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한 아빠 2살, 7살 딸과 10개월 여행 다녀보니

조회수 2020. 9. 22. 14: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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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남자', '용감한 아빠'?..10개월 육아휴직하며 여행다닌 아빠
10개월 육아휴직하며 가족여행
KT스카이라이프 제휴마케팅부 허준성 과장
남성 육아휴직 A to Z

육아휴직은 남녀 근로자 모두 차별없이 누릴 법적 권리다. 하지만 상당수 아빠들은 상사나 동료 눈치 탓에 육아휴직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한다. 고용노동부 조사를 보면 2016년 육아휴직자는 8만9795명, 이중 남성 육아휴직자는 7616명(8.5%)이었다. 2001년 남성 육아휴직제도가 시작된 이후 남성 육아휴직자는 점점 늘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부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조사에서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중은 노르웨이 21.2%, 스웨덴 32%, 독일 28%다. 한국보다 3배 가량 높다.


KT스카이라이프 제휴마케팅부 과장인 허준성(41)씨는 2016년 6월 11일부터 2017년 3월 31일까지 10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했다. 그는 육아휴직 기간에 아내, 두딸과 국내 캠핑여행을 하고 호주도 다녀왔다. KBS 인간극장에서 허씨의 이색적인 육아휴직기를 일주일 동안 방영하기도 했다.

출처: 허준성씨 제공
큰딸 허윤정양과 함께.

남성 육아휴직에 긍정적인 회사 문화도 도왔다. KT스카이라이프는 대기업 KT의 자회사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서 육아휴직제도가 잘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남성 직원 2명이 육아휴직 중이에요. 한 분은 사내커플이라 여자 직원은 휴직이 끝나 출근하고,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에 들어갔어요. 다른 한 분은 입사 2년차에 육아휴직 중입니다.”


육아휴직자는 여러 걱정에 시달린다. 당장 소득이 줄고 ‘집에서 논다’고 보는 주위의 삐딱한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처음 해보는 육아는 만만치 않다. 복직 후 업무에 적응해야 하고, 승진에서 밀릴 수도 있다. 허씨가 성공적으로 육아휴직을 한 비법, 육아휴직 후 바뀐 점은 무엇인지를 알아봤다. 

출처: 허준성씨 제공
(왼쪽) 아내와 함께, (오른쪽) 큰딸과 함께.

육아휴직, 왜 시작했나 

-육아휴직을 마음 먹은 계기는 무엇입니까?

“결혼 전부터 아내와 여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결혼 후에도 2주에 한번씩 캠핑을 갔을만큼 매니아였죠. 아내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았어요. 큰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앞으로 같이 보낼 시간이 없을텐데, 늦기 전에 가족이 함께 보낼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또 둘째 딸을 낳은지 얼마 안됐을 때라 아내와 육아 부담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만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다면 최대 1년 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성별은 상관없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전 미리 동료에게 알리는 게 좋다. 이후 육아휴직을 하는 이유, 육아휴직 기간을 적은 육아휴직 신청서를 제출한다. 본부장, 인사 팀장 등 관련 부서에서 결재를 받으면 회사에서 근로자에게 ‘육아휴직확인서’를 준다. 육아휴직이 결정나면 근로자는 앞으로 업무를 맡은 동료 또는 대체인력에게 인수인계를 한다.


“팀원들이 제 업무를 나눴습니다. 거래처 담당자에게 말했더니 마침 담당자도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어서 이해를 구하기 쉬웠어요.”

출처: 허준성씨 제공

-상사나 동료 눈치가 보이진 않았나요.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이미 육아휴직 후 복귀한 남자직원들이 있어 부담이 덜했습니다. 인수인계 기간을 생각해서 2개월 전 미리 말했는데 오히려 회사에서 ‘빨리 다녀와도 된다’고 했어요."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었을 텐데요.

“당연히 걱정했습니다. 실제 저는 그대로 과장인데, 차장으로 승진한 동년배가 있습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써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승진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런 고민이나 걱정보다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생각했습니다. 승진은 앞으로도 할 수 있지만 7살 딸아이의 1년은 다시 올 수 없으니까요.” 

출처: 허준성씨 제공

육아휴직, 어떻게 보냈나 

허씨는 6월11일 육아휴직을 시작했고 일주일 뒤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2달 반 동안 예산·강진·완도·여수·하동·횡성·삼척·태백·포천을 돌아다녔다. 항공 마일리지로 일본에 한달, 호주에 두달 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딸에게 학원과 학교가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육아휴직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인 문제다. 월급이 반토막 나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외벌이 가정에서 육아휴직을 꿈도 꾸지 못하는 이유다. 허씨도 외벌이 가정이다. 어떻게 육아휴직에, 여행까지 가능했을까.


허씨는 육아휴직 첫 3개월 동안 월급의 50%를 받았다. 회사에서 주는 급여와 별도로 고용노동부에서 육아휴직급여도 받았다.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하면 한달에 최대 1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육아휴직급여는 근로자가 받는 임금에 따라 다르다.


허씨는 100만원을 받았는데 이 금액을 한꺼번에 받진 않았다. 6월 이전 육아휴직자는 85%, 6월 이후 육아휴직자는 75%만 먼저 받을 수 있다. 나머지 25%는 복직 후 6개월이 지났을 때 한번에 통장에 들어온다. 허씨는 6월 이후 휴직했기 때문에 한달에 75만원을 받았다. 나머지 25%에 해당하는 250만원은 10월 이후 받을 예정이다. 

출처: KBS 2TV 인간극장 영상 캡처
KBS 2TV 인간극장 '달려라 우리집'에 출연한 모습.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했나요?

“육아휴직 전에는 한달 생활비가 300만원 정도 들었어요. 여행하면서 오히려 생활비가 줄었습니다. 큰딸 어린이집을 끊고 방송·인터넷도 정지했어요. 통신비는 가장 싼 요금제로 바꿨습니다. 식비는 현지시장이나 마트를 이용했어요. 가격이 싸고 신선한 현지 식재료를 많이 먹었습니다. 한달에 생활비를 150만~200만원 정도 쓴 것 같습니다.”


캠핑카는 3년전 3000만원을 주고 산 중고품이다. "중고 캠핑카 가격도 다양합니다. 9년 전 결혼할 때 샀던 1000만원짜리 캠핑카를 잘 쓰다 아이들이 크면서 좋은 것으로 바꿨습니다."


-해외여행은 어떻게 다녀왔나요?

“일반적인 육아휴직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조심스럽습니다. 일본·호주 여행은 항공사 마일리지로 다녀왔습니다. 아내와 여행을 많이 다니기도 했지만 항공사 마일리지를 주는 신용카드를 주로 이용했어요. 당시 호주는 네명이서 왕복으로 약 20만점이 들었어요. 어른 2명에 첫째는 만12살 이하이니 금액이 75%이고, 둘째는 24개월 미만이라 티켓이 공짜였습니다. 호주에서는 친구 집에서 지냈습니다.”  

출처: 허준성씨 제공
허준성씨 가족이 지낸 캠핑카. 허씨는 캠핑 매니아다. 캠핑을 다니며 떠올린 아이디어를 업무에 활용한 적도 있다. 캠핑을 다니면서 TV를 볼 수 있는 '휴대용 안테나'를 허씨가 회사에 제안했다. "기존 휴대용 안테나의 단점을 보완해 개발을 제안했습니다. 캠핑 매니아 2명중 1명은 이 안테나를 갖고 있을 거예요."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지내보니 어땠습니까.

“큰딸이 마냥 어린줄 알았는데 많이 컸더라구요. 호주 멜버른에 ‘12사도 바위’라는 유명한 지형이 있습니다. 머물렀던 곳에서 차를 타고 5시간 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그날따라 날씨도 흐리고 큰딸이 피곤한 것 같아 ‘힘들지 않냐’고 물었어요. 그때 아이가 ‘아빠가 보고 싶은 거니까 참을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육아휴직’이라면서 제 욕심만 채운 것 같아 가슴이 쿵 내려 앉았어요. 그 이후부터는 아이에게 먼저 묻고 아이가 하고 싶은 것 위주로 했습니다.


아이에게 ‘아빠’의 자리가 조금씩 커지는 게 보였어요. 아이들은 사람을 그릴때 애착관계가 큰 사람이나 사물의 크기를 크게 그립니다. 육아휴직 전에는 보통 엄마를 가장 크게 그리고 그뒤에 자신을, 그리고 동생을 그렸습니다. 저는 없었어요. 그런데 함께 한달을 보냈을 무렵부터 그림에서 제가 나타났습니다. 점점 크기가 커지더니 아빠가가 엄마보다 커질 때도 있었습니다. ‘뭐가 대수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알겁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요.”


-’육아휴직을 해보니 이제야 알겠다’ 싶은 점이 있나요?

“이전에는 아내가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힘들어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이가 잠 때문에 칭얼대고, 아침밥을 먹기 싫어했거든요. 그럴 때마다 ‘아이가 잘 먹는 걸 만들면 되지’ 또는 ‘더 일찍 깨우면 되지’ 생각했습니다. 막상해보니 맘처럼 안됐어요. 아침에 아이가 힘들어하면 짠하니까 억지로 못깨우겠더라구요. 원래 분홍색을 좋아해서 ‘분홍색 치마 입을래’하면 그날따라 싫다고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해줘도 '입맛 없다'고 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출처: 허준성씨 제공
큰딸의 그림일기.

여행하는 동안 큰딸이 그림일기를 쓸 때 허씨는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최근 아이의 그림일기와 블로그 글을 묶어 ‘흥미롭다 호주’라는 책을 냈다.


허씨는 2월부터 복직을 준비했다. 복직을 신청할 땐 따로 신청서를 내지 않고 인사팀에만 알리면 된다. 집에 머무르며 아내와 육아를 분담했다. 큰딸의 손을 잡고 입학식에도 참석했다. “아이의 입학식에는 꼭 가보세요. 그 벅차오르는 감정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육아휴직, 무엇을 바뀌었나 

-업무에 적응하기 어렵지는 않았나요

“‘오랫동안 쉬었는데 잘할 수 있을까’ 겁이 많이 났습니다. 일주일 여름휴가만 다녀와도 일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몸이 기억한다'고 할까요, 한번 해본 일을 다시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팀원들의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어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한 가정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육아휴직을 해보니 회사와 내게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제 성격이 변했습니다. 이전에 저를 스스로 ‘자발적 왕따’라고 표현했어요. ‘내가 할일만 한다’ 생각했고 소심한 면도 있었습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아빠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육아는 부모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든 통장에 돈은 다시 쌓이고, 진급 기회는 옵니다. 아이와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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