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에 수영해'1명 뽑는데 2400명 몰린 '한국의 구글'

조회수 2020. 9. 24. 19: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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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의 대표기업, 제니퍼소프트
'직원은 회사 위해 희생하지 말라'는 기업
하루 7시간 근무, 출산하면 1000만원 보너스
근무시간에 마음껏 수영해도 월급을 준다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 카페거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영어로 ‘Jennifer’라고 적힌 4층짜리 갈색 건물이 보인다. 지하 1층에는 드넓은 수영장이 있다. 건물 뒷편 정원에서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업무에 한창일 오후 2시30분인데 2, 3층 사무실 자리에 앉아있는 직원이 거의 없다. 


업무 도중 수영을 해도 ‘근무시간’으로 인정한다. 하루 7시간(주35시간)만 일하면 월급을 준다.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오후 2, 3시에도 마음 편히 퇴근한다. 이곳은 ‘한국의 구글’로 불리는 IT기업 제니퍼소프트다.

출처: jobsN
제니퍼소프트 사옥 모습

2005년 설립된 제니퍼소프트는  파격적인 기업문화와 복지로 이름난 기업이다. 연간 정기휴가 20일(2년 근속시 1일 추가), 5년 근무시 장기휴가(2주+해외여행), 출산시 1000만원 지원금, 차량 유류비·식비·교통비·통신비 전액지원, 자녀 영어 도우미 지원, 신입사원 월세 50% 지원, 야근 없음. 그렇다고 연봉이 짠 것도 아니다. 신입 초봉은 약 3000만원, 직원 평균 연봉은 6265만원(크레딧잡)이다.  


제니퍼소프트는 기업의 네트워크 시스템과 통신망, 서버를 원만하게 돌아가도록 중계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인 미들웨어(middleware)의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다. 쉽게 말해 미들웨어의 고장을 예방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시스템 사용자 로그인 문제, 느린 데이터 전송 문제, 서버 다운의 원인을 찾아 고친다. 삼성·LG·현대차 등 대부분 대기업과 중견기업 1000여곳이 제니퍼 제품을 쓴다. 국내 시장점유율이 약 70%다. 제품개발·마케팅에만 집중하고 판매·영업은 외주를 준다. 매년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매출 180억원(순이익률 50%)을 기록했다. 직원은 20여명이다.  


이 회사의 채용공고는 그 자체가 뉴스다. 2013년 마케팅 신입직원 1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하자, 2400명이 몰려 화제가 됐다. 제니퍼소프트는 올 하반기에도 신입 직원 1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삼성같은 대기업들도 복지제도를 배우러 오는 제니퍼소프트를 찾았다.

 

출처: jobsN
제니퍼 소프트 직원들

“지금 뭐하고 있냐” 이런 말 금지

회사를 창업한 이원영(47) 대표는 창업 이전 여러 기업에서 8년간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 꿈이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일과 여가, 삶이 공존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 창업했다. 그는 2015년 취업포털 사람인이 진행한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CEO’ 4위를 차지했다. 1위는 이건희 삼성회장, 2위는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 3위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었다. 이 대표는 유럽 장기출장으로 회사에 없었다. 2006년 회사에 입사한 김윤영 마케팅팀 차장이 회사에 대해 설명했다. 


“전 직원이 2007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한 소프트웨어 관련 컨퍼런스에 참여했어요. 그때 페이스북, 구글, SAS처럼 복지가 좋은 회사를 돌아봤어요. ‘미국 실리콘밸리 못지 않은 회사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직원들은 하루 몇시간 일해야 하는지 세계 각국 기업 데이터를 모았다. 고민 결과 프랑스의 많은 기업처럼 하루 7시간이 적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현철 부대표는 “하루 7시간만 일하되 자유롭게 출퇴근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공식적인’ 출퇴근 시간은 오전 10시~7시. 그러나 그 시간을 지키는 직원은 드물다. 어떤 직원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가고, 어떤 직원은 오후 3시에 출근해 밤에 회사를 떠난다.  


“하루 7시간 일하지만, 사실 그 시간조차 다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집중적으로 하루에 4시간만 일해도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근무시간에 수영을 하든, 산책을 하든 누가 뭐라고 안 합니다.” 


회사 면에 ‘제니퍼소프트에서 하면 안 될 33가지’란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지금 어디에요? 뭐하고 있어요? 라고 묻지 마세요"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마요. 당신의 삶이 먼저에요" "회의 중인데 좀 있다 전화할게라고 하지 마세요. 가족 전화는 어떤 업무보다 우선이에요"

출처: 제니퍼소프트 제공
방송에 나온 제니퍼소프트 이원영 대표 모습(왼쪽)과 회사에서 하지 말아야 할 33가지

김 차장은 “출근 하기 싫어 낮 12시까지 출근하지 않다가 낮에 ‘휴가 쓰겠다’고 회사에 통보한 적도 있다”고 했다. 대표 이사실 없이 모두가 똑같은 책상과 컴퓨터를 쓴다. 사실 부장 과장 같은 직급도 없어 그냥 ‘찰스’ ‘알빈’ 등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고객 등 외부인을 상대하기 위해 개인 직급을 만들어 놨을 뿐이다. 별도의 문서 보고도 없다. 


제니퍼소프트는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상장할 계획도 없다. 직원을 ‘야생마’처럼 들판에 풀어놓고, 여유 속에서 창의적으로 사고하면 회사의 점진적인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으로 회사가 돌아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매출이 소폭 하락했을 때도 복지 혜택은 줄이지 않았다. 회사 매출은 2013년 100억원대에서 최근까지 매년 10~30%씩 꾸준히 늘었다.  

출처: 제니퍼소프트 제공
제니퍼소프트 직원들 모습

성과평가도 없이 성과가 나는 이유 

2012년 제니퍼소프트는 파주로 이사를 왔다. 수영장을 짓고, 복지제도를 더 정교하게 짰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아 1년간 기를 때 얼마나 드는지 계산했다. 산후조리원 500만원, 분유, 기저귀로 매달 30만원, 돌잔치 200만원을 포함해 1000만원이다. 출산하면 1000만원씩 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요즘 한국 사회는 저출산 문제로 고민중이다. 그러나 제니퍼소프트 직원들에겐 딴나라 이야기다. 출산 지원 제도 덕분에 직원 24명 가운데 기혼자 비중이 80%가 넘는다. 대부분 아이를 낳았는데, 기혼자 출산율은 1.7이라고 했다. 육아휴직도 은행권처럼 2년씩 쓴다.  


제니퍼소프트엔 직원 성과평가도 없다. 물론 회사 실적이 가파르게 올랐을 때 소정의 경영성과금(PS)를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연봉은 개발자, 마케팅 직군, 경력 등에 따라 다르지만 격차가 크지 않다고 했다. 인센티브가 직원 실적을 올리지 않는다는 철학 때문이다. 

출처: jobsN 육선정 디자이너
제니퍼소프트의 주요 복지 내용

이 부대표가 말했다. "직원이 많지 않아 자기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유지됩니다. 전체 직원이 20여명 남짓인데, 한 명이라도 일이 펑크 나면 모두가 무너집니다. 그런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직원의 80% 이상을 경력직으로 뽑는 제니퍼소프트는 입사 후 직원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 이 대표는 "스스로 일을 만들지 못한 일부 직원들이 못 견디고 그만두기도 한다"고 했다.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하지 않지만, 성과를 못 낸 사실을 전 직원이 알기 때문에 압박감에 그만둔다는 것이다.  

출처: 제니퍼소프트 제공
직원이 이용하는 사내 수영장 모습

전 직장서 2년간 집에 한달 갔던 개발자, 이직 후 ‘멘붕’ 

제니퍼소프트로 이직해온 직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삼성카드와 IT기업 2곳에서 일하다 2010년 입사한 개발자 전지훈(38)씨는 오전 10시40분에 출근, 오후 4시 퇴근한다. 일산에 거주하는 그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 다시 데리러 일찍 퇴근한다. 업무시간 7시간을 채우기 위해 집에서 추가로 일한다. 저녁엔 테니스,스쿼시를 즐기기도 한다.  


처음 이직했을 때만 해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멍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는 2년간 집에 한달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 먹고 자고 일만 했거든요." 야근이 일상이던 그는 이원영 대표가 퇴근하면 다시 몰래 회사에 들어와 일했다고 했다. 보다 못한 이 대표가 강제로 전기를 차단하기도 했다.  


"야근에 ‘중독’된 삶을 살았죠. 하루 10~15시간 일하다 7시간으로 줄이니 스스로 눈치를 보게 되더군요. 중독 치료에 1년 걸렸습니다. 일보다 삶과 여가가 늘면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제니퍼소프트는 어떤 사람을 뽑을까. 일단 학력과 영어 점수는 안 본다. 직원 중에는 명문대 출신도 있지만 대학 중퇴자도 있다. 전형도 그때 그때 다르다. 2013년 마케팅 분야에서 1명을 채용할 때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재능과 경험에 대한 비평과 발산’이란 두가지 주제로 에세이를 제출하라고 했다. 정해진 자기소개서가 없어 알아서 써야 한다. 또 면접을 수개월에 거쳐 최소 3차례에서 7차례 본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제니퍼소프트의 문화에 잘 적응할 인재를 뽑자는 생각 때문이다.  

출처: jobsN

개발자 홍재석(31)씨는 ”면접을 3차례 봤는데 총 10시간쯤 걸렸다"며 "프로그래밍에 대한 과제에 이어 실력과 역량, 인생철학 등을 같이 일할 동료, 경영진과 이야기한다"고 했다. 단순히 ‘복지가 좋아서’ 지원하면 떨어지기 일쑤다. 제니퍼소프트의 사업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성은 물론이고, 입사하자마자 프로젝트를 직접 만들 능력을 갖춰야 한다. 


조직 경영을 맡은 이현철 부대표는 매일 눈치 보지 않는 문화를 만들려고 고민한다고 했다. 그는 일반 대기업에서는 시시콜콜하게 여길 것 같은 직원 이슈를 매우 심각하게 들여다 본다. "개발자들에게 PC 등 원하는 장비를 사주겠다며 각자 제안하라고 요청했거든요. 그런데 개발자들이 수줍어해서 ‘이런거 사고 싶다’고 직접 말을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다시 공지했어요. ‘업무에 쓰는 장비가 3년이 넘었으면 원하는 걸 신청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어렵네요. 그냥 원하는 장비를 개인 명의로 살 수 있도록 현금처럼 쓸 포인트를 줄 생각입니다. 알아서 사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국내 기업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꼭 9시에 출근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동료에게 전화를 했는데 업무시간에 집에 있더라도 불편한 마음 없이 받을 순 없을까요. 일각에서는 제니퍼소프트가 ‘소프트웨어 기업’이니 복지와 기업문화에 투자할 여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조업도 좋은 기업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업종이라도 직원에게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성과가 잘 날 수 있지 않을까요."  


글 jobsN 이신영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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