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게임으로 수십억 '대박' 친 20대 여성

조회수 2017. 3. 5. 10: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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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메신저로 수십억 '대박'
여성용 모바일 게임 '수상한 메신저' 개발한 체리츠 이수진 대표
과금 유도, 마케팅 없이 전세계 '250만 다운로드' 인기몰이
지난해 말 1억원 기부 "좋은 돈 벌어 좋은 곳에 쓸 것"

지난해 7월 출시돼 7개월 만에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25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대박’ 모바일 게임이 있다. ‘수상한 메신저(mystic messenger)’라는 게임이다. 그런데 이 게임, 만 29세의 여성 개발자가 대표로 있는 ‘체리츠(cheritz)’에서 만들었다.

 

남성 이용자 중심의 게임 시장에서는 드물게 이용자의 99%가 여성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높다. 사용자의 90% 이상이 한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접속한다. 미국·캐나다 등 북미 지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중동에서도 수상한 메신저를 찾는다. 다른 게임에선 흔한 ‘확률형 아이템’도 없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복권처럼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뽑기' 형식의 아이템인데,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반복적 뽑기를 유도하기 때문에 대다수 게임사들의 수익모델이 되고 있다.


게다가 변변한 마케팅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상한 메신저는 이용자들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어 수십억원을 벌었다.

출처: 체리츠 제공
이수진 체리츠 대표

이수진 체리츠 대표는 “여자들을 행복하게 하자는 마음으로 소통의 욕구와 외로움을 잘 어루만진 것이 이유”라고 말했다. 수상한 메신저의 성공으로 투자제의가 물밀듯 밀려오지만, “아직 외형을 키우기보단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며 “회사를 키울 역량이 됐을 때 고려해보겠다”는 이 대표를 만나 수상한 메신저 성공스토리를 들어봤다.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게임 ‘수상한 메신저’

수상한 메신저는 이른바 ‘오토메 게임’이다. 일본어로 소녀를 뜻하는 오토메(おとめ) 게임은 간질간질한 고백 대사나 핑크빛이 감도는 줄거리 등이 특징인데, 소녀 취향이라고 해 붙은 이름이다. 주로 여자 주인공이 게임 내 남성 캐릭터를 공략해 연애에 성공하는 방식이다. 남성 게임 사용자들에겐 익숙한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여성용 버전인 셈이다.

체리츠의 수상한 메신저는 오토메 게임의 기본을 따라가면서 게임 진행에 요즘 젊은이들에게 익숙한 메신저 방식을 도입했다. 실시간으로 게임 내 미소년 캐릭터가 메신저로 말을 걸고, 여기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캐릭터와의 호감도가 달라진다.


성우가 녹음한 메시지가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방식이지만, 중간 중간 게임 내 캐릭터와 ‘전화’도 할 수 있다. 이들과 게임 내에서 전화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호감도’를 올리고, 파티에 게스트를 초대해 일정 인원 이상이 참여하면 성공한다.

출처: 체리츠 홈페이지 캡처
'수상한 메신저'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수상한 메신저는 여심(女心)을 흔들 수 있는 캐릭터는 물론이고, 전화·메신저 등 기존의 연애 시뮬레이션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상에 녹아들면서 전 세계 여성의 이목을 끌었다.


“오토메 게임은 일본이 ‘원조’지만, 대부분 비슷한 방식이었어요. 캐릭터를 공략해서 엔딩을 보는, 성취 위주였어요. 주로 남자들이 게임을 만들다 보니 이런 식으로 구성된 거죠. 저희는 캐릭터를 공략해 엔딩을 보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여성 게임 사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대사나 그림 등 ‘디테일’에도 신경 썼죠.” 

출처: jobsN
전 세계 '수상한 메신저'의 팬들이 보내온 팬레터

‘디테일’과 ‘시스템 독창성’을 바탕으로 수상한 메신저는 해외 인기 게임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텀블러(tumbler)가 최근 발표한 ‘2016년 게임 순위(2016’s Top Video Games)’에서 ‘오버워치’와 ‘포켓몬 고’ 등의 유명 게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체리츠 사무실에는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팬레터가 쌓였다.

출처: 텀블러 제공

수상한 메신저는 게임 이외에도 ‘VIP 패키지’로도 수익을 올렸다. 게임 OST와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의 명함, 더빙에 참여한 성우들의 ‘프리토크(free talk)’ 등 수상한 메신저의 팬들이 기꺼이 소장하고 싶은 것들을 담았다. 7만 체리츠 김윤상 사업이사는 “게임을 기반으로 IP(지식재산권)를 키운 것”이라면서 “수상한 메신저를 사랑하는 이용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외로움, 사용자들의 지지가 게임 개발의 원동력

부산 출신인 이 대표는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전문 타이피스트(typist·타자원)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접했다. 중학교 때부터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고, 여러 게임을 즐기다가 게임 개발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대표는 2007년 한국산업기술대 게임공학과에 진학했다. “부모님은 부산에 남아서 곁에 있길 바랐지만, 전 다소 답답했던 부산을 벗어나 더 큰 곳에서 큰 꿈을 꾸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게임을 가장 잘 가르친다는 한국산업기술대로 갔죠. 운 좋게 수석 입학해서 장학금도 받고, 수업도 듣고 싶은 만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처: 체리츠 제공
이수진 체리츠 대표

2년 만에 졸업학점을 모두 채운 이 대표는 좀 더 ‘큰물’로 가겠다고 결심, 2009년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미국 생활이 녹록지는 않았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코딩 ‘알바’도 해야 했다.


코딩 알바를 하면서 실력도 쑥쑥 늘었다. “학과 전체를 통틀어 여자는 혼자뿐이었어요. 그것도 동양인이었으니, 신기해서 그런지 일감은 꽤 많았어요. 열심히 해서 학비와 생활비도 벌 수 있었고, 실력도 꽤 늘었습니다.”

 

2010년엔 미국의 한 철도회사에서 인턴으로도 일했다. 열차 사고 정보를 구글맵에 표시해주는 간단한 앱을 만들었더니 회사 사람들이 놀랐다. “인턴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나 봐요.


‘너를 증명해봐라’ 이런 식이었는데, 지금에야 이런 서비스가 널렸지만, 당시만 해도 안드로이드가 막 대중화되고 있던 시기여서 제가 만든 앱이 꽤 화제가 됐습니다. 회사에서 비자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남으라고 했어요. 하지만 전 게임 개발하겠다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좋은 직장에 남을 수 있었지만, 이 대표가 게임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고 결심한 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야근도 없고, 친구도 없으니 집에 와서 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이때 이런저런 게임을 많이 했어요. 그중에서도 여성을 타깃으로 한 게임을 주로 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20대 여성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여성용 게임을 하더라고요.

당시 여성용 게임은 주로 일본 회사에서 만든 건데, 재미는 있었지만 뭔가 아쉬웠습니다. 여성들은 성취보다는 과정을 길게 풀고 싶어하고, 게임 내 대사도 조금 더 달달했으면 하는데, 그게 충족이 안 되더라고요."

출처: jobsN
이수진 대표의 일리노이 대학 동창 마커스(29)씨. 이 대표가 2012년 체리츠를 만들 때부터 개발팀장으로 체리츠에서 일하고 있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온 이 대표는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찾아 헤맸다. 대학 시절 잠깐 서울에 살았지만, 그땐 공부만 하느라 서울 지리도 잘 몰랐다. 잠실부터 시작해 지하철 한 정거장마다 내려 사무실 시세를 알아보며 ‘발품’을 팔았다.


결국 가산 디지털단지 근처에 사무실을 얻어 체리츠를 설립했다. 2012년 2월의 일이다. “일리노이 대학 동창이었던 마커스를 불러들여 개발팀장을 맡겼고, 구인광고로 사람을 모았어요. 그런데 우연인지 모두 여성이었어요.”

출처: 인터넷 캡처
체리츠의 첫 게임 '덴더라이언' 포스터

2012년 8월 첫 게임 ‘덴더라이언’을 출시했다. 서울 여대생이 부모님과 다투고 부산으로 혼자 내려가 자취하면서 겪는 로맨스가 주된 내용이다. “당시엔 모바일 게임이 대세였어요. 온라인 게임도 아닌 패키지 게임을 PC기반으로 낸다고 하니 다들 뜯어말렸어요. 첫 작품인데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 만큼은 팔렸고, 세계 각지에서 팬레터가 몰려오면서 게임 개발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체리츠의 첫 번째 게임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두 번째 게임은 욕심이 생겼다는 게 이 대표의 얘기다. 이 대표는 2013년 11월 두 번째 게임 ‘네임리스’를 발표했다. 전작보다 나은 그래픽과 더빙(dubbing)을 위해 다른 회사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덴더라이언 만큼 인기를 끌지도 못한데다 제대로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을 진행하다보니 수익 배분을 놓고 소송에 휘말렸다.


결국 2014년 이 대표는 게임 개발을 중단했다. “게임을 통해 사용자와 소통하는 것은 좋았지만, 소송에 휘말리다 보니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사업적인 역량이 부족했다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우울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저도 힘든 시기였으니까, 주위를 돌아보게 된 거죠. 봉사활동도 다니면서 ‘힐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게임 개발을 접었던 이 대표를 돌아오게 한 것은 게임이용자들이다. “게임을 만들지 않고 있을 때도 하루 2~3통씩은 팬레터가 오더라고요. 제가 어려울 때 큰 위안이 됐어요. 그러다가 하루는 ‘대인기피증이 있었는데, 체리츠 게임을 하고 용기를 내 밖으로 나갔다는 내용이었어요. 이걸 보고 결심했죠. 소외된 여성들을 위한 게임을 만들자고요.”

 

이 대표가 우울할 때 누군가 ‘밥은 먹었느냐’고 물어만 줘도 힘이 났다고 했다. 이걸 게임으로 옮겼다. 수상한 메신저가 메신저 형식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이유다. “게임 사용자들을 어루만져주려고 하다 보니 내용이 많이 늘었어요. 일본의 여성용 모바일 게임 시나리오 대비 서너배나 많은 양이 게임에 담겼죠. 꾸준한 업데이트로 지금은 한 다섯배쯤 될 겁니다.”

 

◇“‘좋은 돈’ 벌어 ‘좋은 곳’에 쓸 것”

수상한 메신저는 게임 아이템을 꼭 사지 않아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게임 내 캐릭터와 통화나 메시지를 더 주고받고 싶을 땐 ‘전화카드’와 같은 아이템을 사야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게임 안에 ‘확률형 아이템’으로 게임 이용자에게 돈을 ‘뽑아내는’ 방식은 아니다. “저도 돈을 사랑합니다. 회사가 돈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돈을 벌고 또 어떻게 게임을 만들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돈은 ‘좋은 돈’이예요. 자꾸 돈 쓰길 유도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좋은 돈을 받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그걸로 사용자들에게 돈을 받고 싶습니다.”


지난해 말 체리츠는 세이브더칠드런·한국생명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 등 3개 기관에 총 1억원을 기부했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잖아요. 게임 중독이란 말도 있고요. 하지만 게임 산업은 수익성이 굉장히 높은 산업입니다. 충분히 나눌 수 있습니다. 게임 이용자가 행복해서 돈을 쓰고, 그걸 받아서 좋은데 쓰는 겁니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 좋은 돈을 벌어서 좋은 곳에 써서 세상의 돈을 정화하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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