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술 처음 마신 다음날..'그래 바로 이거야!'

조회수 2020. 9. 24. 01: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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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때려치우고 미국서 '숙취해소 음료 창업' 선택한 한국 청년
‘모닝 리커버리’ 선보인 27세 이시선 대표
한국 놀러 왔다가 숙취해소 음료 효과 경험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테슬라 그만두고 창업

82 Labs의 이시선(27) 대표는 페이스북·우버·테슬라 등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회사를 두루 거쳤다. 11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이 대표는 2016년 11월,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평소보다 무리하게 술을 마셨다. 다음날 숙취를 걱정하며 일어났지만 몸이 가뿐했다. 전날 친구들이 건네준 숙취해소 음료를 마신 덕분이었다. 이 대표는 이민을 간 후 성인이 될 때까지 숙취해소 음료를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술을 진탕 마시고도 다음날 숙취가 없는 건 거의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출처: 이시선 대표 제공
82 Labs를 창업해 미국에서 '모닝 리커버리'라는 이름의 숙취해소 음료를 선보인 이시선(27) 대표.

미국에 돌아가서 숙취해소 음료 전도사 노릇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팔고 있는 ‘컨디션’ ’여명808’ 등은 미국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이베이나 아마존 사이트를 통해 수입한 숙취해소 음료를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반응이 뜨거웠다. 자연스럽게 ‘한국 숙취해소 음료를 미국에 들여와 유통하는 일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취해소 음료 제조사에 연락을 취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결국 이 대표는 자신이 직접 숙취해소 음료를 만들어서 판매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모닝 리커버리(MORNING RECOVERY)’다.


1200명에게 샘플 제공, 직접 피드백 받기도


-페이스북·우버·테슬라 등 과거 경력이 화려하다

“캐나다 워털루대학(University of Waterloo)에서 시스템디자인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학제 시스템상 재학기간 중 한 학기는 꼭 전공 관련 직무 인턴십을 해야 졸업이 가능했다. 그래서 2011년에 페이스북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페이스북, 우버, 테슬라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근무했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하나의 제품을 성공시키기 위한 모든 활동을 책임지고 관리한다.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리서치 하는 업무부터 시작해서 마케팅 계획 수립, 예산 집행까지도 모두 관여해야 한다.”


-그때의 경험이 ‘모닝 리커버리’를 제조해서 판매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나

“엄밀히 말하면 페이스북이나 테슬라에서 했던 일과 82 Labs의 창업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전에는 소프트웨어 쪽 일을 했다. 모닝 리커버리는 식음료 ‘소비재’ 다. 보통 상품의 종류나 성격에 따라 창업할 때 접근법이 다르겠지만 페이스북이나 테슬라에서 일했던 방식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배운 게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는 본격적인 투자를 받기 전까지 간단한 해킹이나 설문조사, 검색 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사용성(usability)을 체크한다. 해당 시스템이나 제품을 선보였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할지에 대해서 확인하기 위해서다.”

출처: 이시선 대표 제공
이시선 대표는 페이스북과 우버, 테슬라 등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회사를 두루 거쳤다. 위 사진은 페이스북 재직 시절 동료들과 찍은 사진.

-그래서 숙취해소 음료 ‘샘플’을 대량으로 배포하고 소비자 반응을 확인했던 건가


“2017년 2월부터 샘플 배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샘플 500개를 만들어서 페이스북이나 우버, 테슬라 오피스에 가져가서 ‘마셔보고 정말 효과가 있는지 피드백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샘플을 받은 500명의 소비자들은 제가 직·간접적으로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간단한 웹페이지 하나를 만들어서 배송 신청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숙취해소 음료 샘플을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총 700명의 신청자에게 샘플이 배송됐다. 샘플을 받아 본 사람들 중 50% 넘는 인원이 피드백을 보내왔다. ‘모닝 리커버리’ 샘플이 확실한 효과가 있다는 게 입증된 거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투자처를 알아보고 제조·판매 단계를 밟았다.”


투자자를 설득하는 법…“직접 마셔보고 판단하라”


-파트너인 징 리앙 박사는 어떻게 만났나


“2016년 11월 한국에서 처음 숙취해소 음료 효능을 확인하고 미국에 돌아와 틈틈이 ‘숙취 원인’과 ‘숙취해소 원리’ 등을 공부했다. 미국에서는 12월 말에 2~3주가량 ‘크리스마스 휴가(Christmas Break)’를 갖는다. 그때 집에서 이것저것 논문을 살펴보다가 캘리포니아대(UCLA) 신경 약리학자인 징 리앙 박사의 숙취 관련 논문을 봤다. 논문을 읽고 무작정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만났다.


리앙 박사의 논문을 정리하면 이렇다. 간이 분해할 수 있는 알코올보다 많은 양이 몸속에 들어오면 독성을 가진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 때문에 두통 등의 숙취를 일으킨다. 그런데 ‘디하이드로미리세틴(DHM)’이라는 물질이 이 독성을 제거해주는 효과가 있다. 디하이드로미리세틴은 헛개와 등나무 열매에서 추출한다. 리앙 박사의 조언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숙취해소 음료인 ‘모닝 리커버리’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출처: 82 Labs 제공
숙취해소 음료 '모닝 리커버리'.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해 현란한 설명을 하기보다 제품 한 병을 선물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고 하던데


"‘슬로 벤처스(Slow Ventures)’라는 곳으로부터 총 45만달러(한화 약 5억원)를 투자 받았다. 신규 앱이나 제품 정보를 공유하는 미국 커뮤니티 ‘프로덕트 헌트(Product Hunt)’에서 모닝 리커버리가 주목을 받은 이후다. 투자회사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는데 현란한 설명이나 발표 자료를 가지고 투자자를 설득하는 것보다 우리 제품이 정말 효과가 있다는 걸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모닝 리커버리 샘플을 하나 건네며 ‘주말에 마셔보고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보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바로 투자를 하겠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리테일 판로 개척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는 82 Labs


-미국은 숙취해소 음료 시장이 전무한가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사업을 위해 찾아보니까 이미 30개가 넘는 브랜드에서 제품을 출시했다. 미국에서 ‘에너지 음료’라고 하면 다들 ‘레드불’을 먼저 떠올리는 것처럼, ‘숙취해소 음료’ 하면 ‘모닝 리커버리’를 떠오르게 하는 게 우리의 바람이다.”


-미국 숙취해소 음료 시장 전망은 어떤가


“한국에서는 주말은 기본이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도 술을 많이 마시더라. 미국은 그렇지 않다. 주말에 집중적으로 술을 마시는 경향이 강하고, 술자리도 ‘파티’ 성격이 강하다. 한국과 미국은 분명 서로 다른 술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알코올 시장 규모와 숙취해소 음료 시장 규모는 비례할 것이라고 본다.


한국 알코올 시장은 연간 90억달러(한화 약 10조1988억) 규모다. 숙취해소 음료 시장 규모는 1억6000만달러(한화 약 1814억) 정도다. 미국의 알코올 시장 규모는 연간 2000억달러(한화 약 226조7000억원)임을 감안해 본다면 미국 내 숙취해소 음료 시장은 전망이 밝다고 본다.”


-현재는 ‘모닝 리커버리’를 온라인에서만 살 수 있던데


“그렇다. 웹사이트로 주문을 받는데 6병에 27달러(한화 약 3만원)다. 2017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판매에 들어갔는데 30만병 주문이 들어와 15억3000만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전체 물량 중 60%는 미국, 나머지 40%는 캐나다와 유럽 등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앞으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소비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편의점보다는 바(Bar)나 나이트클럽에 공급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새벽 2시가 되면 술집에서 주류 판매를 더 이상 할 수 없다. 그래서 새벽 2시 이후 뭔가 팔 수 있는 제품이 있다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라. 현재 재미있는 실험도 하고 있다. 몇 개의 바나 클럽이 우리 쪽에 매출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모닝 리커버리’를 무상으로 공급한다. 바나 클럽 오너 입장에서는 새벽 2시 이후 술을 팔지 못하는 대신 숙취해소 음료를 팔 수 있어 좋다. 뿐만 아니라 효능이 좋은 숙취해소 음료 덕분에 새벽 2시 전에 손님들이 술을 더 많이 마시도록 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결과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될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이런 실험들을 토대로 계속 리서치 작업을 진행하며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모닝 리커버리가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테슬라를 그만두는 게 아쉽지는 않았나


“테슬라는 정말 좋은 회사다. 외부에서는 ‘최고의 직장’이라고도 말하더라. 실리콘밸리에는 한국과 다른 문화가 있는데, 로열티를 회사 자체에 두지 않고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과의 인간관계에 둔다는 점이다. 숙취해소 음료를 제조해서 판매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내 직장 상사는 꼭 도전하라고 격려해주며 엔젤투자까지 했다.


가장 든든했던 점은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이었다. 상사는 내게 ‘혹 실패하면 다시 테슬라로 돌아오라’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렇게 창업을 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오면 오히려 연봉을 더 높게 주며 다시 일할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 로열티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더 큰 경험을 하고 성장하고 돌아왔다고 평가해주는 거다. 그래서 테슬라를 나오는 게 꼭 아쉽지만은 않을 수 있었다.”


글 jobsN 박가영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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