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서도 2시간씩 뛰어' 세계1등의 숨겨진 발

조회수 2020. 9. 23. 10: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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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마라토너 '봉달이' 이봉주의 레이스는 '현재 진행형'
국민 마라토너에서 방송인, 연사로 변신
스포츠 행정가로 한국육상에 기여하고파
마라톤 재단 목표로

한국 마라톤을 얘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고(故) 손기정 선생, 황영조, 그리고 이봉주. 손기정 선생과 황영조는 모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그러나 이봉주는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아쉽게 2위에 그쳤다.


올림픽 금메달을 놓친 그가 한국 마라톤의 '레전드' 반열에 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 1990년 데뷔한 그는 2009년 전국체전에서 은퇴할 때까지 19년간 마라톤 풀코스를 41번 완주했다. 그중 11번 우승했다. 아시안게임을 2연패(1998·2002년)했고 올림픽도 4회 연속 출전했다. 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며, 케냐가 이어오던 10년 연속 우승 행진에 제동을 걸었다. 2000년 도쿄 마라톤에서 그가 세운 한국 기록(2시간7분20초)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19년간 멈추지 않고 달린 것이다.


마라토너로서 최악의 신체 조건인 짝발(왼발 253.9㎜, 오른발 249.5㎜)에 평발이다. 그가 처음 마라톤화를 신었을 때 한국 최고의 마라토너 탄생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집념과 끈기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국민들은 그의 모습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은퇴 후에도 그는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방송인, 연사,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이봉주(48)를 잡스엔(jobsN)이 만났다.   

출처: 본인제공(좌), MBC 무릎팍도사 캡처(우)
고된 훈련 중 평발에 짝발인 이봉주 마라토너는 자주 발톱이 뽑혔다.
출처: jobsN
푸근한 미소로 인터뷰에 응하는 이봉주 마라토너

-은퇴 후 어떻게 지냈나.

“전국적으로 약 400개의 마라톤 대회가 열립니다. 주말마다 서울, 지방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초청을 받습니다. 선수 전성기 때는 초청료로 1억원도 넘게 받은 적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에 훨씬 못 미칩니다. MBC '무한도전', 채널A '불멸의 국가대표', SBS '백년손님 자기야'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습니다. 대한육상연맹 홍보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가 있나

“현재 '스포츠와 사람들 매니지먼트'에 소속해 있어요. 선수시절부터 대표와 친분이 있었습니다. 2009년 10월 은퇴 후 계약했죠. 방송 스케줄을 관리해줘요. 무한도전 스케줄이 잡혔을 때, 못·친·소(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주제를 처음에 몰랐습니다. 고민 중에 두 아들에게 물어봤어요. 무조건 나가라고 했습니다. 무한도전은 아이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에요. '백년손님 자기야'는 전직 씨름선수 이만기(55)씨와의 친분으로 출연했습니다. '불멸의 국가대표'에서 같이 방송한 적이 있어요. 선거 준비로 이만기씨가 하차하고 제가 대신 들어간거죠.”

출처: 방송 캡쳐
MBC 무한도전 (좌)/ SBS 백년손님 자기야(중)/채널A 불멸의 국가대표(우) 예능에 출연했던 이봉주 마라토너

-예능이 어렵지 않았나

“예능에서 망가지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국민 마라토너로서 대외적인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시청자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출연했습니다. 아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요."


-은퇴 후 감독이나 코치 제안은 없었나

"2009년 말 삼성전자 오인환 감독이 코치직을 제안했습니다. 오인환 감독님은 코오롱 육상팀 때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분입니다. 하지만 거절했어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코치로 일할 경우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전지훈련은 짧게는 1~2개월, 동계훈련은 보통 3개월까지 합숙을 합니다. 소속팀이었던 삼성전자에 남아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다른 계획이라면

"한국에 선수 출신 행정가가 없습니다. 스포츠 전문 행정가로서 어려운 선수들을 돕고 싶습니다. 저도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었어요. 불우한 환경으로 주어진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미국, 유럽은 마라톤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성실하게 마라톤을 해왔던 것처럼 본격적으로 스포츠 행정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


-마라톤은 어떻게 시작했나

"초등학생 때 손기정 선생님의 다큐 멘터리를 봤어요. 마라톤으로 세계를 제패하신 분이죠. 가슴이 뛰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육상을 하겠다고 하자 말리셨어요. 형이 레슬링을 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도중에 그만뒀거든요. 형을 생각해 더욱 간절하게 운동을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나

“44번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 41번 완주했어요. 훈련 때 뛴 거리를 합치면 20년의 선수생활 동안 18만823.6㎞를 달렸습니다. 지구 네 바퀴 반을 뛴 셈이죠(한바퀴 4만km).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단연 2001년 보스턴 마라톤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상 치르고 참가한 대회입니다. 51년 만에 한국 선수가 우승했고, 독식했던 케냐 선수들의 10연패를 저지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습니다. 제 실력보다 아버님이 도와주신 것 같아요. 또 하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초 차이로 은메달을 땄을 때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죠.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은 국내 대회에서 관중들이 가장 많이 왔던 대회에요. 금메달을 땄을 때 관중들의 환호성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출처: 조선일보 DB
도쿄 국제 마라톤 한국 신기록 수립(좌)/후쿠오카 마라톤 대회 우승(중)/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우)
출처: 본인 제공
이봉주 마라토너 인생을 상징하는 트로피와 메달들

-아쉬운 대회가 있다면

“1992년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처음으로 기권했습니다. 동아마라톤 대회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시합 한 달 전에 일본에서 열린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기록이 잘 나오자 욕심이 앞섰던 것 같아요. 무리하게 훈련을 하다 무릎 부상으로 기권했습니다. 그 후 6개월간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나

“수영, 자전거 타기 등 다른 운동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마라톤에서 잠시 벗어나 제 페이스를 찾았죠.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뛰면 잡념이 없어져요. 하루에 30~40km를 훈련으로 뛰었습니다. 뛰는 걸로 스트레스를 해소한 셈이죠.”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마라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타협은 없어요. 선수생활 20년 동안 거르지 않고,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을 뛰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식이요법입니다. 식이요법은 몸 안에 쌓인 지방을 제거하고, 에너지원이 되는 탄수화물을 축적하는 과정이에요. 일주일 전부터 식이요법에 들어갑니다. 첫날 두 시간 새벽 훈련을 끝내고 간단한 식사를 해요. 오전에 1만m를 뛰고 점심으로 삶은 계란 2~3개와 쇠고기 500g을 무염 상태로 먹습니다. 똑같은 식사를 5일 전 오후까지 일곱 끼를 연속으로 먹어요.” 

출처: 본인 제공
삼성전자 소속 선수시절 훈련중인 이봉주 마라토너

-마라톤을 시작하고 후회한 적은 없나. 마라토너가 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부모님께 죄송해요. 마라톤을 선택한 저를 늘 안쓰러워하셨습니다. 마라토너가 되지 않았다면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지내지 않았을까요? 평소에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목장주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드네요."


-황영조, 이봉주를 이을 대형 마라토너가 20년 넘게 나오지 않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나.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대한육상연맹에서 논의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후배 마라톤 선수들이 많지 않아요. 마라톤은 극기의 스포츠에요. 본인 스스로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듭니다. 제가 마라톤을 할 때도 환경은 좋지 않았어요. 요즘 선수들은 참고 이겨내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마라톤 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마라톤을 하고 싶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습니다. 방송에 출연하는 가장 큰 이유도 비인기 스포츠인 마라톤을 홍보하고 싶어서입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부터 매달 받는 체육 연금은 약 100만원 정도입니다. 작은 액수지만 연금의 일부는 꾸준히 기부하고 있습니다." 

출처: jobsN
이봉주 마라토너 친필싸인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또래보다 늦게 운동을 시작했어요. 평발에 짝발로 최악의 신체조건이었습니다. 100m를 14초 대로 끊었기 때문에, 육상 선수로서 스피드도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느린 스피드를 극복하기 위해 신혼여행에 가서도 새벽에 일어나 2시간씩 달렸습니다. ‘무언가 하고 싶다’ 꿈이 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세요. 마라톤 경기에서 승자는 우승자가 아닌, 완주자입니다. 인생도 마라톤과 같다고 생각해요. "


글 jobsN 박성윤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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