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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2017.10.10. 작성

2500만원 모아 24살 때 떠난 2년 세계일주 그 끝에는

“평생 향기로운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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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흐르는 대로 독특한 시선으로 세계를 담는 화가 김물길


색(色)은 마음에서 일렁이는 향기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세계를 여행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사람의 향기를 화폭에 담아온 화가 김물길(29)이다.


그는 2011년 12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22개월 673일 동안 5대륙 46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냈고 요즘은 강연과 전시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진심이 담긴 그림은 사람을 위로하고 행복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 그의 여행담은 또 하나의 그림이다. 

김물길 씨는 대학교 3학년 때 국제봉사단체의 대학생 해외 워크 캠프에 참가했다. 귀국 후 그는 여행 경비를 모으기 시작했다. 학원 보조강사로 일했고 인턴으로도 일했다. 주말에는 일당 15만 원을 받으며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캐릭터나 로고 만드는 일까지 악착같이 일을 해 돈을 모았다. 그렇게 2년 반 만에 2500만 원을 모아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물네 살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나요?


“낙서를 좋아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티브이를 켜놓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따라 그렸죠.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친구들에게 그림을 팔기도 했어요. 그때 유행했던 애니메이션이 〈천사 소녀 네티〉와 〈세일러문〉이었는데, 여자 주인공을 똑같이 그려서 50원에 팔았어요. 하하. 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림 좀 그리는 아이로 통했어요. 그림 대회가 있으면 선생님들이 저를 추천할 정도로 좀 그리는? 그림이 내 길이라는 동기 부여가 됐던 것 같아요. 화가 외에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세계 여행을 시작할 때 특별히 계획하거나 목표한 바가 없었다고 했다.


“한국을 떠날 때 비행기 표를 두 장 끊었어요. 한국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표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 넘어가는 비행기 표. 돌아올 기약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까지는 예약을 했기 때문에 가야 했지만, 나머지는 즉흥적으로 결정했어요. 누가 어디가 좋다고 추천하면 그쪽으로 가고, 별로다 싶으면 옮기는 식이었어요. 2011년 12월에 떠나 처음 석 달 동안은 미얀마, 라오스, 태국, 인도, 네팔 등 아시아를 돌았고, 그다음에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로 넘어가서 남아공부터 쭉 육로로 유럽에 들어갔습니다. 유럽 스페인에서 비행기 타서 남미 페루로 갔고, 육로로 멕시코까지 갔다가 미국을 마지막으로 2013년 10월에 한국으로 들어왔죠.” 

673일간 5대륙 46개국을 여행하며 총 400여 장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행의 기록을 담아 책 《아트로드 :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 일주》를 펴내기도 했는데요.


“제 글이 책으로 나올 거라고 상상 못 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여행기를 블로그에서 봤다며 그림과 글을 정리해 책으로 엮자고 제안했죠. 여행하며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을 하기 위해서 글과 사진을 올리고 댓글로 소통했죠. 책을 내고 우연한 기회에 〈강연100도씨〉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에서 강연했는데, 그 이후로 초청 전시나 방송, 강연, 여행 관련한 의뢰가 자주 들어와요.” 

본명이 김수로인데 필명에 담긴 의미가 있나요?


“인도를 여행할 때 할머니가 손편지를 써서 보내준 적이 있어요. 제 이름이 ‘물 수(水), 길 로(路)’ 자를 쓰는데, 편지에 할머니가 ‘수로니까 물길이지. 물처럼 졸졸 흐르다가 추우면 할미가 해님 돼줄게. 할미 뒤에 숨어라’라고 썼는데 그때 많이 울었어요. 2012년 초, 여행 떠난 지 두 달 반째였죠. 그때부터 물길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그림이 독특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신해요. 자작나무 숲에서 얼룩말을 보거나 파도를 보고 여인의 머릿결을 그려내는 식이 그렇죠.


“대부분 수채화로 그림을 그립니다. 종이 위에 물감이 번지는 느낌을 좋아하죠. 아직은 제 그림 스타일을 잘 몰라요. 느끼는 것을 상상해서 그릴 뿐이죠. 모든 그림이 다 달라요.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까요? 풍경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상상을 가미해요. 예를 들어 쿠바 아바나의 대극장 카피톨리오 기둥을 잘 내려 땋은 모자로 그린다거나, 거리에서 본 벽을 주사위의 육각면체에 담았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그런 그림을 좋아합니다.” 

특별히 아끼는 그림이 있나요.


“세계 여행할 때 그렸던 그림들이 제일 소중해요. 특히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갔을 때 그린 손바닥 그림이오. 거긴 동물원이 아닌 생생한 야생이잖아요. 세렝게티 초원도 충격이었지만, 얼룩말이 동네 개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아서 놀랐습니다. ‘내가 여기에 왔다는 것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스케치북에 손을 올려 모양을 본뜨고, 그 안에 거기서 만난 동물들을 그려 넣었죠. 내 손안에 모든 동물이 담겨 있는 아주 특별한 그림입니다.” 

인물 묘사도 탁월합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물들의 표정을 그대로 살린 초상화는 개성 넘치면서도 역동적입니다.


“여행을 다니며 100여 명의 초상화를 그렸어요. 저는 초상화를 그릴 때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서 느꼈던 이미지를 그립니다. 초상화를 그렸던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고 있어요. 초상화를 받았던 사람 중에 인생 첫 초상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초상화 덕분에 돈을 쓰지 않고도 그 이상의 인간적인 교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장기간의 여행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겠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은 너무나 자주 있었던 일이죠. 이집트 공항에서 짐을 분실해 고생한 적도 있어요. 여행 떠난 지 9개월 만이었죠. 며칠을 빈털터리로 숙박비도 못 내고 지냈어요. 다행히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저를 믿고 도와주셨어요. 믿었던 친구가 가방을 훔쳐간 적도 있어요. 신용카드와 여권은 따로 가방에 가지고 다녀서 다행이었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그런 일이 생기면 꼭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생겨요.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여행을 더 해보자 생각했죠. 아마 그때 여행을 그만뒀으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여행은 참 힘든 일이에요.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치열하게 돈을 벌어서 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약 부모님 돈으로 떠났다면 포기도 쉬웠겠죠. 주변에서 인정을 못 받는 상태에서 간 여행이었어요. 부모님마저도 말렸죠. 혼자 고집 부려서 떠난 거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고자 했던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하고 그만둔다면 앞으로 어떤 것을 선택해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좋아서 한 일이고, 내 선택이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그 일념으로 여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김물길 작가처럼 세계 여행을 꿈꾸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종종 ‘여행을 가고 싶은데 어떤 테마를 가지고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아요. 진짜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 그런 물음부터 여행은 의미가 없어져요. 멋들어진 테마를 잡지 못하면 마치 자신의 여행을 볼품없다고 느끼는 데서 문제가 생겨요. 테마를 잡는 순간 여행의 본질이 흐려집니다. 여행은 그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무언가를 정해서 떠나면 더 큰 보석을 찾을 기회를 놓쳐요. 주변의 말에 자신의 여행을 오염시키지 말고,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왔으면 좋겠어요. 여행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까. 무엇보다 안전하게 여행하라. 그것 말고는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없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세계 여행을 다시 떠날 건가요.


“새로운 도시에서 받는 영감은 분명 여행의 동력입니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할 계획은 없어요. 여행이 더 이상 나에게 영감을 주지 못한다면 떠날 필요가 없죠. 저는 여행 작가이기 이전에 화가입니다. 여행은 화가가 되는 과정에 있었을 뿐이죠.”


화가 김물길은 어떤 인생을 그리고 있나요.


“제 그림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어요. 얼굴 주변으로 번지는 수채화 물감이 그것인데, 인물 주변에 퍼지는 색감은 사람의 향기를 표현한 것입니다. 향기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향기는 작은 틈새만 있어도 새어나가고, 아무리 넓은 공간도 가득 채울 수 있고, 운이 좋아 바람이라도 불면 그 영향력도 커집니다.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퍼지듯이 저를 통해 세상에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어요. 향기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한 사람이 먼저 되어야겠죠. 제가 어떤 향기를 가진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jobsN 서경리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사진 서경리·김물길 제공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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