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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기수, '한때 수입 수억원..악플 극복하고 새 직업 찾아'

조회수 2018. 11. 5. 13: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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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에서 뷰티크리에이터로 변신한 김기수
'댄서킴' 매달 수억원 벌 정도로 종횡무진
억울한 누명 벗었지만 복귀 힘들었어
DJ·뷰티크리에이터로 제2의 전성기

"속눈썹을 뗄 때는 립앤아이 리무버를 솜에 충분히 적셔주세요. 그리고 눈에 대고 지긋이 눌러줘요. 예쁘게 살래, 잇츠~ 그냥 살래?" 


모바일 뷰티 프로그램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예살그살)'의 한 장면. 매주 1회 방송, 분량은 2분 가량. 아이라인 그리기, 속눈썹 붙이기 등 유용한 화장팁을 알려준다. 8회만에 누적 1300만뷰를 찍을 정도로 인기다.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잇츠(영어 it's)'는 문법적으론 어색한 말이지만 이제 대중이 쓰는 유행어다.


진행자는 뷰티 크리에이터로 변신한 개그맨 김기수(40). 2000년대 중반 '개그콘서트'에서 다리를 쭉쭉 찢던 '댄서킴'으로 유명했다. 개그맨으로 데뷔해 방송인, 전자음악 DJ를 거쳐 이제 뷰티크리에이터다. 그의 직업 변천사는 편견과 맞써 싸워 받은 훈장이다. 

도전 1. 타고난 끼 막는 가난

"어릴 때부터 가난했어요. 부모님, 누나와 살던 단칸방은 자려고 누으면 바퀴벌레가 날아다녔어요."   

형편이 어려웠지만 끼는 타고났다. 성당 성가대로 노래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했다. "저 끼를 발산 못하면 사고치겠다" 생각한 어머니는 중학생 아들 몰래 아역 탤런트 지원서를 냈다. 


"KBS의 한 드라마에서 장미희씨의 아들로 출연했어요. 학도병으로 가는 역할이었는데, 한겨울에 얇은 옷 한 장만 입고 이틀을 촬영했어요. 출연료는 8000원. 다시는 안한다고 했죠." 평범한 학생으로 공부를 하려했지만 촬영 현장에서 느낀 기분을 잊지 못했다. 결국 배우가 꿈이 됐다.  

"안양예술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안됐어요.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 뒤로 공고에 가서 자포자기한 채 신나게 놀았습니다. 요즘도 그때 사진은 안봐요. 불만이 많아 세상을 삐뚤게 봐서인지 얼굴도 참 못생겼더군요." 


대학 입시에 떨어지자 어머니가 말했다. "'넌 될 놈이다' 어떻게든 연극을 전공해라." 떡볶이 장사,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며 어렵게 남매를 키우면서도 아들을 믿어준 어머니였다. 


재수를 해서 한 대학교 전자과에 들어갔다. 편입 준비를 했다. 학원을 다닐 형편은 안돼 독학했다. 편입하려면 다니는 학교에서 학점을 잘 받아야 했다. 600쪽짜리 전공책을 달달 외웠다. 공부하는 틈틈이 드라마 대본을 연습했다. 상명대학교 연극과로 편입했다. '웃음을 주기 위해 때론 망가지고, 슬픈 연기도 할 수 있는' 희극배우(코미디언)가 되고 싶었다. 

출처: jobsN
"댄서킴 시절처럼 활짝 웃어달라"고 요청하자 "이제는 주름 생길까봐 그렇게 못 웃어요"라고 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포즈를 취했다. 김기수씨의 화장 콘셉트는 '여자보다 화장을 더 잘해서 섹시한 남자'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런 콘셉트를 가진 남자 뷰티 크리에이터가 많다.

도전 2.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 

대학생 때부터 대학로 소극장에서 일했다. "바람잡이라고 하죠? 공연 시작전에 관객과 먼저 대화했어요. 그때 인기 많았어요. 무대에 올라간 순간 '주인공은 나다'라는 생각으로 관객을 휘어잡았죠." 


5번 도전만에 2001년 KBS 개그맨 공채에 합격했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다리를 양 옆으로 벌리는 '댄서킴' 캐릭터로 시험을 봤다. "오디션 준비하면서 엄청 고생했어요. 몸이 뻣뻣해서 억지로 다리를 찢다보니 실핏줄이 다 터져서 처음엔 걷지도 못했어요." 


기회는 의외로 일찍 왔다. 합격한 지 6개월 만에 '연예가중계'에 출연했다. 마이크를 잡은 손만 찍는다고 했다. "PD가 손만 나오니까 화장 안해도 된대요. 혹시 카메라가 삐끗해서 얼굴이 찍힐 수도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 화장했죠." 


현장에서 가수 하리수와 춤대결을 하면서 계획에 없던 분량을 확보했다. 정식 리포터도 됐다. 연극 무대에 섰던 경험이 생방송에 잘 맞았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이야.' 찬스가 될 수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일단 한 번 해봐야죠. 일은 망치라고 있는 거예요.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망쳐도 수습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를 해놨어야 합니다."  

출처: KBS 캡처
2013년 개그콘서트 700회 특집에 출연한 김기수. 데뷔 2년만에 다리를 쭉쭉 벌리며 춤을 추는 '댄서킴' 캐릭터로 유명해졌다.

도전 3. 열정페이 

신인이라 한달 수입은 50만원 정도였다. 집은 경기도 성남. 1500원하던 좌석버스비가 부담됐다. 일반 버스(600원)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2~3시간을 걸었다. 남은 돈으로 빵을 사먹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구할이었다. 


하리수와 춤대결을 본 개그콘서트 PD의 추천으로 '댄서킴' 코너가 생겼다. 방송을 타자마자 인기 코너가 됐다. 개그 프로그램 외 버라이어티쇼에도 나갔다. 예능 프로그램 MC도 맡았다. 전국에서 행사 섭외가 들어왔다. 차근 차근 준비해왔던 연극, 뮤지컬 분야에도 진출했다. 


한 달 수억원을 벌 정도로 잘 나갔다. 하루 한 시간만 자면서 일했다. 평생 소원이었던 '어머니 집 사드리기'도 이뤘다. 


"어떻게 보면 열정페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수억원짜리 경험이었어요. 그때 만난 개그맨 선후배, 방송 관계자…. 덕분에 개그와 패션 감각을 배웠어요. 그들 인생의 살점을 떼서 저에게 준거나 마찬가지예요. 대신 다른 사람의 열정을 악용하는 열정페이는 없어져야 합니다." 

도전 4. 믿었던 사람의 배신 

2010년 인생에서 가장 큰 슬럼프를 겪었다. 성추행 사건에 휘말렸다. 가장 믿었던 지인들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 돈을 요구했다. 잘못한 게 없지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라고 말해야 했다. 2년 동안 대법원까지 내리 3번 무죄를 받았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던 날 남긴 트위터 메시지. '무죄확정! 싸워서 이겼노라 보고 있느냐? 너희들이 후회하도록 더 멋지게 살것이다. 진정으로.' 


정작 결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방송 섭외도 뚝 끊겼다. '김기수는 회생 불가'라는 판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집밖을 나오기도 겁났다. 어머니와 누나가 있어 힘든 시기를 견뎠다. 


"그 사건 때 가해자들이 '연예인이니까 사실이 아니라도 우리가 우기면 인생 끝난다'라고 하더군요. 연예인은 죄인이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기쁨, 희망, 카타르시스를 주는 직업이잖아요." 


잘 나가던 개그맨이던 시절에는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음식점에서 말 한마디 하기도 조심스러웠다. 이때부터 오히려 당당하게 살기로 다짐했다. 

출처: 김기수씨 인스타그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 걱정돼 대인기피증에 걸렸던 김기수는 오히려 당당하게 살기로 했다. 악플을 다는 사람에게는 직접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시기 좋아하던 일을 좀 더 깊이 해보고 싶어 디제잉을 배웠다. 중국 유명 클럽에서 공연하는 등 '개그맨 출신 DJ'가 아닌 'DJ 김기수'로 인정받았다.

도전 5. 악플 

2014년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평소 찔끔찔끔하던 걸 전문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음악을 좋아했기에 디제잉에 관심이 갔다. 방에 틀어박혀 3년간 해외 사이트를 뒤져가며 공부했다. 일렉트로닉 댄스뮤직(EDM)이 인기를 끌것이라 판단했다. 


소셜미디어(SNS)에 디제잉하는 사진을 올렸다. 이를 본 중국 관계자가 연락했다. 중국 유명 클럽에서 공연했다. 2016년 SNS 사진을 사용해 '김기수 근황'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무대에서는 조명이 세니까 화장도 진하게 해야해요. 그걸 보고 악플이 쏟아졌어요." 


'김기수 트랜스젠더 됐다' '김기수 성형했네' '성괴(성형괴물의 줄임말로 외모를 비하하는 은어)' '부모님은 뭐하시냐'…. 사실이 아닌 말이 계속 나왔다. 개인메시지로 욕설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다시 대인기피증이 왔다. 친구 한 명이 말했다. "너 화장 잘하잖아. 유튜브에 올려서 자랑해." 악플에 맞서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제가 화장한 지 30년째거든요. 얼굴이 긴 편이다보니 화장으로 단점을 감추는 것도 잘합니다.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독학으로 동영상 촬영과 편집을 익혔다. 열흘 밤을 새면서 국내외 유명 뷰티 크리에이터 영상을 몰아봤다. 동영상 하나를 촬영해 올리는데 3일이 걸렸다. 화장법을 알려주기 시작한 첫회부터 20만뷰가 넘어갔다. 악플 보다 '화장 잘한다' '배우고 싶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용기가 생겼다.  

출처: 김기수씨 유튜브 캡처
디제잉을 위해 한 무대화장을 찍어 소셜미디어(SNS)에 올리자 인신공격성 악플을 다는 사람이 생겼다. "너 화장 진짜 끝내주게 잘하니까 사람들한테 자랑해봐"라는 친구의 격려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컴퓨터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컴맹이었지만 열흘 밤낮을 새서 동영상 촬영과 편집을 배웠다. 화장 안한 민낯부터 변신까지 모두 보여준다.

도전 6.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편견 

첫번째 방송을 올리자 SBS의 모바일 콘텐츠를 만드는 모비딕팀에서 연락이 왔다. "여자보다 더 화장 잘하는 남자가 진행하는 뷰티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제목은 '김기수의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예살 그살)'다. 김기수씨 말고는 2순위 진행자를 생각해본 적도 없다. 함께 하자." 


망설였다. 이미 유튜브에서 이름을 얻고 있는 상황이었다. 콘텐츠가 겹치는 것도 걱정됐다. 며칠 고민하고 제안을 수락했다. 콘셉트와 제작진의 열정도 좋았지만 한 가지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방송국에 너무 가고 싶었어요. 꼴도 보기 싫었던 곳인데…. 수위 아저씨도 보고 싶고, 복도에서 작가들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2016년 12월 첫 녹화를 했다. "잇츠~" "쳐발 쳐발(화장품을 바른다는 의미)" "스머지(문지른다는 의미)" 등 평소 쓰던 말투를 그대로 썼다.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2회만에 누적 조회수 100만뷰를 달성했다. 주1회씩 방송해 8회가 되자 누적 1300만뷰를 찍었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본 건수를 합한 숫자다.  


"최근 기쁜 일이 있었어요. 저한테 심한 악플을 보내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얼마 전에 사과 문자를 보냈어요. '그동안 죄송했다. 이틀 밤 새서 방송을 다 봤다. 응원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또 숨어있던 화장하는 남자들이 당당히 자랑하게 됐다는 얘기도 뿌듯합니다."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개인적으로 하는 유튜브 방송도 계속 한다. 잠을 못 잘 정도로 바쁘다. 앞으로 계획은 두 가지다. 첫째는 김기수라는 이름을 붙인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나머지는 유명 화장품 브랜드의 화보를 찍는 것이다.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 이후 김기수만의 색깔을 인정하는 시청자가 늘었다. 제작진이 오직 김기수만을 생각하며 만든 프로그램인만큼 김기수와 잘 맞는다. "화장은 못생긴 상태에서 해야 예쁘게 돼요. 제가 눈을 희번떡 뜨면서 화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예요. 그게 콘셉트입니다."

김기수가 알려주는 JOB&인을 위한 메이크업 TIP! 

① 취업 면접이나 직장에서는 깨끗한 인상이 가장 중요하다. 딱 두 가지만 기억하자. 피부와 눈썹 정리. 비비크림을 바를 때도 무조건 23호만 쓰지 말고, 어두운 색깔이 들어간 쉐이딩 제품을 섞어서 써보자. 살짝 더 어둡지만 훨씬 깔끔해 보인다. 


② 남성들에게 컨투어 스틱을 추천한다. 어두운 색깔의 크림으로, 얼굴에 바르면 윤곽을 뚜렷하게 보이게 한다. 의외로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부각하고 싶거나 가리고 싶은 부분에 발라주면 입체감이 살아난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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