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졸→편의점 알바 8년, 평생직장 공기업 찾아준 자격증

조회수 2020. 9. 18. 11: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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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고 나서야 정신 차렸습니다"
공부가 싫어 고교 중퇴, 편의점 알바로 8년
낮에는 아파트 관리, 밤에는 자격증 공부
연봉 3000만원 "신의직장? 미래를 꿈꾸게 해준 회사"

고등학교 중퇴, 두 번의 심장수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PC방 간식 납품, 아파트 관리소 직원….


박운재(41)씨 이력의 일부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지’를 모른 채 20대를 보냈다. 열일곱살에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갓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갔을 때였다. 15년 동안 앞날을 계획하기도 어려울 만큼 답답한 시간을 보내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학원에 다니며 서른두살부터 자격증을 준비했다. 전기공사기사 자격증을 처음 따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할 수 있다.'


전기공사기사 자격증 합격률은 평균 35% 수준이다. 세명 중 두명은 떨어지는 셈이다. 공부가 싫어서 고등학교도 그만뒀다는 그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출처: 박운재씨 제공
박운재씨가 딴 자격증.

소방설비기사(전기분야), 온수온돌, 보일러, 공조냉동기계, 가스 과정 기능사 자격증을 추가로 땄다. 2010년엔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서울도시철도엔지니어링(서울도시철도ENG)에 들어갔다. 서울도시철도ENG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자회사인 공기업이다. 박씨는 전동차 차량기지에서 보일러, 소방, 전기 시설물 관리를 맡고 있다. 지하철이 1000만 서울시민의 '발' 이라면, 차량기지는 이 '발'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곳이다.


입사 후 그가 추가로 딴 자격증은 전기기능장, 에너지관리 기능사 등 6개가 더 있다. 현재 에너지 관리기능장 시험에 1차 합격한 뒤 2차 시험을 앞둔 상태다.에너지 관리기능장 시험은 아무나 볼 수 없다. 산업기사 자격을 얻은지 5년이 지나거나 기능사 자격증을 딴지 7년이 지나야 한다. 실기시험 합격률은 50% 안팎이다.


자격증을 따는 게 취미가 됐느냐고 묻자 “이제는 책임감의 문제”라고 했다. “성취감도 있고 자부심도 있죠, 제가 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깊이 있게 많이 공부하고 싶어서 도전하는 겁니다.”

공부가 싫어 고교 중퇴, 편의점 알바로 8년

"학창시절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구를 괴롭히던 문제아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공부가 싫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울려 놀던 친구들과 학교를 자퇴했다. 하지만 마땅히 할만한 일이 없었다.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삼촌이 ‘일’을 제안했다. 스프레이로 차에 색을 입히는 도색 작업이었다. 자동차 1급 정비공장에서 일을 배웠다. 쉽지 않았다. '칠 가루'가 코와 입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월급은 29만원 밖에 안됐다. 1년을 일하다 그만뒀다. 일이 너무 힘들었다. 월급은 턱없이 적었다. 무엇보다 친구들처럼 깨끗한 옷 입고 일을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변변한 기술도 없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강남구 서울삼성병원에 있는 편의점 점원으로 들어갔다. 일주일은 오전 9시~오후 6시, 다음 일주일은 오후 6시~오전 9시까지 일하며 월 90만원을 받았다. 보충역으로 병역을 마치고 나서도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해 다시 그 편의점에서 일했다.


"전부 8년 정도를 일한 것 같습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군대에 갔는데 동기 대부분이 대학생들이더군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사람이 저 뿐이었어요, 검정고시라도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출처: 박운재씨 제공
박운재씨 모습.

서울역 고시원을 잡고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다. 일터였던 서울삼성병원에서는 멀었지만, 학원과 가까운 곳에 방을 잡은 것이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야간 근무만 했다. 편의점에서 '야간 말뚝'을 박았다. "오전 9시에 일 끝내고 부랴부랴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잤습니다." 검정고시 패스에 8개월이 걸렸다. 서른이었다. "편의점 일은 익숙해졌는데, 나중에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건 진열하는 게 전부였어요."


편의점을 그만두고 PC방에 먹거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4대 보험조차 가입해주지 않았다. "거의 노가다였습니다. 하루 종일 운전하고 시간이 없어서 밥을 대충 먹거나 거를 때도 많았습니다." 심장 판막에 문제가 생겨 두 번의 수술을 받자 한 동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서너달 동안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나이 찬 아들이 집에서 몇 달이나 쉬려니 부끄러웠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어머니가 아파트 관리소 자리를 주선했다. 아파트 시설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일이었다. 기술이나 자격은 특별히 필요없었다. 대신 월급도 많지 않았다. 120만원이었다.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들어갔습니다."

낮에는 아파트 관리, 밤에는 자격증 공부

2년 정도 근무하며 일이 익숙해지자 욕심이 생겼다.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없을까?' 그러려면 자격증이 필요할 것 같았다. 퇴근 후 전기학원에 다녔다. 전기공사기사 자격증과, 소방설비기사 자격증을 땄다. 아파트에서도 전기나 보일러, 소방 시설을 관리했기 때문에 배워두면 쓸모가 있는 지식이었다. 이때 학원에서 만난 지인에게 서울도시철도공사ENG를 소개받았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게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나아보였다. 보일러와 공조시스템, 온돌, 가스 관련 자격증이 있으면 입사하기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처: 박운재씨 제공

아예 직업전문학교 6개월 과정에 등록했다. 수업시간은 오후 6시 30분~10시 30분까지였다. 하지만 근무를 마치고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1교시 수업은 들을 수 없었다. 오후 6시에 퇴근하고 학원에 가면 시곗바늘은 항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들보다 수업을 못 들은 만큼 더 공부했다. "필기시험은 보통 60점 이상이면 합격하는데 목표를 높게 잡았습니다. '60점 맞아야지'하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자격증 4개를 더 딴 뒤 아파트를 나왔다. 2010년, 서울도시철도공사ENG 채용공고에 입사했고 서류 전형과 면접을 통과해 정직원이 됐다. 현재 지하철 차량기지에서 보일러, 소방, 전기에 관한 시설물 관리를 맡고 있다. 입사 후 시간이 나면 또 다른 자격증을 준비했다. 승강기 기능사 등 6개를 더 땄다. 

연봉 3000만원 "신의직장? 미래를 꿈꾸게 해준 회사"

도시철도공사ENG도 ‘신의 직장’이냐고 묻자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입사 8년차 대리인 그의 연봉은 약 3000만원, 야근·휴일 근무 수당까지 더하면 3400만원까지 받는다. “유명 공기업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목표도 꿈도 없었던 제게 훌륭한 직장입니다.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게 한 회사입니다."


박씨는 "어려서 공부를 안 했던 걸 후회한다"며 "고생을 해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평생교육원에 등록해 교양 수업도 들었다. 현재 81학점을 이수한 상태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사이버대학이나 방송통신대학에서라도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는 "기술직이란 평생직업도 생겼고 1000만 서울시민이 지하철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역사 설비를 담당한다는 자부심도 있다"며 "열심히 배우고 보람을 느끼며 일하겠다"고 말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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