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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만 하루 1000개 팔리는 제품 만든 30대

조회수 2020. 9. 24. 00: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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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맥주' 뒤에 숨어 있는 14년차 맥주 장인의 노력
'청와대 맥주'로 화제된 세븐브로이
국내 최초 수제맥주 전문 기업
03년부터 맥주 만든 윤진수 공장장

수제 맥주 전성시대다. 소비자들은 더이상 한국 맥주 시장을 양분했던 OB와 하이트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색·맛·향이 다양하고 개성 강한 수제 맥주에 열광하고 있다.


이런 수제 맥주 붐의 중심에는 '세븐브로이'가 있다. OB와 하이트 다음으로 만들어진 국내 세번째 맥주 회사다. 7월 청와대 미팅에 만찬주로 올라 주목받기도 했다. 세븐브로이는 전직원 35명이 모두 정규직인 ‘착한 기업’으로 화제였다. 비단 청와대 미팅의 후광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세븐브로이는 맥주 마니아 사이에서 '국내 수제맥주 시장 개척자'로 인정 받는다. 

출처: 청와대 페이스북
7월 27일 열린 '청와대 호프 미팅'에 세븐브로이가 만찬주로 올랐다.

2002년 주세법이 개정되며 영업장에서 맥주를 만들어 팔 수 있는 수제 맥줏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븐브로이도 이때 서울역에서 수제맥줏집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대규모로 유통을 할 수 없는 탓에 성장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주세법은 수제 맥주를 만든 영업장에서만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다시 한번 주세법이 바뀌었다. 수제맥주를 마트와 편의점에서 팔수 있게 된 것이다. 세븐브로이가 생산한 가정용 맥주 IPA·임페리얼 IPA가 맥주 마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IPA란 Indian Pale Ale을 뜻한다. 18세기 중반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 통치할 때, 인도에 배가 도착할 때까지 맥주가 상하지 않도록 만든 맥주다. 홉(맥주의 쌉싸름한 맛을 결정하는 원료)을 많이 넣어 씁쓸하고 묵직하다. 세븐브로이는 그동안 수제맥주펍에서나 맛볼 수 있던 IPA를 집안으로 들여놨다. 또 '밍밍하고 싱겁다'는 한국 맥주에 대한 오해를 시원하게 벗겼다.


2016년 10월 내놓은 ‘강서맥주’는 지금까지 30만병 넘게 팔렸다. 국내 전체 맥주시장은 2조700억원. 이중 수제맥주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1%(200억원) 정도다. 세븐브로이는 8종류의 병맥주를 대형마트에 공급하고 전국 400곳 수제맥줏집에 생맥주를 납품하고 있다. 2017년 8월 이미 2016년 매출액(45억원)을 넘었다. 국내 수제 맥주 시장에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세븐브로이 맥주가 인정받기까지 윤진수(37) 공장장의 공이 크다. 올해 14년차 맥주 브루어(brewer)다. 그는 강원도에 있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김강삼 대표의 조카이자 창립멤버다. 양조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악착같이 매달렸다고 한다. 그를 만나 맥주 개발자의 삶을 들었다.

출처: jobsN
세븐브로이 윤진수 공장장.

국내에서 처음 맛보는 맥주의 비결


세븐브로이 맥주 공장은 강원도 횡성에 있다. 이곳에서 160톤의 맥주를 만들 수 있다. 세븐브로이 맥주는 OB와 하이트가 만드는 ‘라거’와 달리 ‘에일’을 주로 만든다. 향과 맛이 강하고 거품도 오랫동안 유지된다.


맥주를 개발할 때는 보통 3~6개월이 걸린다. 흔히 ‘싱겁다’고 생각하는 국내 맥주는 ‘하이 그래비티 공법’으로 만든다. 발효되기 전 상태인 ‘맥즙’의 알코올 도수를 7~8도로 높인 뒤 병이나 캔에 맥주를 담기 전 탄산수를 넣어 도수를 4~5도로 낮추는 방법이다. 가볍고 청량한 느낌이 있다. 처음에 알코올 도수를 높여 보관하는 만큼 발효·숙성용 탱크를 덜 사용할 수 있다.

출처: /조선닷컴 인포그래픽스

반면 세븐브로이는 ‘오리지널 그래비티 공법’으로 맥주를 만든다. 처음부터 알코올 도수를 4~5도로 맞춘다. 7~10일 동안 발효하고 또다시 7~10일 숙성시키며 맛과 향을 진하게 만든다. 생산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가격도 라거 맥주에 비해 2배 정도 비싸다.


“세븐브로이 맥주는 홉이 기존 맥주보다 최대 10배 더 많이 들어갑니다. 맛과 향이 진하고 묵직합니다. 또 홉은 맥주의 ‘헤드(head)’라고 부르는 거품을 오래 유지시킵니다. 항산화 작용을 해서 다른 오염균이나 미생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맥주 개발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맥주 레시피를 만드는 직업이다. 맥주를 만드는 사람의 색깔과 철학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맥주 개발자가 하는 일의 핵심은 맥주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홉’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꽃향, 풀향, 과일향 등 여러 종류의 홉을 조합한다.


“음식을 맞출 때 소금 간을 하듯 맥주의 맛은 ‘홉’이 결정합니다. 저는 120가지 정도의 홉을 접해봤습니다. 쓴맛·단맛·아로마(향)·바디감(묵직함)을 조화롭게 표현해야 합니다. 나름 레시피를 50~60개 정도 갖고 있습니다. 틈 날 때마다 여러 홉을 조합해보며 연구하고 있어요.”

출처: 세븐브로이 제공
(왼쪽부터) 맥주 원료인 맥아, 맥즙을 끓이는 끎임조(자비조), 맥즙에 효모를 넣어 발효하는 발효조.

맥주가 발효될 때는 현미경으로 효모가 건강한지를 수시로 확인한다. “효모가 맥즙에 있는 당을 먹으면서 알코올과 탄산을 뿜어냅니다. 효모가 당을 너무 많이 먹어도, 적게 먹어도 안돼요."


오감(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이용해 맛보는 ‘관능평가’를 할 때는 가장 예민해지는 시기다. “밥을 제대로 먹지를 못합니다. 혀가 둔해지기 때문에 담배는 피우지 않습니다. 맥주를 하도 맛보느라 속이 다 버려서 지금은 조금씩만 먹습니다."


마무리는 청소다. “맥주는 미생물과의 싸움입니다. 박멸에 가까울 만큼 청소를 해야 합니다. 제조과정에서 맥즙이 젖산균이나 초산균에 오염되면 맛이 시큼해져요.”   

출처: 세븐브로이 제공
청와대 호프 미팅에 만찬주로 오른 '강서맥주'와 '달서맥주'. . 세븐브로이 서울 지사가 있는 '강서구'에서 이름을 땄다. 오른쪽은 대구 '달서구'에서 이름을 딴 '달서맥주'. 윤진수 공장장은 "아직 지역 특산물로 제조하고 있진 않지만 앞으로는 지역 특산물로 맥주를 만들어 진정한 지역맥주로 거듭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혹독한 스승의 가르침


윤 공장장은 2003년부터 7년 동안 매튜 칼라한 브루마스터에게 맥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칼라한 브루마스터는 아일랜드 사람으로 독일에서 27년 동안 맥주만 만든 장인이었다. 김강삼 대표가 수제맥주 사업을 시작할 때 독일에서 직접 스카우트 했다.


칼라한 마스터는 혹독한 스승이었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고 위생관념이 철저했다. 윤 공장장은 6개월 동안 양조실에서 청소만 했다. 거친 밀대가 한달에 한개씩 닳아 없어질 정도였다.


“8개월째 접어들었을 때 맥주에 효모를 주입하다 통에서 맥주를 흘러넘치게 했어요. '빅스틱(Big stick)'이라 크게 소리치며 화내셨죠. ‘큰 몽둥이로 맞아야 한다’는 소리였어요. 그만큼 잘못했다는 뜻이었죠. 그날 만들었던 맥주는 모두 버렸습니다. 양조실에서 신는 신발을 신고 밖에 나갔다가 벽 보고 5시간 동안 서있던 적도 있어요. 4년째 됐을 때는 제가 맥주에 대해 다 안다고 자만했어요. 그때 스승님이 알아채고는 청소부터 다시 시킨 적도 있습니다. 아마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착각에 빠져 살았을 겁니다. 인생에서 그런 스승님을 만난 게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맥주 브루어는 여러 분야를 잘 알아야 한다. 맥주를 만들 때 화학·생물학·미생물학 지식이 필요하고, 제조 시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니 기계 설비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처음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수제맥주’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나요. 당시 광화문 영풍문고에 가보니 맥주에 관한 책이 딱 2권 나왔습니다. 하나는 술을 만드는 ‘양조학’ 전반에 관한 내용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기초상식 수준이었어요. 현장에서 독학하고 연구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조실에서 살다시피하며 손발에 주부습진을 달고 살았다. “목욕탕에 있다 나온 것처럼 손발이 쭈글쭈글해지는데, 집에 돌아와서 샤워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요. 승부사 기질이 있어서 ‘맥주 맛’에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수가 쌓이면 소비자를 우롱하는 거랑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제가 힘들던, 공장 설비에 문제가 있건 항상 맛있는 맥주를 먹길 원하니까요.”


2011년 공장을 지을 때는 식품·전기·배관·탱크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국내에서 제조 기계를 만들었다. “맥주와 효모가 지나가는 이음새에는 이물이 끼지 않도록 매끈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을 신경 썼어요. 맥주로 대한민국에 한 획을 긋고 싶었습니다.”  

출처: 세븐브로이 제공
세븐브로이가 2015년 대형마트에 유통하기 시작한 IPA와 임페리얼 IPA. IPA를 공장에서 생산해 대규모로 납품한 건 세븐브로이가 처음이다. 임페리얼IPA는 기존 IPA보다 홉을 더 많이 넣었고 알코올 도수도 강하다.

'비즈니스'로만 생각해선 안돼


수제맥주 붐이 일면서 수제맥줏집이나 제조회사를 창업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금 수제맥주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 과열됐다고 봅니다. 2006~2007년에 수제 맥줏집 폐점률이 40%에 달했어요. 계속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공부해 전문성을 길러야 합니다. 5년, 10년이 흐르면서 나태해지고 싶은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가 많아요. ‘비즈니스’로만 접근한다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세븐브로이에서도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강원도 횡성 공장에는 15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중소기업 특성상 대규모 공채를 할 순 없지만, 빈자리가 날 때마다 수시로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맥주 제조 설비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냉동기 또는 보일러 수리 자격증이 있거나 자동화 설비에 대한 이해가 높으면 좋다.


윤 공장장은 맥주 부루어의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이 직업은 기술직이기 때문에 정년도 없고 맘 먹으면 가업으로 만들 수도 있어요. 후배들에게 자기만의 펍이나 회사를 꿈꾸라고 말해요. 꿈이 있어야 배우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맥주 만드는 법을 배워 언제든지 나가도 괜찮아요. '세븐브로이 출신'이라 하면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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