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현대차만 지원한 청년 '충성도 하나면 붙을 거다'

조회수 2018. 11. 5. 09: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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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생 이도형(가명·29)씨는 취업 삼수생이다. 지금까지 대기업 그룹에 지원할 때 여러 계열사 중 한 곳만 골라서 계속 지원했다. 예를 들어 이씨는 현대차 그룹에서는 '현대자동차'에만, SK그룹 가운데서는 'SK이노베이션'에만 세번째 이력서를 넣었다. 그는 "기아차나 SK텔레콤 같은 다른 회사도 지원해보고 싶지만 한 우물만 파는 입사 이력이 결국 취업 성공으로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취업 재수생 박모(28)씨는 조금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다. 여러 기업 신규채용에 응하고 있지만 직무는 오직 홍보만 고른다. "특별히 많이 뽑는 직무가 있어도 다른 분야에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면접에 가더라도 다른 경쟁자와 스펙이 비슷할 때 회사와 직무에 대한 충성도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jobsN
그래픽 jobsN 육선정 디자이너

한 기업, 한 직무에만 도전하는 취준생들

취업을 위해 '지원서 이력'을 관리하는 취업준비생들이 나오고 있다.  매년 특정 회사·직무에만 계속 도전하는 방법으로 기업에 대한 애정이나 충성도를 증명하면 합격률을 높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계열사 중복지원을 거부하는 유형과, 기업을 막론하고 한 가지 직무만 고집하는 유형이 있다.   


중복지원 거부 유형자는 최대한 많은 입사원서를 내는 대신 그룹마다 계열사 하나씩만 골라 지원한다. 가령 중복 지원을 허용하는 그룹으로 현대차그룹과 LG그룹, 농심 그룹 등이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10여곳, LG 계열사는 9개에 달한다. 농심 계열사도 6개가 있다. 이중 현대자동차와 LG전자, (주)농심 각각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 20여곳 지원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한 직무 고집형은 어떤 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지원하지만, 무조건 한가지 직무만 선택하는 사람이다. 마케팅을 선택했다면 삼성전자, 기아차, LG유플러스, KT 등 모두 마케팅 직군에만 지원한다. 한마디로 '기업 지원 이력' 스펙을 관리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취준생들이 기업 지원 이력까지 관리하는 이유는  취업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대기업은 신규채용에 부담을 느낀다며 잇따라 채용 규모 축소를 발표하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2017년 2월 기업 336개사를 대상으로 ‘불황으로 신규채용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77.7%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라고 답했다.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2017년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실시하지 않는다. 두 기업이 공채를 건너뛰는 것은 1998년 이후 19년 만이다. 취준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은행들도 상반기 공채가 없다. 


이럴 때 별다른 스토리 없이 문어발식으로 이런저런 대기업 계열사의 여러 직무에 중복 지원하다 모두 탈락하느니, 타 계열사나 기업 지원은 포기하고 한 기업과 직무만 지원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합격 가능성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많은 기업들은 요즘 서류전형 자기소개서 항목으로 '우리 회사에 지원하려는 이유'를 묻는다. 최근 취준생들은 '이 회사에 꼭 들어오고 싶었다'는 내용을 쓰면서 이를 뒷받침할 근거로 수 년 간의 지원 사례를 제시한다. 

출처: 각사 채용사이트, jobsN
현대차, 금호아시아나그룹, CJ푸드빌, 한샘의 자기소개서 질문 중 일부.

이런 현상은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채용 눈높이와도 관련이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기업 채용담당자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6년 하반기 설문조사를 보면 21.4%가 신입사원 채용 시 회사에 대한 충성심·입사하고자 하는 의지를 검증하고 싶다고 답했다. 취준생의 충성도를 검증하는 방법으로는 2~3단계 면접(45.6%)과 입사지원서 검토(43%)를 꼽았다.


이씨는 "'수 차례 A회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졌지만 다시 도전한다'는 사실은 회사에 대한 '애정'으로 포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도 일종의 스펙이라고 인사팀이 인정한다고 보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부 인사담당자들은  "과거에는 한번  불합격한 지원자를 다시 뽑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 변별력이 떨어진 나머지 직무와 회사를 반복적으로 지원한 지원자가 눈에 들어온다"고 입을 모았다.  


한 공기업 인사담당자 A씨는 "우리 회사의 00직무에 4번째 도전한 취준생이 3번 떨어졌던 과정을 자기소개서에 적었을 때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며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줬다"고 했다.  B그룹의 인사담당 부장은 "같은 직무와 특정 계열사에 매해 똑같이 지원하는 지원자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며 "한 우물만 판 지원자는 면접관들이 호감을 느끼기 쉽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신입사원으로 합격한 B모씨는 2014~2015년 2년 연속 캠코 최종면접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세번째 도전에서 같은 직무로 합격했다. 캠코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해 면접에서 자신의 역량을 모두 쏟아냈다.


회사에서 발간한 ’캠코 히스토리‘란 책으로 회사 역사를 공부했고 회사 관련 홈페이지나 인터넷 사이트는 물론, 다양한 보고서를 찾아 읽었다. 면접에서 오랜 공부 끝에 회사에 필요한 역량이 고객 니즈 분석 능력이며,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위해 별도의 신용분석사 자격증을 땄다는 식으로 어필해 합격할 수 있었다.

출처: 조선DB
2016년 3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6 현대·기아자동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면접을 보고 있다.

"신규채용 부담" 채용계획 축소하는 대기업들

이 같은 취준생들의 '올인 전략'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나온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직원을 뽑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지원자의 능력"이라며 "똑같이 같은 직무와 회사에 매해 반복해 지원했다는 것 만으로는 합격하기 어렵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공모(25)씨는 "한 기업과 직무만 파고 든 재수, 삼수생들을 선호하는 현상을 기업들이 당연하게 여길 것 같다"며 "100개 기업 지원해도 하나 붙기 어려운 취업난에 취준생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올인 전략'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준비가 철저하지 못한 취업준비생은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두번째 지원했을 때 필기 성적이 전년도에 못미치거나 별로 달라진 점이 없으면 게을러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같은 회사와 직무에 반복적으로 지원하고 싶다면 1년동안 전공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인턴 경험을 쌓는 등의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4년 내내 마케팅 직무만 지원해 지난해 대기업에 입사한 김모(30)씨는 "한 직무만 생각하고 준비하면 그만큼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기업에 대한 충성도를 보여주겠다는 생각보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겠다는 전략이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 jobsN 이병희

그래픽 jobsN 육선정 디자이너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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