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러 밤무대 선 서울대생 "좋은 대학 나와 뭐하냐고요?"

조회수 2020. 9. 18. 10: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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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졸업했지만 전 영원한 가수입니다"
남들이 뭐라해도 내게 소중한 직업
어려운 형편 서울대 자퇴하고 밤무대 가수
공부 잘하는 막내 공부 못시킨 게 부모님 한
아직 무명가수…꼭 성공하고파

'서울대 출신 밤무대가수'


가수 현자(52·본명 양미정)에게 따라붙는 꼬리표다. 1984년 서울대 가정학과에 입학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1년만에 그만두고 밤무대 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노래 부르는 게 좋고 벌이도 좋아' 밤무대를 하루 13군데 뛰었다. 한창 때인 1990년 무렵엔 매달 100만~200만원을 벌었다. 당시 대기업 월급은 50만~100만원 수준이었다. "덕분에 전셋집을 얻고 부모님도 모시고 살았으니 고마운 직업"이라고 했다. 


그는 2006년 서울대학교에 재입학했다. 그만둔 지 21년만이었다. 살아생전 "공부 잘하는 막둥이 대학 공부 못시킨 게 한(恨)"이라고 말해온 부모님 때문이었다. 학과 이름은 '아동가족학과'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 KBS가 '인간극장'에서 그녀 이야기를 다뤘다. 담당교수도 입학연도로 따지면 현자씨보다 후배였다. 영어 교재를 보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시간을 아끼려 설거지를 하며 영어단어를 외웠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노래부르며 3년만에 졸업했다. "어려운 후배를 위해 써달라"며 학교에 600만원을 기부했다. 

출처: jobsN, KBS캡처
서울대 아동가족학과에 재입학했던 가수 현자씨. 2009년 입학 25년만에 졸업을 하고 계속 가수 생활을 한다.

그 후 10년,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직업은 여전히 가수다. 고속도로 메들리까지 합쳐 앨범 15장을 냈지만 알아보는 이가 적으니 아직 '무명'가수다. 장르는 트로트. '공부를 잘하니 다른 길 찾아보라'고 조언하거나 '서울대까지 나와 왜 하필 트로트 가수냐'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뭐라해도 그녀는 가수가 좋다고 한다. 지난 4월 큰 맘 먹고 신곡 '꽃은 피는데'를 냈다. 사진에  공들이고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저는 노래가 정말 좋아요. 제때 졸업했어도 가수가 됐을 거예요. 가수로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요즘 현자씨의 주 무대는 노래교실와 고속도로. 유행이 지난 밤업소 일자리는 줄어 더 이상 밤무대는 안 선다. 대신 일주일에 3번 이상 서울, 부산, 경기, 대구, 경남 등 전국 노래 교실로 간다. 


주로 주부 대상인 노래교실은 대부분 오전, 오후 시간대로 나눠져 있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시간대별로 노래교실 2개를 돈다. 직접 화장과 의상을 챙기고 운전도 해야하기 때문에 새벽 3시에 일어난다. 10여명짜리 작은 노래교실부터 500명이 모이는 큰 무대도 있다. 


"노래교실을 돌고 집에 오면 밤 10시가 훌쩍 넘습니다. 힘은 들지만 직접 시민들을 만나 저를 알릴 수 있으니 좋아요. 무대 크기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TV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현자는 고속도로 '인기가수'다. 직접 부른 '디귿자로 돌아가면' '백프로' 외에도 '황진이' '부초같은 인생' 등 다른 가수의 곡을 모아 만든 '트로트 메들리' 음반을 고속도로를 오가는 운전자들이 즐겨 듣는다고 한다.


노래교실 일정이 없는 날은 주로 방송국으로 간다. 방송 스케줄이 없어도 만나는 사람마다 CD를 건네고 인사한다. 가수가 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홍보할 때는 쑥쓰럽다. 함께 고생했던 동료가 인기를 얻으면 부러웠다. 부러움은 '열심히 하면 나도 언젠간 잘 되겠지'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뀌었다.  


"공부는 내 맘대로 돼요. 노래도 부르다보면 늘어요. 근데 노래를 알리는 건 달라요. 좋은 곡, 타이밍, 홍보 이 세 가지가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가봐요."


그는 '공부 잘하는 막둥이'였다. 광주광역시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세 살 때 부산으로 이사갔다. 중학교 때까지는 전교 20등 아래로 떨어본 적 없었다. 기타치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발랄한 여중생이었다.


고1때 건설업을 했던 아버지가 망했다. 서울로 와 단칸방에 여섯식구가 살았다. 생계를 위해 '센베이' 과자를 구워팔던 가게에 붙은 방이었다. "마침 학교 바로 앞이라서 친구들이 볼까봐 늘 마음 졸였어요.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들키는 게 너무 싫었어요. 자존심이 세서 친구들도 잘 못 사귈 정도였어요."

출처: KBS 캡쳐
(왼쪽) 1984년 입학 당시 학생증. 2006년 2학년으로 재입학해 공부하던 모습.

선생님 권유로 서울대에 원서를 냈다. 등록금의 3분의 1은 선생님이 내줬고, 나머지는 직장 다니던 큰 오빠가 여기저기 돈을 빌려서 마련했다. 입학 하자마자 학생식당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다. 당시 법으로 과외를 금지했기 때문에 과외로 돈을 벌 수도 없었다. 책값을 못 내 친구들에게 빌렸다. 공부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래 휴학하고 분식점에서 하루 1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시급은 800원. 


"하도 가난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분식집에서 끼니를 떼웠는데 쫄면을 한냄비씩 먹었어요. 배부를 때까지 음식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때 생긴 식탐 때문에 지금도 늘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습니다." 


이후 가수지망생이었던 작은 오빠 권유로 밤업소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5분 노래 부르고 1만원을 받았어요. '이게 내 길이다' 싶었습니다. 제가 뭐든 열심히 하거든요. 일찍 가서 청소하고 선배들 구두도 닦으니 여기저기서 찾아줬습니다." 서울대생이라는 건 알리지도 않았다. 


하루 10시간씩 일해 매달 대기업 직장인 월급 2배 정도 수입을 손에 쥐었다. 물론 "밤무대 가수가 가수냐"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래도 돈을 벌어 부모님 모시고 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출처: KBS 캡쳐, 본인 제공
밤무대에서 노래부르던 시절. 최근 발매한 새 앨범을 위해 찍은 사진.

부모님은 가수가 되는 걸 반대했다. 당신들 때문에 딸이 대학을 관뒀다고 항상 미안해했다. 2000년 초 몇년 사이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그는 다시 대학에 가기로 했다. "저 세상에서라도 한을 푸시길 바랐고, 바쁘게 살다보니 뭐든 배우는 게 참 좋더라고요. 10~20대 때는 삶이 힘들고 자격지심 때문에 친구를 못 사귀었거든요. 대학에 다시 들어가 한참 어린 친구들을 만나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노래 부르며 먹고 살게 됐으니 첫 번째 목표는 이뤘다. 이제 그의 꿈은 '인기 가수'다. 기부, 봉사 등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왜 가수가 됐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말 후회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데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지요. 하지만 가수로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인기있고 유명하면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요. 인생은 기니까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죠?"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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