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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2017.10.10. 작성

일본말이란 누명 쓰고 탄압 받는 우리말

[상식ssul]“너 일본인이야? 왜 일본말을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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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잔재로 오해받아 탄압받는 순 우리말 적잖아
공기관이 순 우리말을 외래어로 혼동하기도
도리어 근본 없는 어휘를 순 우리말로 떠받들기도 해

“너 일본인이야? 왜 일본말을 써?”


한 대기업 신입사원 최모(28)씨는 얼마 전 선배에게 ‘감사합니다’고 말했다가 혼쭐이 났다. 최씨의 선배는 “한국말도 똑바로 못하냐”며 “감사는 일본어 ‘칸샤시마스’(感謝します) 에서 온 말이니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쓰라”고 쏘아붙였다.


의도는 좋았을 지 모르지만, 틀린 지적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감사’는 중국어에서도 쓰이고 있고, 비록 17세기 원본이 전하지는 않지만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계녀서’(誡女書)에도 등장한다”며 “과거 한 신문이 ‘감사’가 일본어에서 탄생한 말이라 잘못 알려 생긴 오해”라고 밝혔다.


애들끼리 놀다 보면, 살짝 이민족처럼 생긴 아이가 종종 엄마 아빠 외국인이라 놀림당하는 때가 있다. 전형적인 한국인과 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우리 말들이 있다. 멀쩡한 우리말이 일본어 찌꺼기로 몰리는 것이다. 특히 요즘같은 한글날 무렵에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취급 받는 말을 몇 개 짚어 본다.


쏘지 마라 아군이다


지난 2015년 5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연구팀과 대한민국 홍보 연합동아리 ‘생존경쟁’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경기 지역 남녀 대학생 각 350명을 대상으로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일본어 잔재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구라’(거짓말)가 가장 많이 쓰는 일본어 잔재 단어로 지목당했다. 전체 응답자의 57.9%인 405명이 택했다 한다.


하지만 사실 일본어에는 ‘구라’의 발음이나 뜻과 연관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굳이 찾자면 쿠라마스(くらます·속이다) 정도지만, '구라'와 어원이 연관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 결정적으로, ‘구라’는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하는 단어다. 즉, 국가 공인 표준어다. 물론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종종 오류가 있다지만, 일단은 '구라'도 에누리(값 깎기)·야마리(얌통머리)·야코(콧대)·사타구니(가랑이)처럼 순 우리말임에도 뭔가 일본어 비슷한 발음 때문에 오해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 설문에서 386명이 택해 2위가 된 ‘애매하다’ 역시 실제로는 일본어에 뿌리박고 있는 단어가 아니다. 한자어 애매(曖昧)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온다. 뜻 역시 현대어와 같이 ‘명확하지 않다’다. 예를 들면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45권에 ‘애매하여 판단하기 어렵다’(曖昧難辨)는 문구가 등장한다. 게다가 ‘애매’가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기록은 중국 후한 시대 사람 채옹(蔡邕)이 쓴 서적 ‘석회’(釋誨)다. 차라리 중국어 잔재 소리를 들으면 모를까, 일본어 잔재라고 지적 받을 근거는 없다.


나랏밥 먹는다는 사람들이


심지어 공공기관이 우리 역사에서 유서 깊은 한자어를 난데없이 일본식이라 지목해 쓰지 않겠다 선언하는 일도 벌어진다. 지난 2015년 4월, 서울시는 광복 70년을 맞아 일본식 한자어 등 일제 잔재 행정용어 23개를 순화해 적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하나로 지목된 단어가 ‘식비’(食費)다. 그러나 이 단어 역시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6권에 등장해 ‘밥값’의 의미로 쓰인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어 잔재라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당시 서울시 관계자는 “‘식비’는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훨씬 자주 쓰는 단어이기에 오해한 면이 있었다"며 "발표 후 식비는 일본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살리라는 우리말은 안 살리고

세종문화회관 지하 식당가 '광화문 아띠' 간판.

출처 : 조선DB

반대로, 공공기관에서 멀쩡한 우리말은 죽이고 어디서 근본 없는 말을 끌어다 순 우리말이라고 띄우는 해괴망측한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과거 서울시는 도리어 가짜 순 우리말인 ‘아띠’를 “친구의 순 우리말”이라며 세종문화회관 지하 식당가에 ‘광화문 아띠’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1년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현대사전뿐 아니라 고어사전, 어원사전, 우리말큰사전 옛말편 등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단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세종문화 회관 지하 식당가엔 아띠란 이름이 붙은 다음이었다. 진짜 순 우리말인 ‘벗’이 '아띠'란 근본 모를 단어에게 자리를 뺏긴 셈이다. 

쇄빙선 '아라온호'.

출처 : 조선DB

한국 최초 쇄빙 연구선 ‘아라온호’도 비슷한 예다. ‘아라’가 바다의 옛말이라며 배이름을 이렇게 지었지만, 사실 아라에 ‘아래’ 뜻은 있어도 ‘바다’ 의미는 없다. 바다의 순 우리말은 바다다. 당시 한국해양연구원은 논란이 일자 “시민 공모를 통해 뽑은 이름인데 우리도 순 우리 말이 아닌 것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선정 당시에도 특별한 검증 절차는 달리 없었다고 한다.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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