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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매달 60만원 지원 받는 24세의 직업은?

조회수 2020. 9. 22. 11: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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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만 꾸준히 간 게 성공의 지름길
국제기능올림픽 화훼장식 부문 은메달리스트
상금 5600만원, 관련 직종서 일하면 700만원 연금
2017 성공한 숙련기술인 홍보대사로도 선정

2015년 스물두 살 나이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화훼장식 부문에서 은메달을 딴 가현정(24)씨.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용접, 냉동기술, 헤어디자인 등 51개 직업의 기술 실력을 겨루는 국제 대회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대회에는 만 17세부터 22세 이하 젊은이만 출전할 수 있다. 국가대표로서 인생에 딱 한 번 얻을 수 있는 올림픽 출전권. 목에 메달을 걸고 돌아올 경우 가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매해 ‘계속종사장려금’이라는 걸 받는다. 단 해당 분야에서 계속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가씨는 올해 716만원의 장려금을 탄다. 앞으로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4억원에 달하는 연금을 받는 셈이다. 

출처: jobsN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화훼장식 부문에서 은메달을 딴 가현정씨.

초등학생 때 취미로 시작한 꽃꽂이, 삶의 목표가 되다

가씨가 꽃꽂이를 시작한 건 순전히 어머니의 추천 때문이었다. 가씨는 유년시절부터 미술을 잘 했다. 가씨의 어머니는 딸의 재능을 꿰뚫어 봤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이미 널렸다고 판단했다. 당시 꽃집에서 근무했던 어머니는 딸에게 일단 꽃꽂이를 취미로 시켜 보기로 했다. 학원에 보내 가르쳐보자 취미에 그칠 수준이 아니었다. 지속적인 교육 끝에 가씨는 성인도 따기 힘들다는 ‘화훼장식 기능사’ 자격증을 고등학생 때 땄다.


-일찍이 전공 분야를 확정해서 준비를 착실히 했던데


“친구들처럼 수능 성적에 등 떠밀려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화훼 디자인 전공을 목표로 삼고 대학을 정했다. 서울에도 좋은 학교가 많았지만 대전이 고향이어서 충청도 지역 학교를 목표로 했다.


입시 가산점을 받기 위해 2009년에 국가자격증인 ‘화훼장식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고1 때부터 이미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대입 준비를 한 것이다. 필기시험부터 실기 준비까지 온 열정을 쏟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아쉬운 점이 친구들과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노는 걸 포기하고 자격증 준비에 집중했기 때문에 단번에 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가현정씨 본인 제공
주변 친구들과 노는 대신 미래를 위해 시간을 투자했다는 가현정씨. 그는 언제나 꽃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가고 싶던 대학에 들어가서 과 미팅 한 번 제대로 못해 봤다던데


“20살이 되고 본격적으로 민간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대회 준비를 위해 고등학생 때보다 더 많은 절제력과 정신력이 필요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과 MT, 과 미팅 한 번 제대로 참여해본 적이 없다. 계속 대회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쯤 되니 민간 협회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상을 받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국가대표 ‘10시간 훈련’부터 은메달 거머쥐기까지

가씨는 2014년 6개 이상의 민간 대회에서 1·2·3등을 휩쓸었다. 자신감이 붙자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출전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최하는 지방대회에서 3등 안에 들면 전국대회 출전권이 주어진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2년에 한 번 치러진다. 올림픽 전 2년간 치러진 전국대회에서 1·2등을 차지한 4명의 선수가 선발전을 거친다. 그중 단 1명만 국가대표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한다.


-국가대표 훈련 과정도 혹독했다 하던데


“말로만 듣던 10시간 훈련은 정말 혹독했다. 6시에 기상해서 운동과 아침 식사를 한 후 8시 30분부터 본격적으로 오전 훈련을 시작한다. 점심시간 한 시간, 간식 시간 20분을 빼고 밤 10시까지 출전 분야 훈련을 계속한다. 6개월 지옥훈련을 거치는 동안 주말엔 집에 가지 않았다. 국가대표가 된 이상 목표는 금메달이었다.”


국가대표 훈련을 시작하면 선수들은 외출을 할 수 없다. 개인 강사나 코치를 둔 선수들은 인천에 있는 훈련소로 선생님들을 호출한다. 가씨는 훈련소 내부에서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움직이는 시간도 아까워 ‘CCTV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선생님 자문 얻기 위해 ‘CCTV 강의’를 자처했다 하던데


“30평 남짓한 공간에서 다른 분야 선수 2명과 훈련을 했다. 방에는 CCTV가 달려 있었는데 훈련소 바깥에서도 CCTV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능이 있더라. 그래서 개인 코칭 선생님께 CCTV를 통해 그날 한 작품을 보여드리고 자문을 구했다. 화훼라는 게 단순히 꽃꽂이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다. 2m짜리 작품을 연습해야 할 때도 있고, 꽃이 아닌 식물로만 장식을 완성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다양한 디자인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 CCTV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하지만 요즘은 선수들 사생활 보호 문제 때문에 훈련소에 CCTV를 이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

출처: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 제공
제43회 국제기능올림픽 오프닝 세레모니.

-올림픽 당시 이야기를 듣고 싶다


“2015년도에 참여한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렸다. 화훼장식 분야 평가 기준은 구상과 색상, 기술, 창의성, 청결 항목이다. 총 5일간 치러지는 대회 기간 동안 오전·오후에 한 작품씩 출품해 총 10개 작품을 평가받는다. 국제기능올림픽 대회가 다른 대회보다 까다로운 건 10가지 출품 주제 중 5개가 ‘서프라이즈(surprise)’ 형식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동그란 모양의 부케를 만들어 내시오’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양 꽃꽂이를 제출하시오’ 등의 주제가 주어진다. 하지만 서프라이즈 주제의 경우 예상치 못한 소재를 사용하도록 하거나 특별한 상황을 가정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대회에서는 반드시 활용할 소재로 재활용 PET병과 땅콩이 주어졌다. 

출처: 가현정씨 본인 제공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 중인 가현정씨. 지난 대회에서는 PET병과 땅콩을 이용해서 화훼장식을 완성하라는 서프라이즈 주제가 출제됐다.

브라질산 꽃과 이파리를 사용해야 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었다. 브라질은 날씨가 덥다 보니 기본적으로 식물 크기가 다 컸다. 대문짝만 이파리를 가진 식물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훈련할 때 만져보던 소재들과는 너무 달라서 대회를 치르면서 소재 적응을 같이 해야만 했다.


화훼장식 부문에는 총 20개 국가 선수들이 출전했다. 경기 시작 전에는 서로 대화도 나누고 눈웃음도 건넸다. 출제자 주변에 선수들이 빙 둘러싸 문제가 적힌 종이를 받았는데, 일순간 모두의 긴장을 서로 느꼈다. 칸막이 쳐져 있는 각자의 부스로 돌아와 90분 안에 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최대한 집중해서 작품 스케치부터 시작했다. 매 작품을 완성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자신한다.”


-금메달 못지않은 은메달을 땄는데 소감은 어땠나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도 있다. 이탈리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는데 점수 차이가 2점 정도였다. 구성이나 디자인 측면이 아닌 ‘청결’ 항목에서 점수 깎인 게 가장 아쉽다. 대회에서 사용할 꽃을 한꺼번에 전달받으면, 그 꽃들을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를 평가하는 게 청결 항목이다. 날씨가 덥다 보니 꽃잎 사이에 습기가 차서 잎들이 뭉치거나 사이사이에 곰팡이가 잘 핀다. 우리나라와 기후가 달라서 더 신경 써야 했는데, 그걸 놓친 것 같다. 

출처: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 제공
제43회 국제기능올림픽 은메달 시상 장면 중 태극기를 펼치고 있는 가현정씨.

그래도 금메달 못지않은 은메달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화훼장식을 하다 보면 철사로 뼈대를 세우는데 그 과정에서 피부가 긁혀 손이 잘 상한다. 꽃 줄기를 전문 도구로 한번 훑어주는데, 시간이 부족하면 맨손으로 한다. 그러다 보면 손끝이 찢어지고 거북이 등껍질처럼 굳은살이 박이는 건 기본이다. 풀물은 빠지지도 않아서 항상 손이 시커멓기 일쑤다.


지난 대회부터 경기가 치러지는 동안에 각자의 점수를 알려주지 않았다. 경기 마지막 날 금·은·동을 차지한 국가의 국기가 경기장에 떠오른다. 그중 누가 금메달인지는 구두로 발표한다. 긴장이 더 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우리나라 선수들은 금메달이 확정되면 한복을 입고 시상식 단에 올랐는데 이번엔 성적을 미리 알 수 없었다. 희망을 가지고 한복을 입고 시상식에 나섰지만 결과가 은메달이었다. 그래도 열정을 쏟았으니 후회는 없었다.”

메달 획득 상금 5600만원…고향서 꽃 카페 운영하며 행복해

출처: jobsN
가현정씨는 지난 2016년부터 고향에서 꽃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가씨는 지난해 대전 대덕구에 ‘그리니티’라는 꽃 카페를 창업했다. 딸과 꽃 카페를 운영하고 싶었다는 어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서다. 카페 옆쪽으로 부대시설을 만들어서 아틀리에도 운영한다. 초등학생 시절 자신이 취미 삼아 꽃꽂이를 시작했듯 사람들에게도 그 재미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가씨는 올해부터 ‘계속종사장려금’이라는 걸 탄다. 일종의 연금이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메달을 딴 지 2년이 지나면,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메달리스트에게 장려금을 지원한다. 단 메달리스트는 반드시 해당 직종에 종사하고 있어야 한다.


가씨가 올해 처음으로 받는 계속종사장려금 액수는 716만원이다. 장려금은 매년 약 18만원씩 올라간다. 가씨가 10년 후에도 화훼업에 계속 종사하면 900만원까지 장려금이 늘어난다. 10년 이후에는 계속 같은 금액의 장려금을 받는다. 


-따로 취업 계획은 없나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리고 싶어서 꽃 카페를 창업한지 1년이 지났다. 꽃과 카페가 나름 잘 어우러지는 주제란 생각을 거듭한다. 제가 따로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꽃꽂이 수업을 하고 있고 외부 강의를 다니기도 한다. 제 나이에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기술’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참고 견뎌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꾹 참고 한 길만 걸은 덕분에 지금의 가현정이 있다고 본다.


고향이 신탄진인데 꽃 가게가 없었다. 고향에 꽃 문화를 정착시키고 사람들에게 꽃 기술을 알리는 게 개인적인 목표다. 취업을 해서 잘 풀렸다면 서울에 있는 큰 웨딩홀에서 꽃 장식을 했을 것이다. 돈을 더 벌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하는 일이 더 의미 있고 행복하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은 지난 2012년부터 매년 ‘스타 기술인’을 선정한다. 쉽게 말해 숙련기술인 홍보대사다. 처음엔 매년 3명을 선정했지만 2016년부터는 6명을 뽑는다. 보다 다양한 계층에게 숙련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2017년도 스타 기술인으로 선정되셨던데


“추천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 번 거절하기도 했다. 수많은 명장도 계시고 저보다 뛰어난 기술인이 많으시기 때문이다. ‘청년층’을 위한 홍보대사 임명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이 움직였다. ‘기술’을 배우고 그것으로 업을 삼는다는 걸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지만, 제 경우만 봐도 ‘기술’을 가졌기에 성공할 수 있지 않았나. 더 많은 청년들이 각 분야에서 숙련기술인으로서의 꿈을 품고 열정을 쏟았으면 한다. 그걸 위해 제 분야인 화훼장식 홍보를 위해 힘쓰겠다.”


글 jobsN 박가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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