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성추행 이긴 이 대리 성범죄 전문 변호사로

조회수 2020. 9. 22. 15: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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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야 할 사건은 반드시 이기고, 져야 할 사건은 잘 진다
12년 차 삼성맨→로스쿨 입학→변호사
2014년 이은의 법률사무소 개업
"전문분야를 찾아서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최초로 삼성과 싸워 이긴 이 대리'


2000년대 후반, 삼성전기 영업팀 이 대리는 회사와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그녀는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인사팀에 알렸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회사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4년 동안 소송을 진행했다.


2009년 법원은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 기쁘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긴 싸움에 지쳐 있었다. 다만 ‘변호사’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2011년 3월, 37살 늦은 나이로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3년 동안 공부만 했다. 2014년 제3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그해 10월 법률 사무소를 개업했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을 변호하고 있다. 삼성과 법정 싸움을 벌인 뒤 변호사로 변신한 주인공은 바로 이은의(43)씨다.

일 잘하는 삼성전기 해외영업부 이대리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했다. 1998년, 삼성 자동차 부품 홍보직으로 입사했다. IMF가 터진 직후였다. 구조조정으로 직무와는 전혀 상관 없는일을 했다. 현장 실습이라는 명분 아래 생산라인에서 일했다.1999년, 삼성전기로 발령받았다. 전공을 살려 남미 영업을 맡았다. 일이 적성에 맞았다. 영업에 자부심도 느꼈다. 발령받은 지 4년 만인, 2003년에 대리로 승진했다. 2005년, 그녀는 2년 뒤에 과장으로 승진 예정이었다. 하지만 승진은 대리까지였다.

출처: 본인 제공
이은의 변호사

-무슨 일이 있었나요.

“직장 내 성희롱에 시달렸습니다. 2003년부터였어요. 부서장이 지나다니면서 목과 머리카락을 만지더군요. 등에 손을 올려 속옷 끈을 만지기도 했습니다. 손을 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죠. 어느 날은 상무와 출장을 갔어요. 그 상사도 동행했습니다. 그때 ‘상무님 잘 모시라’며 제 엉덩이를 툭 치기도 했죠. 다음 날, 술자리에서 블루스를 추자는 것을 거절했어요. 술자리가 끝난 뒤 저를 부르더군요. ‘분위기를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야단쳤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죠.”


-바로 소송을 진행했나요.

“2005년 6월, 인사부에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가해자가 퇴사해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상사는 퇴사 후 계열사로 이직한 상태였어요. 제가 일하는 사무실 바로 아래층에서 근무했습니다. 저는 피해 사실을 알리고 7개월 동안 대기 발령 상태였죠. 2006년,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기획팀으로 발령 받았습니다.


결국 인권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어요. 1년 6개월 만에 ‘재발 방지 대책 수립 권고’를 내리더군요. 회사와 가해자를 대상으로 민사소송도 진행했습니다. 삼성은 인권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하더군요. 긴 싸움의 시작이었어요.”


-회사는 계속 다녔나요.

“네, 기획팀 이후에도 직무와 상관없는 인사팀 사회봉사단으로 발령이 났지만 계속 다녔어요. 밥을 먹으러 구내식당을 가면 사람들 시선이 느껴져요. 하지만 다 알려진 일이라 개의치 않았어요.”  

승소 후 사표, 그리고 로스쿨 입학

이씨는 사건을 알리기 위해 발로 뛰었다. 직접 언론을 찾아가 인터뷰도 했다. 블로그에도 진행 상황을 꾸준히 올렸다. 2009년, 행정소송 판결이 났다. 승소했다. 그다음 해 민사소송도 이겼다. 만 4년을 싸웠다. 많이 지쳐 있었다. 2010년 10월, 사표를 썼다.


-왜 그만뒀나요.

“나와 남을 위해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변호사를 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았어요. 2010년 4월부터 로스쿨 입학 준비를 했습니다. 37살 늦은 나이라서 서울권 합격은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방으로 지원했습니다. 토익과 리트(LEET·법학적성시험)는 문제집을 사서 퇴근 후에 풀었습니다. 면접은 스터디 모임을 통해 준비했죠. 시사상식을 공부하거나, 모의 면접을 봤습니다.”


-입학 준비가 어렵지는 않았나요.

“공부는 누구에게나 어렵죠.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했던 시간이 면접에 도움이 됐습니다. 합격해서 2011년 3월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하고 나서도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기본서를 폈는데, 다 외계어 같았습니다. 단어가 너무 생소했습니다. 하루에 10장도 못 읽었죠.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이해할 때 까지 계속 읽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본서에 익숙해지는 시간만 1년이 걸렸습니다. 밥 먹는 시간과 주말을 빼고, 매일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공부만 했습니다.”

변호사 시험 합격 후 법률사무소 개업

2014년 1월, 변호사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합격. 6개월 동안 실무수습을 거쳤다. 그해 10월, 서울에 ‘이은의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개업 후, 주로 직장 내 성희롱을 포함한 성폭력 사건을 맡았다. 매월 20건 정도의 상담이 들어왔다. “저 역시 긴 법정 다툼을 경험한 사내 성희롱 피해자였어요.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피해자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봤습니다. 또, 재판에서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죠.”


-맡은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난 7월에 진행한 박유천씨에 대한 두 번째 고소 여성의 사건입니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송씨가 성폭행 혐의로 박유천씨를 고소했어요. 그때 박씨는 강제성이 없다며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송씨를 무고죄로 고소했어요. 저는 송씨를 변호했습니다. 사실 사건보다 과정이 기억에 남아요. 사건을 맡고 나서 의뢰인이 구속영장 받은 적이 처음이었습니다. 국민참여 재판도 처음이었죠. 변호사로서 많은 것을 경험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재판을 아침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진행했어요. 다행히 결과가 좋았습니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냈습니다. 재판부도 송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항소심이 남아있지만 의뢰인은 무고죄 혐의를 거의 벗은 상태라고 할 수 있죠.”


1심 재판을 마쳤지만 검찰이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심 첫 공판은 오는 9월 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다.


-가장 힘들었는 때는 언제 인가요.

“강간과 준강간 사이에 사각지대에 있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 대부분이 가해자가 상습범인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볼 때는 명확하게 성폭력이죠. 하지만 법정에서는 '폭력정도가 애매해 강간으로 보기에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게 무죄 판결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건을 맡을 때 힘듭니다."

출처: 본인 제공
이은의 변호사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겨야 할 사건은 반드시 이기고, 져야 할 사건은 잘 진다.' 저의 신념을 지키는 변호사가 될 겁니다. 잘 진다는 의미는 당사자가 판결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하 는거죠. 저뿐 아니라 모든 변호사가 바라봐야 할 목표 같습니다.”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로스쿨은 10년 공부할 것을 3년 안에 공부하는 곳입니다. 그 3년을 온전히 공부만 하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입학 동기가 뚜렷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듭니다. 또한, 라이센스 취득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매년 1000명 이상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요. 그 속에서 새로운 경쟁을 해야하죠.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찾아서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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