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승무원→BJ로 변신 '월수 3천만원, 감정노동 3배'

조회수 2018. 11. 5. 10: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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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5일 대한항공 승무원 정소라(23)씨는 돌연 사표를 냈다. 1년 9개월간 잘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본격적으로 1인 방송에 뛰어들기 위해서였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승무원은 여성에게 선망의 직종이다. 정씨도 ‘3수(三修)’끝에 100대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들어간 업계 1위 회사였다. 입사 동기들로부터 “용기를 낼 수 있는 네가 부럽다” “되든 안 되든 열심히 해보라”는 응원을 받았다.

출처: 유튜브 캡처·정소라씨 제공
왼쪽은 '먹방'을 하는 모습. 오른쪽은 방송을 진행하는 집안의 스튜디오

현재 정씨는 ‘타미미’라는 예명으로 아프리카TV에서 BJ로 활동한다. ‘제2의 인생’이다. 눈에 띄는 1년차 BJ 중 한 명이다. 그녀의 방송을 즐겨찾기로 등록한 애청자수는 2만4882명, 누적 시청자수는 70만4954명에 달한다(이상 12일 오전 10시30분 기준). 현금으로 환전 가능한 ‘별풍선’ 수입은 방송 첫달인 2월 약 1700만원, 지난 3월엔 3000만원으로 급상승했다. 

승무원 시절 월급(약 300만원)보다 훨씬 많다. 거의 한해 연봉 수준이다. 'BJ 계의 슈퍼 루키'로 불리고 있다. 승무원 취업준비생들에게 유용한 면접 팁과 옷차림, 화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만난 그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게 많았다”며 “승무원도 꼭 하고 싶은 직업 중 하나였지만 또 다른 꿈을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승무원을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까진 없었어요. 나이가 더 들면 다른 일은 못할 것 같더라고요. 1인 방송이 또 다른 꿈 중 하나였습니다.”

또 다른 꿈을 찾아가는 시간 

출처: 본인 제공
대한항공 승무원 시절 정소라씨

정씨는 2014년 인하공전을 졸업하고 2015년 5월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어려운 경제적 형편 때문에 독학으로 승무원 준비에 매달린 끝에 얻은 결과물이었다. 학원 한번 다닌 적이 없었다. 두 차례 낙방 끝에 합격했다.


근무에 불만은 없었지만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고 해외도 가볼 만큼 가봤어요. 생활은 만족했습니다. 물론 하늘에서 일하고 매번 시차가 바뀌는 불규칙한 환경, 진상 고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었지 만요. 가령 비행이 10시간이라고 치면 준비까지 포함한 근무시간이 그 2배인 20시간입니다.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해외에서는 보통 2~3일 정도 체류를 한다. “호텔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때우는데 아프리카 방송을 본뒤 문득 ‘한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출처: 정소라씨 제공
승무원 시절 직업 특성상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다

당장 전업하기엔 리스크가 컸다. 그만두기 전 시범적으로 아프리카 TV에서 여러 차례 방송을 했다. “공개적으로 승무원 출신이라고 얘기하고 방송을 했어요. 반응이 좋았습니다. ‘너는 잘 될 거니까 무조건 하라’고 말씀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한 정씨가 사직으로 마음을 굳힌 계기였다. 

취준생도 보는 아프리카 방송  

본격적으로 방송에 뛰어든 정씨는 “진입장벽이 낮은 것이 특히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주변에 1인 방송을 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다른 BJ들의 방송을 보며 필요한 장비를 파악한뒤 마이크와 캠, 조명세트를 30만원 정도에 중고로 구매했다. 평소 아프리카 방송을 즐겨보던 8살 아래 남동생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문턱은 낮았지만 방송이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엔 채팅을 읽기도 버거웠다. “채팅창 용어가 익숙하지 않았어요. 줄임말을 많이 쓰더라고요. 지금은 적응됐지만 어떻게 소통해야하는지 막막할 정도였습니다.” 아프리카 방송은 수천명의 BJ가 경쟁하는 곳이다. ‘신입 BJ’로서 신규 시청자를 유입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일부 여성 BJ는 노출이 심한 선정적인 의상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대로 정씨는 단정한 복장차림으로 방송을 한다. “승무원하면 떠올리는게 있잖아요. 단정하고 지적일 것 같은 이미지요. 그걸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가급적 노출도 피합니다. 야한 얘기를 한다던가, 과한 섹시댄스도 삼가고 있어요.” 


노력하고 발전하는 BJ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진정성이 포인트다. ‘몸치’나 다름없던 정씨는 일주일에 두번씩 안무 교습을 받는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야외 방송’도 감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씨는 “아프리카 시청자들이 정말 냉정한 분들인데 열심히 한다는 점만은 알아준다”며 “채팅창에 응원하는 글도 많이 올라온다”고 했다.  

출처: 유튜브 캡처
승무원 관련 팁을 제공하는 영상 설명. 오른쪽은 댓글

사용자들과 그저 대화만 하는 방송을 하는 게 아니다. 자신만의 특화된 콘텐츠도 갖고 있다. 주기적으로 승무원 면접팁을 알려주는 방송을 진행한다. 아프리카 방송국 홈페이지의 ‘승무원 Q&A’ 게시판을 통해 질문을 받는다. 승무원을 꿈꾸는 ‘취준생’들이 ‘목소리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학력은 상관이 없는가’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쏟아낸다. 여성팬을 ‘타순이’라고 부르는 정씨는 “여성 시청자도 제법 된다”고 했다. 처음엔 반대했던 어머니도 지금은 든든한 팬이다. ‘머리카락을 너무 많이 만진다’ ‘야한 옷 입지 말라’는 등의 조언을 수시로 건넨다.  

빛에는 그림자도 따른다 

한순간에 ‘벼락 인기’를 얻은데다 승무원 시절보다 수입도 늘어난 그녀는 언뜻 보면 순탄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속사정은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녀는 “한순간에 ‘폭망’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이곳”이라고 했다. “방송에서 몇번을 울었어요.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연예인의 심정을 알 것 같더군요. ‘내숭떨지 마라, 가식인 것 안다’ ‘거품 다 빠졌다’ ‘네가 진짜 승무원이냐’는 막말이나 욕설에 상처를 받은 적도 있어요.” 승무원 시절과 비교하면 “감정노동 강도가 3배는 된다”고 했다. 

출처: 정소라씨 제공
오른쪽은 '교복 데이트' 영상을 촬영할 당시의 모습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지금의 생활이 더 낫다고 정씨는 말했다. “누군가의 간섭없이 하고 싶은 걸 혼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수입도 더 나아졌고, 시간 운용이 탄력적이죠. 오히려 생활도 더 규칙적이에요. 승무원 때는 시차 때문에 실질적으로 매일매일이 일어나고 자는 시간이 달랐어요.” 지금은 늦은 저녁부터 5~6시간 방송을 한뒤 오전 늦게 일어나고, 오후엔 콘텐츠를 연구하거나 볼일을 본다. 

  

승무원 경험이 방송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가령 차분하고 친절한 느낌의 목소리톤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다들 말씀하시는게 목소리가 너무 좋다는 거예요. 표현도 강렬하기보단 부드럽고요. 힐링된다고 다들 말씀해주세요.” 


아직 BJ를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너무 쉽게 돈을 번다’는 편견이 있다는 것을 정씨도 알고 있다. 정씨는 “많이 버는 건 맞지만 쉽게 버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를 멘탈을 수시로 붙잡아야 합니다. 콘텐츠 고민도 끊임없이 해야합니다. 승무원은 비행이 끝나면 일이 끝나지만 이 직업은 24시간 내내 일에 대해 의식을 하게 됩니다.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이야기 소재를 찾기 위해 수시로 인터넷을 뒤진다. 하루종일 방송에 신경쓰다보니 몸무게도 2kg 가까이 빠졌다.

“뒤안돌아보고 정상 향해 달릴 것”

정씨는 “인생은 한 번 아니냐”며 “도전을 안 해서 후회하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도전을 한 다음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자 입장에서 느끼게 될 후회의 크기가 훨씬 클 것 같아요. 물론 ‘계속 승무원 할 걸’이라는 생각이 아예 안 든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것, 저를 믿고 끝까지 달려가 최고가 한 번 될 겁니다.”

출처: 본인 제공
정소라씨의 '셀카'

목표는 ‘베스트 BJ’를 거쳐 ‘파트너 BJ’가 되는 것. 아프리카 BJ는 누적된 공헌과 인기도에 따라 일반 BJ, 베스트 BJ, 파트너 BJ로 단계가 올라간다. 1년차인 정씨는 일반 BJ. 또 다른 목표는 올해 아프리카TV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는 것이다.  “이쪽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 지표로 볼 수 있잖아요. 아직 경력이 짧아 덜컥 말하기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꼭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씨는 자신의 방송을 시청하는 한 팬의 이야기를 꺼냈다. “암 진단을 받은 분이 있어요. 항암치료를 받는 중인데 제 방송을 보면서 힘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응원을 받을 때마다 저도 힘이 나면서, 그 분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힐링 방송'을 계속 만들겁니다. 지켜봐주세요.” 


글 jobsN 오유교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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