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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평 가게서 하루에 엽서 150만원어치 파는 여성의 비결

조회수 2020. 9. 24. 00: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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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는 촌스럽다"는 편견 깬 발상의 전환
1913송정역 시장 청년상인 '역서사소'
'여기서 사세요'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
SNS 화제 '사투리 문구' 만드는 대학 선후배

‘사투리’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된다. '조폭이 언어'로 비추어지고 사투리를 쓰는 등장인물은 촌스럽거나 성격이 억세다. 이런 편견을 깨고 사투리의 바른 뜻을 알리는 사람들이 있다. ‘역서사소’의 김효미(35)·김진아(34) 공동 대표다. 조선대 시각디자인학과 선·후배 사이다. ‘바비샤인’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던 두 사람은 2016년 4월 1913송정역 시장이 문을 열 때 가게를 냈다.

출처: /김진아 대표 제공

1913송정역 시장을 상징하는 대표 가게로 자리잡았다. 역서사소는 ‘여기서 사소’라는 전남 사투리다. ‘사투리’를 콘셉트로 달력·엽서·볼펜 등 30여종의 문구류를 판다. '욕봤소 십이월', ‘나으 가슴이 요로코롬 뛰어분디 어째쓰까’라는 사투리가 눈에 띈다. 사투리 엽서는 한장에 1500원. 기존 엽서에 1.5배 가격이지만 반응이 좋다. 김진아 대표는 "5번 정도 발주한 것 같은데, 한번에 5000장씩 만든다"고 했다. 2만5000장 정도 팔린 셈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도 역서사소의 사진과 꼭 방문해보라는 글이 붙은 게시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5평(약 49㎡) 짜리 가게에서 주말 하루에만 150만원 어치를 팔기도 한다. 역서사소 가게 외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곳은 20곳. 교보문고, 텐바이텐이나 1300K 같은 디자인 문구 회사, 편집숍에서 팔려나간다.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사투리 본래 뜻을 알리며 공익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잡았다. 김진아 대표와 전화 인터뷰로 역서사소가 좋은 반응을 이끌 수 있는 비결을 알아봤다.

출처: 역서사소 제공
역서사소의 2017 사투리 달력. 사투리를 제품에 입히는 아이디어와 디자인은 특허출원해 보호한다.

시장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잡은 발상의 전환


역서사소는 외면 받는 사투리에 아날로그 감성을 입혔다. 제품에 사투리와 함께 뜻을 풀이해 놓았다. 쉽고 재밌게 사투리를 배우고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정감가고 재치있는 글귀가 보는 사람을 웃게 만든다. '재미'에서 끝나진 않는다. 가령 ‘포도시 일월’에서 ‘포도시’란 ‘간신히’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다. 그 뒤에는 '간신히 지금까지 버텨 1월을 맞이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열심히 인생을 달려온 이들을 위로한다. 

출처: 역서사소 제공
(왼쪽부터) 경상도 사투리 엽서와 전라도 사투리 엽서

‘올바른 뜻을 전한다’는 가치만 강조했다면 소비자 관심을 끌긴 어려웠을 것이다. 역서사소 제품은 예쁘다. 디자인이 화려하진 않다. 단색 배경에 사투리 글자가 큼지막하게 또는 자그맣게 들어가 있다. 글씨체를 직접 만들거나 기존 글씨체를 변형해 ‘역서사소’만의 느낌을 낸다. “화려하다고 뛰어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희 디자인은 언어를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


엽서나 달력 같은 문구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밀려 사라져가는 제품 가운데 하나다. ‘사투리’를 콘셉트로 한 문구류는 한번 쓰고 버리는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갖고 싶은’ 기호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가격도 부담없다. 볼펜 1000원, 달력 1만2000원이다. 역서사소는 광주 송정역 시장 입구에 있다.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고, 시장을 둘러보고 난 뒤 사가기에 적합하다. ‘사투리’를 콘셉트로 했기 때문에 그 지역을 떠올릴 수 있는 기념품으로 제격이다. “광주에 맛있는 음식은 많은데 대표적인 먹거리나 상품이 없어요. 부산에는 어묵이 있고 제주도에는 귤이 있듯이요. 저희 제품은 지역성을 띠니까 시장을 대표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출처: 역서사소 제공
"저도 어릴 때는 사투리가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 고유의 언어라는 걸 깨닫고 나서는 사투리가 자랑스럽습니다."

역서사소를 탄생하게 한 바비샤인


김진아 대표와 김효미 대표는 졸업 후에도 전공을 살려 미술 관련 일을 했다. 김효미 대표는 디자인 회사를 다녔고 김진아 대표는 미술교사로 일하며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두 사람은 2013년 ‘바비샤인’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김효미 대표가 출산 후 회사를 그만두면서 김진아 대표에게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건물 벽화 작업부터 포스터·전단지·캘리그라피·방송 타이틀 제작 등 ‘디자인 기획’에 관한 모든 일을 했다.


1913송정역 시장의 원래 이름은 매일송정역전시장. 죽어가는 재래시장이었다. 55개 점포 중 35%가 빈 가게였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2015년 ‘1913송정역 시장 재단장’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정부가 주도하는 전통시장 청년몰 사업과 달리, 현대자동차그룹에서 후원하고 현대카드가 기획을 총괄했다. 

출처: 바비샤인 제공
바비샤인이 작업한 캘리그라피와 현수막. 오른쪽 현수막은 광주 동구 영상복합문화관이다. 바비샤인은 최근 이 건물 안 스마트벤처창업학교 리모델링 디자인 총감독을 맡았다.

2015년 말 1913송정역 시장에서 청년상인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역서사소가 마침 사투리를 콘셉트로 한 문구류를 기획하고 있을 때였다. 창업동기와 사업추진 계획, 아이디어 개요, 제품의 시장성, 자금조달계획, 점포 인테리어와 디자인의 방향성을 담은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시장에 먹거리가 많은데 역서사소가 다양성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또 저희가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관련분야에서 일을 했으니 ‘전문가’로서 잘 만들 수 있자고 어필했습니다.”


최종 청년상인에 뽑힌 역서사소는 점포 및 간판 인테리어 비용과 임차료 일부를 지원받았다. 실질적으로 든 초기 투자금은 100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다. 보증금 600만원에, 초기 문구류를 제작하는 비용 500만~600만원이 들었다. 1년 동안 월세를 내지 않았고, 2017년 5월부터는 한달에 평당 2만원씩 내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는 차원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낙후된 지역에 개성있는 소규모 상점이 들어서면서 '핫플레이스'가 되고, 대형 프랜차이즈와 유명 기업이 진출해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동네를 떠나는 현상을 말한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언어’를 다루는 일이기에 재미나 디자인으로만 다가갈 수 없었다. 한국에서 살며 틀린 한국어를 쓸 때가 있듯, 항상 바른 사투리를 쓰는 건 아니었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가 서로 달라요. 가령 전북은 ‘후딱 사오셔’하지만 전남은 ‘후딱 사 오시기라오’로 말해요. 경상도에서도 대구와 부산 사투리가 조금씩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점포에 들른 어르신이 ‘이건 전라도가 아니라 전라북도 사투리’라고 하며 저희를 혼내신 적이 있어요. 이후로 언어학, 사투리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투리 유래도 꼭 확인해요.” 

출처: 김진아 대표 제공
(오른쪽) 도쿄 박람회에서. 2017년 7월 도쿄 박람회에 오사카·고베·오키나와 사투리 제품을 만들어 참여했다. 이곳에서 ‘사투리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했다. “저희 캐치프레이즈가 ‘사투리는 촌스럽지 않습니다, 우리말입니다’인데, 재일교포분이 ‘일본에서는 사투리를 촌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셨어요. 우리도 사투리를 예쁜 우리말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각박한 세상 속, 사람들이 웃을 수 있기를


사투리를 제품에 입히는 작은 발상의 전환이 시장을 만들고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2018년은 ‘전라도’라는 지명이 생긴지 10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기념품을 기획 중이에요. 무엇이든 ‘사투리’ 날개를 달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역서사소는 한자로 ‘暘胥事笑’라 쓴다. ‘해 반짝 뜰날 우리 함께 모여 힘껏 웃세’라는 뜻이다.


“사투리를 보고 즐거워하는 손님들을 볼 때마다 행복해요. 연인들은 그 자리에서 엽서에 편지를 써서 주고받더라구요. 한번은 ‘타지로 시집가서 고향말 들을 일이 없었는데 (사투리를) 보고 뭉클했다’며 고맙다고 했어요. 처음 저희가 생각한대로 사투리를 알아주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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