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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2017.03.17. 작성

삼성전자 임원→사업실패 노숙자 직전 재기→'오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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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이 뭐 있겠습니까, 농사꾼입니다. 커피 농부라고 부르면 됩니다.”

김영한(69)씨는 제주도 살이 5년 차 농부다.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 이사, 컨설팅 회사 대표, 교수, 베스트셀러 작가의 삶을 거쳐 농부 그것도 한국에선 드문 커피 농부가 됐다.

커피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왼쪽)와 커피나무를 만져보고 있는 김영한씨 모습.

출처 : 김영한씨 제공

삼성맨→컨설팅회사 대표→베스트셀러 작가

1976년 삼성전자 컴퓨터 사업부에 특채로 입사해 컴퓨터 마케팅 이사까지 올랐다. "입사할때 과장이었습니다. 지금은 말도 안되지만 그때는 승진도 빨라서 마흔에 임원이 됐습니다." 1988년 회사를 나와 마케팅·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로 강단에도 섰다. 하지만 1997년 몰아친 IMF 폭풍에 타격을 입었다. 회사는 부도가 났고 빚만 남았다. “노숙자 직전까지 갔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놓지 않은 건 신문. “새로운 소식은 알아야 했습니다.”

제주 서귀포에 있는 김영한씨의 커피 농장 모습.

출처 : 김영한씨 제공

강남구 대치동에서 어느 총각이 과일·야채를 파는데 장사가 잘 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기업 임원, 경영대학원 교수까지 한 저는 망했는데 사업 경험도 없는 젊은 배추장수가 잘된다고 하니까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장사를 하는지 살펴보자는 심정으로 찾아갔다. 다른 노점상들에게 구박을 받고, 공무원들에게 과일을 빼앗겨도 계속 장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충격받았다. ‘이런 걸 두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고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쓴 책이 ‘총각네 야채가게’다. 약 30만부가 팔렸다.


“이 책이 날 살렸죠. 인세로 빚도 다 갚고 새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니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써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스타벅스 감성마케팅’, ‘스티브잡스의 창조 카리스마’ 등 그가 쓴 책은 67권에 달한다. 총 판매량은 50만권 정도라고 했다. 기업이나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러 주는 사람이 줄기 시작했다.


“유통기한이 끝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60세가 넘으니 책도 잘 안 팔리고, 컨설팅이나 강의 의뢰도 줄어들었습니다. ‘힘이 있을 때 몸으로 뛰자’고 생각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커피 농사, 영하에서도 살아남은 커피나무 보며 희망 

2013년, 제주도로 내려갔다. 가족들은 모두 말렸다. “왜 멀리까지 가느냐고 하더군요, 결국 혼자 내려왔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에 씨앤블루라는 카페를 차렸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직접 커피를 내렸다. 커피에 대해 공부하는 건 취미가 됐다.


“커피를 팔려면 커피에 대해서 알아야 하잖아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커피의 맛과 향을 공부했다. 커피가 어떤 기후나 지역에서 잘 자라는지도 책으로 배웠다. “우리나라가 인구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거의 전량을 다 수입해다 먹습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장조사 기관 밀워드브라운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 성인의 하루 커피 소비량은 2.5잔. 유럽 평균(2잔)보다 많은 수준이다. "토양이나 기후 조건을 고려하면 제주도에서도 충분히 커피를 키울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한국에선 커피에 대해 공부할만한 책을 구하거나 조언을 해줄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마존에서 원서를 구해다가 읽었습니다. 커피는 화산지대에서 잘 자란다는 사실을 알았다.


커피는 주로 북위 25~남위 25도 사이 이른바 '커피 벨트'라 불리는 지대에서 자란다. 온도와 강수량, 비옥한 토지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잘 자라는 까다로운 작물이다. 3년쯤 자란 나무에서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는데 이 열매를 흔히 ‘커피 체리’라고 부른다. 시큼하면서 단맛이 나는 열매가 빨갛게 익으면 따서 그 안에 있는 씨를 분리해 낸다. 이 씨가 원두라 부르는 커피콩이다.

커피 열매로 만든 와인(왼쪽)과 와인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는 김영한씨.

출처 : 김영한씨 제공

비닐하우스에서는 키울만 하다고 생각했다. 카페 옆에 740평 규모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커피 묘목을 사기도 하고 씨앗을 심어 발화시키기도 했다. 5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처음에는 여러 종류를 심었지만 지금은 세종류만 남았다고 했다. 네팔 히말라야빈, 하와이 코나, 태국 블루마운틴 커피다.현재 다 자란 성목이 300여그루, 묘목이 5000그루 정도라고 한다. 수만평에 달하는 동남아시아나 남아메리카 커피농장처럼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한 해 생산하는 양은 약 150kg. 열매를 제거하고 남는 원두는 50kg 수준이다. 보통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드는데 10g정도가 쓰이는데 5000잔 정도 만들 수 있다. "인기가 좋아서 빠르면 한 두달이면 다 팔립니다." 국산 커피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시러 온 손님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은 수확량이 적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수확량이 많지 않아서 수입한 다른 커피도 따로 판다.


김영한씨는 제주식으로 발효한 씨앤블루만의 커피를 판다고 했다. 제주에서는 '쉰다리'라고 해서 쉰 밥에 누룩을 넣고 발효시켜 술을 만든다. 이 방법으로 커피 생두에도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 뒤 볶아서 커피를 만들었다. "이 커피를 볶을 땐 깨 볶는 냄새가 납니다, 손님들이 커피에서 쓴맛이나 신맛보다 구수한 맛이 난다고 좋아합니다." 김영한씨는 이 커피를 '제주 몬순커피'라 이름짓고 상표등록도 마쳤다.


농사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16년 겨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자 커피나무 절반이 얼어 죽었다. “제주도에 있는 비닐하우스는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어요, 불도 안 때고 키웠는데 그렇게 됐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한국에서 커피를 키운다는 게 역시나 힘들다고도 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영하에서도 절반이나 살았잖아요. 아마 전 세계 커피나무 중에서 추위에 가장 강한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기후에 맞게 적응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실망만 할 수 있습니까.”


커피 열매를 이용해 다른 상품도 개발하고 있다. 열매를 숙성시킨 커피 와인, 커피 진액이 들어간 화장품과 마스크 팩도 개발했다. 2017년 3월부터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수확한 커피만 가지고 사업하는 것은 어려워 커피 열매나 카페에서 사용하는 커피를 수입하기도 한다.


“내가 예순아홉에 커피 화장품 세일즈 하겠다고 보부상처럼 중국에 다녀요, 이 나이에 영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제게는 감동이었습니다.”


커피 농장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도 했다. “여행객들도 많이 보러 오세요, 한국에서 커피나무나 커피 열매를 볼 수 있는 농장은 거의 없잖아요.”ㅁ

"실패 두려워 도전 안 하면 그게 실패"

“야채가게 총각네한테 영향을 받았지, 많이 받았지, 열정이나 창의성 모두 학습한 거죠.” 그는 총각네 야채가게 이영석 대표를 만난 이후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반복해 말했다.


제주도 커피 농사와 카페 운영으로 올리는 매출은 연 3억원 가량. 그중 절반은 남는다고 했다. 화장품 판매를 시작하면 매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농사가 힘들지는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재밌어요. 몇 년 간 나 혼자서도 했습니다. 열매 수확할 때나 정말 손이 많이 필요하면 할망(할머니)들이랑 같이 일해요, 일당 8만원 드리고 몇몇 같이 하면 하루 이틀이면 되는걸.”


핑계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못한다고 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농사는 자연을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을 한꺼번에 키워나가는 6차 산업이죠. 실패요? 그게 두려워서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실패 아닐까요.”


무조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직장은 회사원이 커 갈 수 있는 터전"이라고 했다. "봉급으로만 직장을 평가하면 안됩니다. 열심히 일하고 그만큼 배워야 합니다. 직장에서 치열하게 일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자기 분야에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꿔야 합니다."


다만 대기업에 다녔다는 경력만 믿고 자만하지는 말라고 했다. "제가 과거 사업에 실패했던 건 대기업이라는 때를 못벗었기 때문입니다. 오만이 주는 형벌이라고 봅니다. 항상 치열하게 준비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걸 만들어내고 누구도 따라하기 어려운 원천기술을 보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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