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도 '엄지척' 8년간 매출 15배 뛴 한국의 화장품 회사

조회수 2020. 9. 24. 00:08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한국지형에 강하다' '선영아 사랑해'를 만든 여자가 만든 화장품
아이유가 쓰는 화장품으로 유명한 '아이소이'
유명 카피라이터 출신 이진민씨가 창업
미국 유기농 체인 홀푸드마켓 입점

가수 아이유가 쓴다고 해서 유명해진 화장품 ‘아이소이’.


2009년 설립된 직원수 80명의 이 회사는 지난해 3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중소 화장품 업체가 난립하는 가운데, 지난 8년간 매출이 약 15배 늘어나는 등 꾸준한 성장세다.


아이소이 창업자 이진민(54) 대표는 원래 화장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산이 많은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 "선영아 사랑해", "나야 나 톰보이" 같은 광고 카피를 쓴 사람이다. 지금 들어도 기억나는 유명 카피를 쏟아내던 그가 갑자기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출처: jobsN
천연 화장품 '아이소이' 이진민 대표
출처: jobsN,아이소이 제공
아이소이 팝업 스토어(좌), 아이소이 CF 광고(우)

제일기획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어떻게 카피라이터가 됐나


"1982년 이화여대 국문과에 입학해 부지런히 놀았어요. 직업을 알아보는데 저만의 가이드라인이 있었어요. '남녀차별이 없는 회사,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승부하는 곳,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 뭔가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기자, 광고 카피라이터로 좁혀지더군요.


작은 광고 회사에 당시 이화여대 국문과 이어령 교수님이 추천서를 써줬습니다. 7명 중 제가 뽑혔어요.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일본어 번역을 맡겼습니다. 카피라이터를 병행하며 1년 정도 그 회사에 다녔어요. "


-회사 생활은 어땠나


"대학을 1986년 졸업했습니다. 당시 거의 모든 회사의 구인 조건이 '병역 필'이었어요. 여자를 안 뽑겠다는 거죠. 작은 광고회사에서 인턴을 하다 선배 카피라이터 권유로 금강기획(현 이노션)에 지원해 합격했습니다. 현대그룹 광고 대행사인 금강기획에 다니면서 노조 부조합장으로 잠깐 활동했어요.


-이직은 어떻게 했나


"임신한 후배에게 상사가 전화기를 던지는 사건이 있었어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여직원들을 모아서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언론에 퍼뜨리겠다고 했어요. 주도적으로 나서서 불합리한 처우에 맞섰죠. 8년을 직장에 있었는데 차장 진급이 안됐어요. 한계를 느꼈습니다. 마침 제일기획 경력직 채용공고가 났고 지원하게 됐습니다. 1992년이었어요. "


-제일기획에서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다.


"밤샘 근무를 하다가 새벽에 출산할 정도로 일에 빠져 살았습니다. 30대 중반에 국내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어요. 카피라이터는 카피를 쓰지만 사실 전략을 짜는 사람이에요. 광고를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합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만들고 PD는 CF를 만들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스탭들을 데리고 기업에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겁니다. 광고 수주전에서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디렉터입니다. 1999년 우리은행, 강원랜드 광고를 수주했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런던 광고제에서 삼성카메라 '케녹스'(KENOX)로 금사자상을 탔어요. 아시아 최초였죠."


-제일기획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


"1992년 애니콜 광고 카피를 맡았어요. 당시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이 모토로라 83%, 애니콜 13%였습니다. 모토로라와 애니콜이 시장에서 경쟁해서 내가 애니콜을 이길 수 있게 한다면 훌륭한 '애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제일기획에서 잡은 애니콜 광고의 컨셉은 ‘언제 어디서나 고감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고감도라는 말을 당시 사람들이 잘 못알아들을거라고 생각했죠. 당시 휴대전화는 기지국이 많지 않아서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어요. 소비자들은 어디서나 잘 터지는 휴대전화를 원했습니다. 광고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초등학교때 배운 "한국은 3분의 2가 산악지형"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한국 지형에 강하다. 삼성 애니콜”이 이렇게 탄생했죠.


처음에는 제가 만든 카피를 저희 회사에서 마음에 안 들어했어요. '이렇게 광고 문구 안 쓸거면 사표를 내겠다'고 할 정도로 항의했어요. 삼성전자에는 '신문 중 경제지에만이라도 광고를 내겠다'며 밀어 붙였죠."


최초의 여성 포털 '마이클럽'으로 이직


-마이클럽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닷컴 바람이 불었을 때 저는 인터넷을 잘 몰랐습니다. 대학 독서 모임때 알게 된 윤웅진 대표가 1999년 말 '여성 전문 포털을 만들건데,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어요. 대학 시절 토론할 때, 여성권 신장을 외치며 싸움닭처럼 달려들던 제 모습을 기억하고 계셨나봐요.


제가 마이클럽에 합류하고 한국에서 서비스를 오픈한 지 4개월 만에 회원수 300만명을 확보했습니다. 마이클럽을 알리기 위해 '선영아 사랑해'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는데, 호응이 매우 컸어요."

출처: '마이클럽' 홈페이지, 조선 DB
마이클럽 포털 사이트(좌), 선영아 사랑해 티저광고(우)

-마이클럽을 그만 둔 이유는


"마이클럽은 당시 7대 포털(다음·라이코스·야후·네이버·네띠앙·파란)에 들었어요. 2001년 미국 월스트리트 출신의 CEO가 한국으로 왔습니다. 대뜸 저를 해고하더군요. 당시 일본 NHK에서 마이클럽의 성공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중이었는데 무력감이 컸어요. 마이클럽에서 일한 1년 반동안 거의 매일 3~4시간씩 자며 일했습니다.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고된 것보다 제가 데려온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퇴사 후 마케팅 컨설팅 회사를 차렸죠.


일에 대한 열정이 너무 컸어요. 대기업 대상 마케팅 컨설팅을 했어요. 삼성·현대 홈쇼핑·SK가 주 고객사였습니다. 현대 홈쇼핑에서 1주일에 2시간씩 4회 컨설팅하는 조건으로 3500만원을 받았어요. 도와주고 싶은 NGO는 돈 안 받고 컨설팅 해줬어요."


착한 천연 화장품 아이소이를 만들다.


이 대표는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던 시절, 독일 유기농 화장품 '로고나'(LOGONA)를 알게 됐다. 로고나는 100% 천연·유기농 원료로 화장품을 만든다. 평소 천연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던 이 대표는 로고나처럼 인체에 무해한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을 굳혔다. 틈틈이 화학 성분을 대체할 수 있는 천연 원료를 찾기 위해 유럽 각국을 돌아 다녔다.


이 대표가 2009년 세운 아이소이는 창업 7년 만인 지난해 연매출 330억원을 달성했다. 아이소이 대표 상품은 '불가리안 로즈 블레미쉬 케어 세럼'이다. 장미 3000송이에서 1㎖만 추출되는 '불가리안 로즈 오일'로 세럼을 만든다. 잡티를 없애줘 '흔적 세럼'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세럼은 중국 왕홍(중국 파워 블로거)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2016년엔 미국 최대 유기농 마트 체인인 '홀푸드 마켓'에도 입점했다. '홀푸드 마켓'은 제품의 안전성과 환경성을 심사하여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만 판매한다. 아이소이는 뉴욕을 포함한 33개 체인에 입점이 확정됬다.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국가들의 해외 유명 뷰티샵에도 진출했다.   

출처: 아이소이 제공
불가리안 로즈 오일 세럼
출처: 아이소이 제공
홀푸드 마켓에 입점한 아이소이 화장품

-화장품 회사 CEO가 된 계기가 있나


"대학 때 여드름으로 고생했어요.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랐는데 부작용이 있었어요. 환절기 때 진물이 나고 물세안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불가리안 천연 로즈오일이 들어있는 크림을 발라봤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더라고요. 화학 성분이 잔뜩 들어간 연고가 사람 피부에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언젠가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보자'고 생각은 했어요. 천연 재료만 섞는다고 화장품 역할을 할 수는 없어요. 화장품이 되려면 노하우가 필요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유기농 화장품 회사인 로고나를 알게 됐습니다. 로고나 측에 '철학을 훼손하지 않고 정직하게 팔겠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로고나를 들여오면서 10년간 화장품을 공부했어요. 화장품에 들어있는 화학성분이 해롭다는 걸 알게됬죠. 인체에 무해한 방부제를 개발해 2009년 아이소이를 창업했습니다."


-아이소이 창업 과정은


"자본금 5억원으로 시작했어요. 컨설팅으로 번 돈과 가족들 돈을 합쳐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화장품 회사에서 원료는 아주 중요해요. 아이소이를 창업하기 위해 로고나 연구소장 바일란트씨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토코페롤 아세테이트를 천연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어요. 토코페롤 아세테이트는 로션, 크림 등 유화 화장품에 첨가된 오일이 산소와 결합해 변질되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알코올은 나쁘지만 천연 발효 알코올은 피부에 좋아요. 아이소이는 'I am so intelligent'의 약자입니다. 패키지가 아닌 화장품 성분을 보는 똑똑한 소비자란 뜻이죠. 화해라는 앱이 만들어진 것도 제가 일정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화장품을 살 때 원료를 보는 소비자들이 많아졌어요. 흐뭇하죠."  

출처: V live 영상 캡처
가수 아이유는 광고 모델로 활동하지 않지만 눕방에서 아이소이를 추천했다
출처: 아이소이 제공
아이소이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유럽의 성분기준에서 높은 안전성을 검증 받았다

이 대표는 원래 창업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학창시절부터 여성과 관련된 일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이 대표는 초등학교 1학년 반장 선거에서 표를 가장 많이 받았지만 부반장이 됐다. ‘여자는 반장이 될 수 없다’는 학교 방침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당시 가슴에 단 부반장 명찰에서 '부'자를 지웠다. 어린 나이였지만 여자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로부터 40년 넘는 세월이 흘렀고, 이 대표는 여성들을 위한 제품을 만든다.


"초등학교 1학년 반장선거 후, 학기 끝날 때까지 '부'자를 지운 명찰을 달고 나녔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피해를 봤다면, 강해지세요. 여자라서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목소리를 내야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뀝니다."


글 jobsN 박성윤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