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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권·선예 동기 12년 연습..수없는 데뷔 무산 끝에 찾은 직업

조회수 2020. 9. 22. 11: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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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의 노력과 좌절..가수 연습생에서 여행작가로
2001년 '박진영의 영재육성...' 출연
중 3때부터 26세 때까지 연습생 생활
2011년부터 여행작가로 전업

여행작가 맹지나(31)씨에게는 ‘JYP 연습생 출신’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2001년 SBS ‘박진영의 영재 육성 프로젝트 99%의 도전’에 출연한 후 JYP 연습생으로 4년을 보냈다.


여러 가수의 노래와 드라마 OST에 참여했다. 다른 가수 무대에 댄서로도 섰다. 당시 같이 연습했던 비, 노을, 임정희, 조권, 선예는 가수로 데뷔했다. 맹씨는 여러 기획사를 옮겨 다니며 8년을 더 보냈지만 그에게 데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출처: 맹지나씨 제공

‘가수’ 꿈을 좇아 10대, 20대 초반을 보낸 그는 지금 다른 길을 찾았다. 1년중 절반 정도를 해외에서 보내는 여행작가로 산다. 스무 살 때부터 30개국 100개 도시를 여행했다. 2011년 ‘카페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최근 ‘남프랑스홀리데이’까지 15권의 책을 냈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어도 그는 여행을 기록하고 남들과 나누는 일에 행복을 느낀다.


‘노래’를 아예 놓진 않았다. ‘Gina Maeng’ 유튜브 채널에 가면 그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얼마 전엔 엠넷 예능 프로 ‘너의 목소리가 들려 4’에 출연했다. 그를 만나 연습생으로 살아온 길과 다른 직업을 찾기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출처: 맹지나씨 제공
2005년 19세 때 모습. (왼쪽) 비 'it's rainning' 콘서트 때 댄서로 무대에 섰다.

전력을 다해 꿈을 향해 달렸다 

맹씨는 1996년 초등학교 4학년 때 호주 시드니로 갔다. 은행원인 아버지가 해외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2년 반이 지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땐 H.O.T., S.E.S., 핑클 같은 1세대 아이돌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때 처음 가요를 접하면서 가수를 꿈꾸기 시작했다. 틈날 때마다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중3 때 TV광고를 보고 ‘박진영의 영재 육성 프로젝트 99%의 도전’에 참가했다.


맹씨는 “그때만 해도 보아, 량현량하 등 어린 가수들이 많아서 (나는) 이번에 안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3차에 걸친 오디션을 거쳐 최종 10인에 뽑혔다. 대부분 초등학생이었고 그의 나이가 제일 많았다.


이 프로는 우리나라에 ‘오디션 붐’을 일으킨 슈퍼스타K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 오디션 프로인 ‘아메리칸 아이돌’보다도 먼저다. 4개월 동안 연습생들이 노래와 춤을 배우는 과정을 방송했다. 프로가 끝나고 맹씨는 JYP 연습생으로 계약했다.


-연습생 생활은 어땠나요.

“학교가 끝나면 연습실에 갔어요. 노래, 춤, 연기 수업을 받고 자유시간에는 혼자 연습했습니다. 외국어 공부도 했구요. 연습생 모두 연습에 열중해서 서로 떠들지도 않았어요. 밥 먹을 때도 노래, 춤 이야기만 했어요. 옷이 땀으로 젖는 건 당연하고, 연습실 사방이 유리인데 열기로 뿌옇게 변할 정도였어요. 회사가 청담동에 있고 학교랑 집은 분당이어서 막차를 타고 집에 갔습니다. 이 생활을 하루도 어긴 적 없어요.”


-간절했네요.

“학교 종이 울리면 가장 먼저 뛰어나갔어요. 한번은 비오는 날 어머니가 우산을 주러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종이 울리자마자 제가 미친 듯이 뛰어가더래요. 어머니가 그때 ‘반대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대요. 간절한 만큼 열심히 노력했어요. 선생님들에게 평가를 받을 때 ‘연습을 안했네’라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어요.”


-대학 전공은 당시 꾸던 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나요?

“아뇨. 고1 때까지는 평생 가수를 할 거니까 대학은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고2 때쯤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어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뉴스나 신문도 챙겨 봤어요. 국제관계와 시사,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국제학이었습니다. 가수 꿈을 접은 건 아니었어요. 대입 공부를 하려면 연습을 쉬어야 하는데, 오래 쉬고 싶지 않았어요. 1학기 수시 합격을 목표로 했습니다. 고3 올라가서 하루 2시간씩 자며 공부했어요. 3월 부터 연습을 잠깐 쉬고, 7월에 합격 결과를 받고 난 뒤 다시 연습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공부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노래랑 춤은 100시간을 연습해도 잘 안될 때가 많아요. 하지만 공부는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와서 좋았어요.”

출처: 맹지나씨 제공.

그는 고려대에서 국제학을 공부했다. 학교생활에 충실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연습도 여전히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전력을 다해 노력한 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가수 꿈을 접었네요.

“그렇죠. 대학에 들어간 뒤 JYP를 나왔어요. 이후 신생 기획사, 또 다른 대형 기획사 등 3~4곳을 옮겨 다녔습니다. 데뷔 기회가 많이 있었지만 결국 다 무산됐어요. 데뷔 방송 일자를 잡아두고 엎어지기도 했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회사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이유는 여러가지였어요. 회사가 원하는 이미지와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 어울리지 않다거나, 회사가 안 좋은 일을 겪는다거나, 계약 문제로 작은 소송을 겪은 적도 있구요. 꿈을 포기하고 싶다가도 저를 위해 만든 곡이라고 들려주면 음악 때문에 또다시 시작했어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없다는 게 힘들었어요. 저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에요. 제가 결정 내려서 행동하면 성공이든 실패든 혼자 책임지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연습생일 때는 아무것도 못한 채 기다리기만 했어요. 회사에서 내리는 의견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했죠.


저는 음악과 저를 연인 관계에 비유해요. 오랜 시간 동안 수없이 어려운 일을 겪다 보니 지쳤어요. 연습 12년 차에 접어들었을 땐 권태기를 지나 헤어질 때라는 걸 느꼈어요. '이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어요.”

출처: 맹지나씨 제공.

여행작가로 제2의 삶

그는 스무살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했다. 영어 과외, 학원 강사, 통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남은 돈을 모아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업, 연습생 생활, 알바, 여행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연습생 생활을 마무리 지을 무렵, 그는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커피를 좋아해 이탈리아에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며 여행할 생각이었다. 서점에서 관련 책을 찾았지만 없었다. 여행을 다녀와 출판사에 ‘이탈리아 커피 여행’을 주제로 제안을 했더니 단번에 ‘좋다’는 답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한해 2~3권씩 책을 내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책과 신문 읽기를 즐긴 덕분인지 글쓰기가 적성에 맞았다.


-글감은 어떻게 찾나요.

“여행 가이드북은 출판사에서 요청이 와서 쓰는 경우가 많아요. 가이드는 여행을 다녀온 후 한달 정도 몰입해 씁니다. 에세이는 ‘이렇게 써야지’라고 마음먹진 않아요. 여행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적어둬요. 조금 써두었다가 6개월, 1년씩 묵힌 다음 다시 고치고 ‘이제 내보자’는 생각이 들 때 냅니다. 에세이에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가감 없이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출처: 맹지나씨 제공
(왼쪽부터) 그리스, 런던, 프라하에서 찍은 사진. "여행을 하려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 힘들어요. 잃어버릴 위험도 있구요. 또 해마다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니까, 여행 다녀오면 카메라를 팔아요. 중고 카메라를 사서 쓰기도 합니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 있나요.

“표를 끊는 순간부터 여행 갈 나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요. 역사는 물론 음악과 영화 드라마까지 다 봅니다. 영국 여행을 앞두고 비틀스 음악을 전부, 매일 들었어요. 셜록, 닥터 후 같은 ‘영국 드라마’도 보구요. 그 나라에 미친 사람처럼 푹 빠져드는 시간을 보냅니다. 단, 비행기에 오르면 아무것도 안봐요. 지도도 잘 안봅니다. 하지만 저처럼 전업 여행작가가 아닌 회사원이나 대학생에게는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에요."


-그럼 직장인, 대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행 전에는 한국 블로그보다 현지 블로그를 둘러보세요. 우리에겐 구글 번역기가 있습니다. 현지에서 생각하는 맛집이나 명소가 한국과 다른 경우가 많아요.


또 여행 계획을 빡빡하게 잡지 마세요. 계획이 어그러지면 ‘이번 여행 망쳤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여행에서는 그런 일이 당연해요. 특히 유럽은 변수가 많아요. 날씨 변덕이 심하고, 기차가 연착되거나 운행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사건, 사고도 여행의 묘미로 생각하면 여행을 휠씬 더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여행작가이면서 연사, 영어 강사, 작사가로도 활동한다. 조권의 '횡단보도', 케이시가 부른 '드림' 등의 노랫말을 지었다. 맹씨는 가수의 발음, 발성법을 고려해 작사한다. 최근에는 미디어 자몽과 함께 ‘공항가는 길’이라는 페이스북·유튜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억대 연봉은 아니어도 대기업에 다니는 또래 회사원보다는 많이 번다. 오랫동안 연습생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음악 사업을 함께하자는 제안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여행을 맘껏 갈 수 없으니 포기했다. 

출처: 맹지나씨 제공
미디어 자몽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로도 활동 중이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불안하지는 않나요?

“저는 불안하지 않은데 주변에서 걱정해요. 누구는 ‘불안하지 않은 척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해요. 그래서 2014년에는 한번 정기적인 일을 해봤어요. 1년 동안 영어 강의랑 통번역 일만 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2배 더 벌었던 것 같아요. 유명 어학원에서 억대 연봉을 주겠다는 제의도 받았어요. 하지만 거절했습니다. 잘하는 일이긴 했는데 가슴 뛰는 일이 아니었어요.


주변에서 ‘힘들어 보인다’, ‘슬퍼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여행 가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으니까 괴로웠어요. 결국 그다음 해 파리로 떠났습니다. 1년 동안 살면서 모아둔 돈을 모두 썼어요. 그때 생각했죠. 아, 내 본업은 여행작가구나.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행복하구나.” 

출처: /너목보 영상 캡처, 맹지나씨 제공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조권씨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연습 한번같이 하지 않고 무대를 함께 했다. "권이가 2절 후렴구에 등장했는데 저를 보자마자 울려고 하는 거예요. 순간 저도 울컥했어요. 고음이 나오는 부분이라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고 불렀죠. 100점짜리 무대는 아니어도 즐겁게 불렀어요."

온전히 노래를 즐길 수 있어요

-너목보 출연은 어땠나요.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직업이 가수가 아닐 뿐, 저는 여전히 노래와 춤을 좋아해요. 오디션 프로가 아니라 노래만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섭외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연습생 때는 ‘어떻게 하면 평가를 잘 받도록 노래를 부를까’를 생각했어요. 또 다른 사람 무대를 ‘망치면 안된다’는 부담도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 없이 온전히 노래만 부를 수 있어 좋습니다.”


‘너목보’에서 초록색 슈트를 입고 등장한 그는 가수 조권과 함께 ‘헤어지러 가는 길’을 불렀다. 가수가 아닌 예능 출연자로 무대에 섰으니 아쉬울 법도 하다.


-아쉽지 않나요.

“더불어 ‘아깝지 않냐’는 질문도 많이 받아요. 아쉽지도, 아깝지도 않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미련이 남았다면 나갔겠죠. 연습생 시절 많은 걸 배웠어요. 좋은 조건에서 최고의 전문가에게 가르침을 받고,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을 만났어요. 원 없이 노래하고 춤추며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봤습니다. 느닷없이 다가오는 어려움, 좌절, 상실감을 헤쳐 나가는 방법도 배웠어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출처: 맹지나씨 제공.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연습생과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언하기가 조심스러워요. 오디션 프로를 보면 절박한 친구들이 많아요. 지금의 저는 그 친구들에게 ‘목숨 걸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연습생 때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연습하면서 절박했던 사람들이 잘 되는 걸 많이 봤구요. 이미 저는 그때와 생각이나 관점이 달라졌겠죠. 다만 한가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다고 나머지를 모두 놓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언보다 바람은 있어요. 꿈꾸는 친구들이 하루하루를 후회없이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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