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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체전 6연패한 수영선수가 현역 공군 입대한 이유는?

조회수 2020. 9. 24. 01: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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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핑 징계 받았지만 재기에 성공한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김지현


운동선수는 다른 직업보다 수명이 짧은 편이다. 특히나 수영에선 더 두드러진다. 스물아홉의 나이. 수영에선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이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지 않은 선수가 있다. 안타깝게 도핑에 걸렸고, 그 스스로는 이해할 수 없는 도핑 징계를 받아서 수영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군 제대 후 국가대표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수영선수, 김지현(29·충북수영연맹)을 잠실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부분의 남성 운동선수들은 군대를 상무로 간다. 상무는 실업팀의 개념으로 운영되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동시에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 운동선수들은 상무에 입대함으로써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김지현은 아니었다. 그는 2015년 3월 23일 공군에 입대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체전에서 6연패를 달성하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국가대표로 출전해 0.1초 차이로 동메달을 아쉽게 놓쳤다. 소위 말하는 운동선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김지현이 왜 상무가 아닌 ‘공군’에 입대하게 됐을까?


그 배경에는 안타깝게 도핑 테스트에 걸려 징계 2년을 받은 이력이 있었다.


2014년 5월, 김지현은 수영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진천 선수촌에서 훈련하고 있었다. 후에 있을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다. 그가 일본에 건너가 전지훈련을 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도핑방지위원회였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서 한 사건이 떠올랐다.


이해할 수 없는 최고 수준의 징계 

“제가 진천 선수촌에 있을 때예요. 당시 저는 목감기 증상이 있었어요. 그래서 금요 외박을 받고 동네 병원에 갔죠. 엄마랑 똑같은 증상의 목감기였어요. 그때 처방받은 약에 ‘클린부테롤’이라는 금지 약물이 있었죠. 항상 가던 병원이어서 의심하지 않고 약을 먹었죠. 그 전해에도 그 병원에서 처방을 받고 전국체전에 출전했는데 도핑에 안 걸렸거든요. 아시안게임에서도 이틀 연속 도핑 테스트를 했는데 안 걸렸죠. 그런데 희한한 건 엄마랑 저랑 같은 목감기 증상이었는데 엄마의 약엔 그 금지 약물이 없었어요. 결국 저는 코치랑 감독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고 ‘재팬 오픈’을 뛰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해명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병원에 가서 진료 확인서를 준비하고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장소에 트레이너와 당시 자신의 진료를 담당한 의사까지 대동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선수자격 정지 2년이라는 최고 수준의 징계였다. 항소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해명 자료를 준비할 시간이 일주일 정도 있었어요. 그래서 병원 가서 진료 확인서랑 여러 해명 자료를 준비해 갔어요. 거기에 트레이너도 오고 당시 의사까지 왔어요. 그런데 징계위원회에선 제 말이 하나도 안 먹히더라고요. 상상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우리나라 행정이 잘못된 게 외국 같은 경우는 판결하는 사람이 있고 해명하는 사람과 해명을 반박하는 사람이 있죠. 그런데 한국은 해명을 반박하는 사람과 징계를 내리는 사람이 똑같은 거예요. 도핑방지위원회가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거죠. 즉 조사기관이랑 판결기관이 같은 거죠. 그래서 1차 청문회 이후에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는 아니다. 더 준비를 해야겠다’고요. 그래서 항소위원회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어요. 그해에 체전도 있고 그래서 어떻게든 감경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자료도 준비하고 대표팀 선후배, 코치 분들 탄원서 다 받고 외국 사례까지, 저와 똑같은 약물 걸린 사람들 자료를 준비해 갔는데도 안 됐어요. 똑같이 2년 구형을 받았습니다.”


이 징계가 아이러니한 건 그의 국가대표 동료이자 대한민국 수영의 간판 박태환의 징계 때문이기도 했다. 지난 2015년 3월 23일, 김지현이 공군에 입대할 당시 박태환의 남성호르몬 관련 도핑 징계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각종 도핑 판례를 살펴봤을 때 남성호르몬으로 도핑에 걸린 경우 김지현의 도핑 징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징계를 받는다. 그러나 국내의 도핑 징계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김지현은 이 사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저도 국제도핑위원회까지 갔으면 징계가 줄었을 거예요. 그런데 누가 저한테 돈 대줄 것도 아니고, 스포츠중재재판소는 스위스에 본부가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 항공비에 숙박비에 국제변호사 비용까지 하면 안 하고 말지. 돈이 너무 드니까. 그리고 줄어봤자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군대 빨리 갔다 오는 게 낫다 싶었죠. 이미 저는 도핑방지위원회에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였거든요. 국내 도핑방지위원회가 좀 변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군복무를 마친 지금 생각해보니 저도 희생양이었던 것 같긴 해요. 외국 사례와 비교해봐도 제가 걸린 약물 징계로 2년을 받은 사람들이 없어요. 다 1년 받았더라고요. 중국의 세계 선수권 금메달리스트 닝제타오 선수도 징계 1년을 받았어요. 찾아보니 이 선수는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입증 자료가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입증 자료가 있는데도 2년을 받았죠.”


2년 징계를 받은 당시에 김지현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운동선수에겐 필수인 자기 관리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는 2년이란 시간 동안 군 복무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냥 군대를 가면 딱이겠다고 생각했어요. 상무는 도핑 징계 때문에 지원이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가르치는 수영조교로 지원했습니다. 합격 전화를 받았는데 1시간 뒤에 또 전화가 오더라고요. 육사에서 도핑 걸린 사람을 받을 수가 없다고, 육사의 명예 때문에 곤란하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소문을 하게 됐죠. 찾아보니 제 후배가 공군사관학교에 있더라고요. 이 후배에게 바로 연락을 했죠. 그리고 공군에 입대하게 됐습니다.”


2년이라는 공군 복무 기간, 항상 곁에 함께한 수영

공군에 입대했을 때 그는 계속 수영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상무와 같이 계속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자대 자체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수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2015년 10월에 경북 문경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였다.


“문경 공군 5종에 수영코치가 없었어요. 사격이나 펜싱 코치는 있었는데 수영은 없었지요. 우리나라에서 하는데 우리나라 선수들이 뛰어야 하잖아요. 윗선에서 도와주셔서 수영코치 보직으로 갈 수 있었죠. 이때 팀장님이 잘 배려를 해주셔서 상무에서 수영을 가르치고 상무 소속 선수들과 같이 훈련을 하게 해주셨어요. 혼자 운동할 시간도 많이 주시고. 물론 당시 선수들에게 수영도 빡세게 시켰죠.(웃음) 팀장님이 말했어요. ‘수영 가르칠 때는 너가 대령이다. 너가 나다’라고요. 그때 저는 일병이었거든요. 당시 출전하는 군인들한테 선수에게 하듯 훈련을 시켰죠. 힘들었을 텐데 다들 잘 따라줬어요, 덕분에 0.3초 차이로 2등을 했어요.”


이 일을 계기로 김지현은 공군사관학교로 자대를 재배치 받았다. 그리고 윗사람들의 배려로 따로 수영 훈련도 하고 몸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부대에서 배려도 해줘서 군 복무 기간에 공군사관학교 소속으로 대회를 나갈 수 있었다. 그는 2016년 7월에 열린 MBC배 전국수영대회에서 3위를 두 번 기록하며 수영선수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안타깝게 도핑에 걸렸지만


올해 3월 22일, 드디어 제대를 했다. 그는 제대한 날 바로 수영장으로 향했다. 10월에 있을 전국체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군 복무라는 2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나이는 29세가 됐다. 수영선수로서 진지하게 은퇴를 고려할 나이지만 그의 수영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전국체전에 나가야죠. 전역한 후부터 전국체전에 맞게 몸을 만들어왔어요. 사실 준비 기간이 적은 편이죠. 남들은 1년을 준비하는데 저는 3년 정도를 쉬었으니까요. 그런데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어요. 어느 때보다 재미있게 수영을 하고 있고,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더 힘들기는 한데 열심히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는 뭔가를 보여주고 은퇴를 하고 싶어요. 뭔가 보여주지 않고 은퇴를 하면 저 자신에게 안 좋을 거 같아요. 저한테 도핑은 꼬리표잖아요. 제가 뭔가를 보여주지 않고 은퇴를 하면 ‘얘는 안타깝게 도핑에 걸려 은퇴를 한 선수’ 이렇게밖에 안 남아요. 제가 뭔가를 보여주면 ‘안타깝게 도핑에 걸렸지만 재기에 성공한 선수’ 이렇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되고 싶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주변 사람들은 제 나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사실 나이 먹고 힘든 거는 모르겠어요. 젊었을 때도 힘들었거든요.(웃음) 예전에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어요. 운동이란 거 자체가 힘든 걸 극복해나가는 것이니까요. 나이에 대해선 신경 안 쓰려고 해요.”


글 jobsN 안희찬 대학생 명예기자(한국외국어대 2학년), 사진 서경리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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