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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에 시작해 47년..정년없이 일할 수 있는 기술은?

조회수 2020. 9. 22. 14: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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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그의 직업은?
대한민국 시계 명장 1호
0.1mm 부품을 다루는 정교한 직업
시계 기술 아카데미 설립이 목표

“선생님, 꼭 살려주세요.”

“네, 살리겠습니다.”


시계를 맡기러 온 손님과 수리공의 대화. 손님은 마치 시계에 생명이 있는 듯 말한다. 이에 시계 수리공은 결의에 찬 의사처럼 살리겠다고 대답한다. 지난 47년간 고치지 못한 시계가 없다는 이 사람. 바로 대한민국 시계 명장 1호 장성원(64)씨다.

수천원짜리 저렴한 시계부터 억대 고가품까지 그가 고쳐보지 못한 시계는 없다. 그중 제일 고가는 5억원 짜리 스위스 파텍 필립(Patek Philippe). 최고의 시계 제조국 스위스가 자랑하는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복잡 기능)인 투르비옹(중력으로 생기는 오차를 조정하는 기능), 퍼패추얼 캘린더(큰달·작은달·윤달을 계산해 날짜를 표시하는 기능), 미닛 리피터(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기능)가 모두 들어있는 시계다.


시계에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중 하나를 추가하면 가격이 최소 5000만원 이상 올라간다고 한다. 복잡하고 정교해서 제조사에서만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계가 장 명장 손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독학으로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모두 터득했다는 그는 "컴플리케이션 제품 분해·조립은 물론 부품까지 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시계 명장은 모두 6명. 그 가운데 최초로 시계 명장 칭호를 받은 그는 50년 가까이 시계를 고쳐온 장인이다. 

17살 청년 생업에 뛰어들다

서울에 살던 17살 청년 장성원은 아버지 사업실패로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이었지만 무작정 생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중고시계 장사를 하던 아버지 후배를 따라다니며 일을 했다. 시계방을 돌아다니며 헌 시곗줄을 사는 것이 그의 첫 일이었다.

출처: EBS 방송 캡처
청년 장성원

-지금 하는 시계조립일은 아니었네요.

“네, 그러나 그때 관심을 가졌습니다. 시계방에서 사람들이 시계 수리 일 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꼈어요. 헌 시계부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서 모아온 부품들을 조립하고 다시 풀기를 반복했습니다. 밤새 시간 가는 줄 몰랐죠.”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나요.

“배울 시간이 없었습니다. 낮에는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혼자 조립하다가 막히면 지인이나 기술 학원을 통해 구한 시계 수리, 부품제작 관련 책을 보면서 해결했어요. 하루에 자는 시간과 돈버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직 시계 조립과 분해만 했어요. 셀 수 없이 했죠.


그러다 더 알고 싶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예 시계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일을 도우며 어깨너머로는 기술을 터득했어요. 시계 기술은 기술자끼리도 공유하지 않습니다. 터득한 기술과 노하우가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시계 명장 1호' 명예를 얻고 돈을 잃다

18살에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는 기술이 부족해 라이터에 기름을 넣고 라이터 돌을 가는 점포를 차렸다. 일하면서 틈틈이 시계 수리 기술을 익혔다. 어느 정도 기술을 익힌 장 명장은 점포를 접고 시계방이 즐비한 남대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대문 시계 집합상가에선 수리공들이 시계 유리 세공, 부품 제작, 시계 조립 등 파트를 나눠 일을 한다. 그는 부품제작 담당으로 입점했다.


거기서 10년 가까이 시계를 수리하고 부품을 만들어 실력을 쌓았다. 1979년엔 기능경기대회 시계 수리 부문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계 수리 기술자로 인정받고 전국 기능경기대회, 지방 경기대회 등에서 심사위원도 맡았다. 집합상가에서 나와 자신의 점포도 차렸다.


장사가 잘 돼서 1992년엔 뉴코아 백화점에 입점도 했다. 1996년 말까지 전국 뉴코아에 총 5개 점포를 열었다. 5개 가게를 운영한지 얼마 안돼 그는 1997년, 대한민국 시계 수리 부문 최초로 명장에 선정됐다. 

출처: ebs 방송 캡처
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 수상한 장성원씨

-명장 선정기준이 무엇인가요.

“시계 수리 기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산업인력공단과 고용노동부에서 정한 20년 이상 현장 경험도 필요합니다. 품질관리, 후배양성 등에 관한 이력으로 심사가 이뤄지죠. 보유하고 있는 기술로 시제품을 만들어 제출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직접 만든 수리 공구 몇 점 함께 제출했어요.”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날입니다. 한 우물 만파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대견했죠. 그런데 하필 그날 뉴코아 백화점이 부도가 났습니다. 입점해 있던 5곳 모두 철거했습니다. 직원 30명도 모두 정리했어요. 명예를 얻고 돈을 잃었죠. 두 달 동안 술만 마셨습니다.”

시계 수리공은 평생 공부하는 직업

모든 걸 잃고 술만 마시던 장 명장은 두 달 뒤 다시 남대문 집합상가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오직 시계에만 집중했죠." 추락하던 그를 다시 끌어 올린 건 역시 기술이었다. "2001년엔 동서울대학교에서 시계 주얼리과 겸임교수직을 제안했습니다. 5년 동안 학생들도 가르쳤습니다.” 점포나 돈과 달리 체득한 기술은 사라지지도 배신하지도 않았다.


2003년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다시 가게를 얻을 수 있었다. 명장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고객도 늘었다. 2009년엔 지금 있는 압구정으로 가게를 확장했다. 압구정점에서는 시계 수리를, 남대문점에선 시계 부품을 만든다.

출처: EBS 방송 캡처, JobsN
지름 0.9mm의 부품을 시계 배터리, 성냥개비와 비교한 모습. 장 명장은 0.9mm는 크기가 큰 편이라고 말한다. 작업 할 땐, 0.1mm 부품까지 다루기 때문이다.

“아직도 새로운 시계를 만나면 설렙니다. 하지만 아무리 처음 보는 시계여도 고칠 수 있어야 하죠. 계속 공부할 수밖에 없어요. 3대 기능까지 독학했지만 아직도 배우는 중입니다.”


직접 시계를 제작하기도 한다. 10여년전에 ‘제우스’란 브랜드도 출시도 했다. 금시계였다. 명품과 같은 퀄리티지만 가격은 저렴했다. “지금은 금값이 비싸 제작하지 않아요. 대신 단골 손님한테 의뢰가 들어오면 주문 제작을 합니다. 스위스에서 시계 공부를 마친 큰아들과 함께 시계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시계 기술 아카데미 설립이 목표

오래 쌓은 기술과 노하우로 작은아들과 함께 시계방을 운영한다. 스위스 3대 기능을 독학한 실력으로 브랜드숍보다 저렴한 가격에 시계를 수리한다. “한 손님은 '브랜드숍에 문의했더니 견적이 800만원이 나왔다'며 제게 가져왔습니다. 시계를 열어보니 250만원 정도면 고칠 수 있겠더군요. 그 뒤로는 단골입니다.”

출처: jobsN
시계방 운영을 함께하고 있는 둘째 아들과 장성원 명장

요즘엔 기계식 시계보다 훨씬 정확하고 가격도 저렴한 전자식 시계를 많이 이용한다. 그럼에도 장성원 명장은 시계 수리공은 전망이 좋은 직업이라 말한다. “시계 수리는 일단 정년이 없습니다. 이 나이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죠. 또, 아무리 전자식 시계가 많아져도 기계식 시계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값이 비싸도 기계식 시계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리공도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손재주가 있다면 도전해볼 만 합니다.”


월수입은 그때그때 다르다. 수리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시계거나 고가의 제품들은 수리비도 비싸다. 정교한 시계일수록 수리 기간도 오래 걸리고 시중에 없는 부품들은 장 명장이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남에 가게를 내고 운영하고 자식을 유학 보낼 정도면 상당한 수입이 난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시계 기술을 전수하는 작은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계 명장들은 남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기술을 갖고 있어요. 기술 전수 없이 죽으면 자신을 끝으로 그 기술은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작은 아카데미를 만들어 제자들에게 제 기술을 전수하고 싶습니다. 시계는 소우주입니다. 작은 우주를 다루는 이 직업이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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