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고생 끝에 이름 알린 걸그룹 트와이스의 '엄마'

조회수 2020. 9. 18. 15: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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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방탄소년단·프로듀스101의 노래 선생님 '김성은'이 말하는 보컬 트레이너와 가수의 삶
가수 겸 보컬 트레이너 김성은씨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는 베테랑
'노래하는 법'뿐만 아니라 직업정신 가르치는 직업

김성은(37), 이름은 낯설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의 ‘성은쌤’이라 하면 바로 얼굴이 떠오른다. 101명의 소녀들을 때론 따끔하게 혼을 냈고, 때로는 따뜻한 말로 격려하던 그 사람.


그녀는 트와이스, 방탄소년단을 가르친 보컬 선생님으로도 유명하다. JYP·큐브·빅히트·플레디스·안테나뮤직 등 내로라하는 기획사에서 보컬 트레이너로 일했다. 국내를 넘어 외국인 가수 지망생에도 노래를 가르친다. 중국판 프로듀스 101 ‘몽상지려’, 미얀마 오디션 프로그램 ‘갤럭시스타2017’에도 보컬 트레이너로 출연했다.  

출처: jobsN
김성은씨.

김씨의 이력서엔 보컬 트레이너 경력을 2010년 시작했다고 씌여있다. 하지만 실제 경력은 2002년부터라고 봐야한다. 그 무렵부터 대학 후배, 가수 지망생을 알음알음 가르쳤기 때문이다. 올해 16년차 베테랑이다. 하루에 소화하는 스케줄은 3~4개. 방송출연, 개인 레슨, 연습생 트레이닝, 대학 출강으로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다.


보컬 트레이너로 유명하지만 본업은 가수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소울창법이 특징이다. 가수 활동명은 ‘AG성은’. 은(銀)을 화학기호로 ‘AG’라 하는데 여기서 따왔다.


방송사에서 자주 부르지만 가수 AG성은에 대해 묻지는 않는다. 무대 뒤에서 주로 활약하는 ‘아이돌 메이커’로 알려진 탓에 자신의 이야기보다 아이돌의 데뷔 전후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가 많다. 이번에는 온전히 그의 직업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자.   

출처: 김성은씨 제공
프로듀스 101 시즌 1에 출연한 김성은씨.

보컬 트레이너보다 '가수'가 먼저였다 

어릴 적부터 집안에는 항상 음악이 흘렀다. 아버지가 모아둔 LP판 덕분이었다. 그 영향을 받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수를 꿈꿨다.


“제가 학창시절을 보낼 때는 팝의 전성기였어요. '머라이어 캐리, 자넷 잭슨, 휘트니 휘스턴, 뉴키즈 온더 블락'처럼 지금 ‘전설’이라 불리는 가수들이 현역으로 활동할 때였죠. 국내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가 한국 가요판을 흔들고 있었어요.”


그의 어릴 적 꿈은 단 하나. ‘대전을 떠나 서울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음악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학교에 ‘밴드 동아리’도, 악기를 다룰줄 아는 학생도 없었습니다. 정말 폭포수 아래서 소리 지르고, 식초물 마셨습니다. ‘비디오’, ‘테이프’를 수백번씩 들었죠. 서울 대학로, 홍대를 누빌 그날을 꿈꾸면서요.”


악바리처럼 공부해 1998년 중앙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전공 공부는 뒷전이었다.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학비를 충당하고 음악을 배우러 다녔다. 

출처: 김성은씨 제공
공연하는 모습.

2학년 때 흑인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연을 하러 다녔다. 스컬, 미료, 재즈보컬 남예지 같은 내로라하는 뮤지션이 같은 동아리 출신이다. 당시 대학 보컬·밴드 동아리는 대학 축제 뿐만 아니라 힙합 클럽, 기업 행사 등 불러주는 곳이 많았다.


“1학년 때 아르바이트 시급이 1700원이었는데,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해도 한달에 40만~50만원 벌었어요. 반면 공연은 무대에 한번 서고 15만~20만원을 받았어요. 통장에 항상 200만~300만원 있었던 거 같아요. 백화점 같은 곳에서 협찬도 받았어요. 대학 동아리로는 축복받은 세대였죠.” 

김씨는 래퍼가 즉석에서 가사와 비트를 만들 듯, 즉흥으로 멜로디를 만들 줄 알았다. 그 무렵 기획사에서 앨범을 내자는 요청이 밀려들었다. 김씨가 직접 작곡·작사를 한 곡으로 앨범을 준비했다. 하지만 계약을 맺기 직전 앨범 발매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소니, 서울음반을 포함해 회사를 여러번 옮겨 다녔다.


“2000년대 초반 음반 시장은 CD에서 음원으로 넘어가고 있었어요. 솔로보다 그룹이 주목 받았구요. 이렇게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에 저는 뛰어나게 예쁘지도 않고, 특색있게 부르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대중을 생각하기 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고집하기도 했구요." 

출처: 김성은씨 제공
그룹 '앨리캣'으로 활동할 때 공연 모습.

2003년 MC스나이퍼의 2집 타이틀 ‘한국인’에 보컬로 참여했다. 대중에게 가수 ‘AG김성은’을 알린 계기였다. 이후 키네틱 플로우, 아웃사이더, 배치기, 슬로우잼의 앨범에 참여해 멜로디를 만들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가수 ‘AG성은’의 단독 앨범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2009년엔 지인에게 사기까지 당했다. 그 좋아하던 ‘노래’를 증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 스튜디오 다 정리하고 제자 집에서 얹혀 살았어요. ‘가수’ 안한다고 했죠. 부모님께 효도는 커녕 끼니 걱정을 해야 했으니까요. ‘노래’와는 관련 없는 학원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다른 직업을 찾았어요.”  

출처: jobsN
김성은씨.

모든 걸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데뷔를 앞둔 걸그룹 ‘달샤벳’에게 노래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그가 맡은 연습생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늘자, 큐브에서는 그에게 신인개발팀을 맡아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내친 김에 2011년 '위대한 탄생'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다. 이때 방시혁 프로듀서의 회사에 속한 방탄소년단 진, 정국, 크나큰의 인성을 가르쳤다. 연달아 트와이스, 샘킴, 이진아를 가르치면서 '보컬 트레이너'로 자리 잡았다. 

출처: 트와이스 공식홈페이지, 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상단 왼쪽부터) 트와이스, 트와이스 쯔위와 사나, 방탄소년단 진, 정국

보컬트레이너의 삶

김씨는 ‘더블유아이컴퍼니’라는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를 포함해 보컬 트레이너 5명이 속한 ‘보컬 팀’이다. 기획사의 의뢰를 받아 가수 지망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친다. 발성, 호흡, 기교 같은 실전부터 음악의 역사 같은 이론도 알려준다. 김씨와 다른 보컬 트레이너들이 연구한 커리큘럼이 있다. 순서대로 할 때도 있지만 기획사와 의논해 과정을 바꾸기도 한다.


“보컬 트레이너를 시작하면 처음엔 시간당 2만원을 받아요. 이후 5000원씩 올라갑니다. 보통은 4만~5만원을 받아요. 저는 10만원 정도 받습니다.”  


연습생들에게 김씨는 '엄마'와 같은 존재다. 노래만 가르치지 않는다. 노래 이외 가수로서 가져야 할 직업의식·가치관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눈다. “노래를 업(業)으로 삼으려면 지겨워요. 수천번 외우고, 부르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노래부르는 게 마냥 즐거우면 안되요. 공인이니까 무책임한 말도 하면 안되구요. 연습생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잘 설명해줘야 해요.”


연습생과 아이돌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한 말도 빼놓지 않는다. 연습생 대부분 중·고등학생이며 대부분 10대 후반에 데뷔한다.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나이에 악플을 보고 마음이 쉽게 다친다. 김씨는 연습생들이 유쾌한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하지 않아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라는 존재 자체가 귀하다’는 말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내 노래를 좋아하지 않아요. 자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강단이 있어야 해요. 혼낼 때도 있어요. 그때는 ‘너 자신이 아니라 부족한 실력·직업 정신·책임감을 지적하는 거다’라고 말해요.”

출처: 김성은씨 제공
프로듀스 101에 출연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 맨 오른쪽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사람이 김성은씨다.

‘프로듀스 101 시즌1’은 김씨에게 도전이었다. 보컬 트레이너는 가수가 음원을 녹음하거나 무대에 설 때 어떻게 불러야 할지 지도하기도 한다. 같은 노래라도 편곡에 따라,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듀스 101'에서는 보컬 지도, 음원·무대 디렉팅을 한꺼번에 해야 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3~4일, 많아야 일주일을 줘요. 그 사이에 애들을 무대에 올려도 손색없을 만큼 만들어놔야 합니다. 애들도, 스태프도 잠을 못자요. '며칠 전에 잤어'가 안부인사였어요. 방송에는 실전만 나왔지만 ‘스트리트 리듬이 어떻고, 바운스 리듬은 뭐고’하는 이론도 싹 다 가르쳤어요. ‘같은 곳에서’ 음원 녹음할 때는 B1A4 진영씨랑 생방송 직전에 12시간 동안 디렉팅 했죠.”


가르친 제자들이 데뷔해 1위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낙이다. '성은쌤 고맙다'며 먼저 연락하는 제자들이 기특하다.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제자들을 떠올릴 때면 안타깝다. 어릴 적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다. "10대, 20대를 통째로 바쳐도 성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돌을 가르치고 만드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해요." 

출처: 김성은씨 제공
재즈싱어 겸 피아니스트 써니와 함께한 '주크박스'로도 활동 중인 김성은씨.

늦게 피는 꽃도 아름답더라 

보컬 트레이너로 인정받으면서 끼니 걱정은 안 한다. 1년에 서너번은 어머니를 해외여행 보낼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가수'로 각인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2009년 랩퍼 언플러그드소울(unpluggedsoul)과 혼성듀오로 첫앨범을 냈다. 2013년엔 ‘앨리캣’이라는 그룹으로 앨범을 냈다. 재즈가수 써니와 ‘주크박스’라는 팀으로도 활동 중이다. 솔로 앨범은 2015년 ‘One way’가 처음이다. 잘 팔리진 않았다. 그는 앨범을 냈을 때 소극적으로 활동했다. 겁이 났기 때문이다.


“'이제 데뷔하나' 싶으면 무산될 때가 많았어요. 일종의 트라우마랄까요. 좋아하는 티를 내면 지금 이 기회와 행복이 달아날 것 같았어요.” 

이제는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 서려 한다. 올 9월 발매를 목표로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했다면 이제는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볼 생각이다.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고, 아직 가수로서 제 색을 완전히 찾진 못했어요. 하지만 제가 왜 노래를 부르는 지는 확실히 알아요. 얼마 전 공연이 끝나고 내려오는데 관객분이 ‘당신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좋다. 참 좋은 일 하고 있다’고 말해주셨어요.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힘을 얻는다면 충분해요.


상업적인 성공은 운명이 따라준다면 찾아오겠죠. 전전긍긍하진 않을래요. 제 자신과 연습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자. 늦게 피는 꽃도 아름답더라.’”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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