔을 줬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녀가 6개월간 만들던 구두는 적지만 꾸준히 매출이 났는데 모두 고급 의류매장에서 사 갔던 것이다.


“압구정·청담동에 위치한 고급 의류 매장에서 제 구두를 발견했습니다. 옷과 진열해뒀더군요. 시장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랜드로 판매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400만원을 빌려 사업자 등록을 했습니다. 제 이름 김효진을 딴 지니킴(Jinny Kim)이었죠.”

출처: Mnet 캡쳐
김효진 디자이너가 제작한 아이유 '분홍신' 구두

지니킴은 2006년 구매대행 쇼핑몰 ‘위즈위드’에 입점했다. 400만원의 적은 초기 자본금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국내에 온라인 쇼핑이 막 활기를 띠기 시작했던 때였다. 브랜드 전략은 적중했다. 첫달 매출만 3000만원 이상이었다.


“국내 구두 브랜드도 명품 못지 않은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인터넷 쇼핑몰은 패션에 관심이 많고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바로 반응이 왔어요.”


국내에서만 인기를 끈게 아니었다. 창업 6개월차. 미국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들러 그녀의 구두를 사가자 주위 관심이 쏟아졌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김효진 대표는 곧장 라스베거스에서 열리는 신발쇼(World Shoe Association)에 참가 신청서를 냈다. 그 해 미국 대형 고급 백화점 노드스트롬(Nordstrom) 입점했다.

김효진 디자이너의 구두를 신은 패리스 힐튼

“지니킴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구두 브랜드였죠. 2007년 7월, 위즈위드에서 합병제안을 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혼자 디자인·생산·경영 등을 모든걸 도맡는게 버거웠던 때였습니다. 처음 구두를 유통했던 회사라 믿을 수 있다 생각해 받아들였죠.”


사업은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지니킴의 매출은 2014년 12월에 23억원, 2015년 1월에 18억원이었다. 연매출은 150억원을 훌쩍 넘었다. 타이라 뱅크스, 미란다 커, 패리스 힐튼 등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그녀의 구두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러나 그녀는 2015년 9월, 지니킴 대표직에서 스스로 물러난다.


“일방적인 합병을 통보하는 위즈위드를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무리한 사업 확장보단 오랫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길 바랐죠. 지니킴은 이제 제 손을 떠났어요. 많이 배웠다 생각해요. 2018년 새롭게 런칭하는 브랜드는 보다 제 색깔을 담을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출처: jobsN

다시 시작점에 선 김효진 디자이너. 11년 전 유학을 마친 뒤 한국에 돌아왔던 때처럼 그녀가 요새 찾는 곳은 성수동 구두 공장이다. 패션의 수도라는 뉴욕에서 유학한 그녀지만 구두 제조 기술이나 시스템은 한국이 훨씬 앞선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최상의 구두 인프라가 갖춰진 곳입니다. 젊은이들이 제조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탈리아에선 공장 근로자들의 자부심이 높죠. 공장에서 시작해도 세계적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생각해요. 제가 그랬습니다.”


글 jobsN 김지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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