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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으로 투잡하는 24살 콜센터 직원 '스트레스 풀고 돈도 벌어'

조회수 2018. 11. 5. 13: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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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씨름 유망주→전화상담사로 사회 진출
한동안 잊고 살았던 씨름, 지금은 스트레스 푸는 취미생활
국가무형문화재된 씨름 "대중화에 기여하겠다"

전화상담사와 씨름선수.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같이 하는 20대 여성이 있다. '청순 외모 반전 괴력녀'란 별명을 가진 이은주(24)씨다. 그녀는 한 대기업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전화상담사다. 그리고 틈틈이 생활체육 씨름 대회가 있을 때마다 출전한다. 전문선수가 아닌 일반인이 참가하는 아마추어 대회다. 

출처: 본인 제공·본인 페이스북
전화상담사 업무 중 '셀카'를 찍은 이은주씨(왼쪽). 오른쪽은 씨름선수로 뛰는 모습

그녀는 생활체육씨름 국화급(70㎏ 이하급) 1인자다. 2016년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을 비롯해 작년에 출전한 3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휩쓸었다. 대회 우승상금은 100만원 수준. 작년에 상금으로 300만원 정도를 벌었다. 200만원 안팎인 상담원 월급보다 많은 돈이다. 

출처: 통합씨름협회 제공
2016 보은단오장사씨름대회에서 우승한 이은주씨(왼쪽). 오른쪽은 이은주, 전국생활체육 大장사씨름대회에서 우승한뒤 트로피를 든 모습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SNS 스타’다. ‘씨름 누나’라는 별명도 있다. 5000명 안팎의 페이스북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그녀는 “연락이 끊겼던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연락이 온 적도 있다”며 “연락처를 알려달라든지 혹은 만날 수는 없느냐는 등의 짓궂은 메시지를 보내는 분들도 많다”고 했다. 바깥에 돌아다니면 때때로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녀가 이색 ‘투잡족’이 된 사연을 들어봤다.  

 한때 꿈이었던 씨름…이제는 취미이자 부업  

출처: 이은주씨 페이스북
이은주씨는 '셀카' 마니아다. 화장도 취미 중 하나다.

경남 통영 출신인 이씨는 운동을 좋아하던 소녀였다. 수영, 태권도, 사격에 이어 유도까지 섭렵했다. “삼촌이 유도관 관장이었어요. 고등학생 때 ‘통영에 여자 씨름 선수가 없는데 한 번 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대회마다 상금도 있는데다 삼촌이 용돈도 주셨거든요. 처음엔 ‘용돈 벌이’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씨름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고졸 이후 이씨는 아예 전문 씨름선수가 되기 위해 대구 미래대에 진학했다. 당시 씨름팀을 창단하려던 대학측이 먼저 러브콜을 보냈다.


진학 이후 본격적인 합숙 생활에 돌입한 이씨는 1년만에 대학을 중퇴했다. 이씨는 “하루 종일 함께 훈련을 하는 단체생활이 성격과 도저히 맞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 전화상담사였다. “생활하려면 일을 구해야 하잖아요. 찾은 직업이 상담사였어요. 정말 막연한 생각이었어요. 예쁜 정장 셔츠를 입고 근무하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아니더라고요.” 

출처: MBC스포츠플러스 캡처
이은주씨를 '씨름 누나'로 만든 방송 캡처 사진

2년쯤은 쳐다도 보지 않던 씨름계에 다시 발을 들인 계기는 경상남도 씨름협회의 초청이었다. ‘선수가 없는데 도와달라’는 요청에 경남 대표로 2015년 11월 대통령배 전국씨름왕 선발대회에 출전했다. “예전엔 힘들었지만 막상 다시해보니까 재밌더라고요. 몇번 이기다보니 쾌감이 있었고요.” 이 대회가 방송에 중계되면서 이씨의 캡처 사진이 SNS에 일파만파로 퍼졌다. “청순한 외모에 괴력을 갖춘 반전 미녀”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녀는 “처음엔 화제가 된 줄도 몰랐다”며 “누군가가 ‘인터넷 게시판이 난리’라며 알려주는데 세상이 뒤집어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일반인으로서는 과도한 관심이 처음엔 부담스러웠으나 지금은 적응이 됐다고 한다. 이후 이씨는 씨름을 취미로 하고 있다. 한때 꿈이자 본업이었던 씨름이 이제 부업이 된 셈이다.  

출처: MBC스포츠플러스 캡처
이은주씨의 경기 장면

씨름과 상담, 의외로 어울리는 조합  

본업은 전화상담사인 이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주 5일) 한다. 사무실에 앉아 고객의 민원을 상담한다. 하루 평균 120콜 정도를 담당한다.


전화상담사은 대표적인 ‘감정 노동’ 직업이다. 최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근무하던 현장 실습생이 스트레스로 자살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씨는 “원래는 낯을 많이 가리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며 “상담사를 하면서 외향적으로 바뀌었고, 정신력이 강해졌다”고 했다. “어릴 땐 승부욕만 강했어요. 지면 너무 분했고요. 그러나 상담 업무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강한 정신력은 ‘블랙 컨슈머(악덕 소비자)’를 피할 수 없는 직업 특성상 큰 장점이다. 그녀는 “누군가가 욕을 해도, 비꼬아도 크게 상처 받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겪던 고객의 문제를 해결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있다”고 했다. 

출처: 네이버 캡처
네이버에 이은주 씨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

이씨는 “씨름을 하면 (상담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샅바를 잡으면 희열을 느낄 정도”라고 했다. 특기는 ‘밭다리(바깥다리) 걸기’다. “씨름을 하면서 흔치 않은 저만의 스토리도 생겼잖아요. 과거 다른 회사에서 일할 때 동료들에게 ‘네이버에 이름을 검색하면 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했더니 다들 좋아하더군요. 처음 만나도 쉽게 거리감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인거죠.”

“씨름 대중화에 밀알 되겠다”   

출처: 조선DB
씨름은 최근 국가무형문화재가 됐다. 왼쪽은 전문 선수들의 경기 모습. 오른쪽은 아이들이 설 명절에 씨름을 하는 모습

2017년 1월 문화재청은 씨름을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했다. 삼국시대부터 전해오는 민속놀이라는 명확한 역사성, 그리고 씨름판의 구성과 기술에 한국의 독자성과 표현미가 남아있다는 것이 지정 이유였다. 다만 씨름이 한반도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계승됐다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와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씨름이 주류 스포츠는 아니잖아요. 그러나 무형문화재가 될 정도로 의미가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씨름 대중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뻐요. 저를 보고 ‘이런 씨름 선수가 있나?’하고 한번이라도 더 봐주시는 거니까요. 그래서 SNS 댓글도 일일이 다 보고, 답글도 달아주려고 합니다.” 

출처: 본인 페이스북
이은주씨 셀카 사진

이씨는 “여성이 범접하기 어려운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은 운동이니 취미로 많이들 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종의 생활 스포츠라고 볼 수도 있어요. 실제로 아마추어 선수들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고요. 대부분 수준이 비슷해요. 저만 해도 대학 1년 빼고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이 없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습니다.”


침체된 남자씨름과 달리 여자씨름은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다. ‘전업’으로 씨름을 하는 엘리트 선수의 경우 실업팀에서 연봉 4000만~5000만원을 받는 선수도 있다. 그러나 이씨는 “취미 이상으로 하다보면 성적에 목매이게 돼 씨름이 싫어질 것 같다”며 “현재가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머나먼 미래까지는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후회없이 하고 싶은걸 하는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씨름이든 상담사든 하고 싶을 때까지는 계속 할 겁니다. 두 가지를 말하고 싶어요.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실 때 배려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된다는 것, 그리고 씨름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글 jobsN 오유교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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